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 가사, 도 넘은 한국어 훼손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요즘 대중가요를 듣다보면 이런 생각을 갖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한국 사람이 작사한 게 맞느냐'는 반응까지 나온다. 정체불명의 괴상한 노랫말 때문이다.
최근 컴백한 여성 댄스그룹 '천상지희―다나 & 선데이'의 신곡 '나 좀 봐줘'의 가사를 보자. '아담의 갈비뼈를 뺐다구? 진짜 빼야 될 사람 나인데, 내 허리 통뼈 이대론 안 돼'로 시작한 노래는 '소주는 싫어, 잔이 작아 얼굴 더 커 보이잖아' '이 밤을 불태워버릴 우리만의 100분 토론!'으로 끝난다. 도통 앞뒤가 맞지 않아 "최악의 가사"라는 혹평(酷評)이 쏟아졌다.
'티아라'의 히트곡 '야야야'에서는 아예 완성된 문장을 찾아볼 수가 없다. '오 오 오' 'Yo ma Yo ma Lova Lova Yo ma Yo ma Supa Nova U Hee U U Hee' 등 국적 불명의 주문을 연상케 하는 감탄사로 넘실댄다.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문장과 비유, 말도 안 되는 내용과 해괴한 조어(造語), 엉터리 외국말로 뒤범벅된 대중가요가 넘쳐나고 있다. '한국어 테러'가 따로 없다는 지적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 엉터리 가사 3종 세트
엉터리 가사는 크게 나눠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難解)한 가사 ▲알아듣기 힘든 의성어·의태어가 가득 찬 가사 ▲엉터리 조어와 외국말로 넘치는 가사의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인기 걸그룹 f(x)가 올여름 내놓은 '피노키오'의 가사는 '난 지금 Danger 한 겹 두 겹 페스추리처럼 얇게요 Danger 스며들어 틈 사이 꿀처럼 너는 피노키오' 등 한국어와 외국어로 뒤범벅돼 있다. 이 그룹의 다른 곡 '핫 서머'는 '도저히 이렇게는 더 안 되겠어, 내가 어떻게든 좀 손보겠어. (중략) 땀 흘리는 외국인은 길을 알려주자. 너무 더우면 까만 긴 옷 입자' 등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로 채워져 있다.
'제국의 아이들'의 노래 '마젤토브'는 생소한 유대어(Mazeltov·행운을 빕니다)까지 동원했다. '마젤토브 힘내봐. 마젤토브 웃어봐. 먼데이 튜스데이 웬즈데이 설스데이 프라이데이… (반복) Mad Time Right, Everybody 손잡고 방방 뛰어…'.
걸그룹 달샤벳의 '수파두파디바'는 '수파파 두파파 수파두파 라라 디바바 디바바 수파붐 수파파 수파파 수파두파 라라 디바바 디바바 수파붐 붐붐붐 누가 날 좀 물로 적셔줘요', 혼성 아이돌그룹 남녀공학의 '삐리뽐 빼리뽐'은 '삐리뽐 빼리뽐 아아아아아아아 삐리뽐 에에에에에에에 빼리뽐 아아아아아아아 삐리뽐 에에에에에에에에'처럼 암호 같은 가사를 담고 있다.
◆ "튀려다 망쳐버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카라' 등이 소속된 DSP 윤흥관 이사는 "신곡 발표 후 4주만 돼도 '식상하다'는 소리를 듣는 상황에서 제작자들이 어떻게든 남보다 튀는 코드와 리듬, 색다른 가사를 써야 한다는 강박에 빠지게 됐다"고 했다. "불규칙하고 빠른 가락에 가사를 억지로 끼워 맞추다보니 노랫말이 뭉개지고 이상한 신조어가 끼어드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엉터리 노랫말에 대한 법적·제도적 감시·정화(淨化) 장치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청소년 유해 매체물 심의 기준'을 적용해 음반·영상 매체를 심의하고 있지만 폭력성·선정성 등만 규정하고 있을 뿐 난삽한 국어 파괴 노랫말 관련 조항은 아예 없다.
윤호진 한국콘텐츠진흥원 수석연구원은 "특히 공중파 방송에서 국어 파괴 가사가 담긴 노래들을 무차별적으로 내보내는 것은 사회적 악영향과 파장이 인터넷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했다. "정부 차원은 물론이고 방송사들도 과도하게 해괴한 노랫말은 엄격하게 거르고 제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씨는 "노랫말과 댄스 등 모든 것이 부담스럽게 변해가고 있다"며 "해외 팬들이 K팝을 자국 언어로 번역해 듣는 상황에서 대중가요 제작자들은 밖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의 노랫말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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