대통령보다 세고 헌법보다 무서운 목사님
[한겨레21]
수쿠크법 좌초는 대통령과 정치권이 개신교 앞에 무릎 꿇은 "현대판 카노사의 굴욕"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막 대하는 근본주의 개신교의 전성시대
기이한 침묵이다. 2월 임시국회에서 이슬람채권법(수쿠크법)을 처리하려던 정부·여당의 시도가 수포로 돌아갔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을 가로막은 것은 개신교였다.
이슬람채권법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하자 개신교계는 '대통령 하야' '국회의원 낙선운동' 발언까지 내놓으며 정치권을 위협했다. 개신교의 반발에 부딪힌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숨죽였다. 이슬람채권법 국회 처리를 사실상 포기한 것은 물론, 개신교의 공세에 맞서는 그 어떤 대응도 하지 못했다.
민주당 역시 사태를 외면했다. 개신교의 정치적 행태나 여기서 비롯한 정교분리 논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주당 관계자는 "우리는 지난 17대 국회 때부터 사립학교법 등과 관련해 개신교로부터 시달림을 당한 트라우마가 워낙 강하게 남아 있다"며 조심스러워했다.
이슬람채권법과 관련한 개신교의 반발, 이에 대한 정치권의 침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남오성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목사)은 최근 사태를 "현대판 카노사의 굴욕"에 빗댔다. 이명박 대통령 등 정치권력이 조용기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 등으로 대표되는 교회권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뜻이다. '카노사의 굴욕'이란 1077년 1월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가 자신을 파문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를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 북부 카노사 성으로 찾아가 용서를 구한 사건이다. 세속권력이 교회권력 앞에 굴복한 대표적 사건으로 꼽힌다.
선거법으로 어쩌지 못하는 목사님
개신교의 정치적 영향력, 혹은 교회와 정치인의 관계를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사람이 A 전 의원이다. 민주당의 대표적인 386세대 정치인으로 꼽히는 그는 2008년 4월 총선 때 수도권에서 재선을 노렸지만 수백 표의 근소한 차이로 떨어졌다. 득표율로 따지면 1% 정도 차이였다. 개표함을 열어본 뒤 A 전 의원의 캠프가 받은 충격은 컸다. 투표함이 설치된 40여 개 투표구에서 A 전 의원은 상대편 후보와 박빙을 이뤘다. 이긴 곳이 더 많았고, 지더라도 100표 내외로 차이가 갈리는 지역이 대부분이었다. 그가 수백 표 차이로 낙선한 결정적 이유 가운데 하나는 B교회였다. B교회는 신도 수나 예배당 규모 면에서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대형 교회에 속한다. 이런 B교회가 속한 투표구와 이웃한 투표구에서 상대편 한나라당 후보에게 무더기 표가 나왔던 것이다. 여기서 수백 표 차이가 벌어졌고, A 전 의원은 끝내 그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한나라당 후보는 B교회의 집사를 맡고 있었다.
A 전 의원 쪽에서는 2008년 총선 패배의 원인을 이렇게 짚었다. "목사님 설교만 들어봐도 B교회가 완전히 한나라당 쪽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립학교법 개정되면 빨갱이 나라 만든다, 민주당 찍으면 빨갱이 찍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아주 공개적으로 하는 거다. 투표 당일에도 새벽기도회를 연다며 신도 수천 명을 모아놓고 투표를 독려했다. 대형 교회가 이런 식으로 특정 후보에게 네거티브로 나오면 치명적인 거다. 지역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해당 교회 목사의 설교가 특정 후보에게 쏠려 있다면 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선관위에 고발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장에서 그런 생각을 하기란 쉽지 않다. A 전 의원 쪽은 "그런 대형 교회 목사를 선거법 위반으로 걸었다가 다시는 그 지역에 발을 못 붙이게 되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한나라당이 조용기 원로목사 등에게 막말을 들은 뒤 조용히 이슬람채권법을 포기한 이유도 A 전 의원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당장 내년 4월 또다시 국회의원 총선거가 치러지는 것이다. 이슬람채권법 해당 상임위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슬람채권법 처리는 현실적으로 어렵게 됐다"며 "대부분 지역구를 가진 국회의원이고 자기 지역에 대형 교회 한두 곳 없는 의원이 없을 텐데, 개신교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누가 앞장서겠느냐"고 말했다.
개신교의 정치적 영향력은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이 2007년 7월30일 발표한 '정치와 종교에 관한 종교지도자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났다. 개신교·천주교·불교 지도자 각 1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 '정치권력에 대한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 종교'로 꼽힌 것은 단연 개신교였다. 전체 응답자의 절반가량(47%)이 개신교를 선택했고, 천주교(30.9%)와 불교(20.4%)가 뒤를 이었다.
개신교 인구 18.3%, 의원 40%
교회가 현실 정치에 입김을 불어넣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것이 '믿습니다' 현상이다. 2008년 제18대 국회가 출범할 때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전체 299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개신교인은 약 40%에 해당하는 119명(2008년 4월22일 현재)이라고 발표했다. 강명순 한나라당 의원은 유일한 목사였고, 장로는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김성순 민주당 의원 등 11명이었다. 권사와 집사는 54명이었다. 17대 국회 때는 개신교 국회의원이 103명(34.4%), 천주교 70명(23.4%), 불교 34명(11.4%)이었다(각 교계별 집계).
반면 2005년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인구 가운데 각 종교별 신자 비율은 불교 22.8%, 개신교 18.3%, 천주교 10.9%로 나타났다. 일반 국민 가운데서는 불교 신자가 가장 많지만, 국회의원만 놓고 보면 개신교인 비율이 크게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선거를 치르다 보면 지역구에 있는 대형 교회에 잘 보이기 위해 교회를 옮기는 일은 다반사이고, 천주교 세례명까지 받은 사람이 선거를 앞두고 개신교 신자로 변신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G 의원 등이 지역구에 있는 대형 교회에서 거의 매주 일요일마다 주차관리 요원으로 활동하는 이야기는 정가에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이명박 대통령도 국회의원 시절 서울 강남의 소망교회에서 종종 주차 봉사를 했다. 교회 앞마당에서 직접 교인의 주차를 돕는 이들의 행위를 보는 시각은 물론 다양하다.<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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