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다시 보기] Ⅰ. 김광석, 시대·세대 아우르는 힐링의 노래
스포츠동아 | 입력2014.01.10
주말기획|'불멸의 가객' 김광석 입체분석
■ 왜 다시 김광석인가?
세상 떠난 지 18년…김광석 열풍 넘어 현상으로
뮤지컬·콘서트에 예능 프로까지 잇따라 재조명
20년 전의 청춘·현재의 청춘 그의 노래로 소통
휘발성 강한 디지털 음원의 홍수 속에서도 시들지 않는 노래. 수없이 명멸하는 가수들의 이름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된 이름.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지 18년이 지났지만 그 이름과 노래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푸르게 돋아나고 있다. 고 김광석은 노래로 삶과 세상과 사랑을 이야기했다. 정겨운 웃음주름으로 통기타 하나 달랑 메고 노래로써 당대 청춘들과 교유했던 그의 환한 미소. 2014년 1월, 더욱 더 그립다. 사진은 '김광석 다시 부르기Ⅰ' 재킷에 그려진 캐리커처. 스포츠동아DB
요즘 대중문화계 화두는 '김광석'이다. 방송, 뮤지컬, 공연, 출판 등 여러 분야에서 김광석을 재조명하고 있다. 이제 '김광석'은 '열풍'을 넘어 '현상'이 되고 있다.
● 시와 노래는 대중문화계 애달픈 양식
작년엔 김광석 노래를 소재로 한 뮤지컬만 세 편이 제작됐다. 작년 봄 '그날들'에 이어 '바람이 불어오는 곳' 시즌2가 26일까지 공연되고, 또 다른 김광석 주크박스 뮤지컬 '디셈버:끝나지 않은 노래'가 29일까지 서울에서 무대에 오른 뒤 대구, 부산 등 지방으로 이어진다. 그의 18주기 기일인 6일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는 올해에도 김광석추모사업회가 주최한 '김광석 따라부르기 2014'가 열렸다. 8일 대구에 이어 16일에는 서울에서 '김광석 다시부르기' 콘서트가 열린다. 박학기와 한동준 동물원 유리상자 자전거탄풍경 등 고인의 벗들과 이적 박효신 등 후배들이 참여한다.
안방극장에서도 '김광석 콘텐츠'가 넘쳐난다. KBS 2TV '불후의 명곡2-전설을 노래하다'가 2011년에 이어 이달 말 '김광석' 편을 방송한다. 모창가수와 고인이 노래대결을 벌인 종합편성채널 JTBC '히든싱어2'도 큰 화제를 모았다. MBC는 작년 8월 MBC '다큐스페셜'을 통해 김광석의 삶을 조명한 바 있다.
이 밖에 김광석이 생전에 남긴 일기와 메모 등을 엮은 책 '미처 다 하지 못한:김광석 에세이'(예담출판사)도 최근 출간됐다. 그가 태어난 대구 대봉동 방천시장의 '김광석 거리'엔 주말이면 1000명이 모여 벽화 속 김광석을 바라보고 노래한다. 김광석이 남긴 음악의 향기는 세월을 따라 더욱 짙어만 가고, 그는 영원한 가객이 되고 있다.
● 그의 노래는 나의 삶, 나의 위로
"그의 노래는 듣는 사람 모두에게 자신의 이야기라는 느낌을 준다"는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의 말처럼, '김광석 현상'은, 세대가 공감하는 그의 흡인력 있는 노래에서 비롯된다. 가수 아이유는 "나 같은 어린 친구들이 들어도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다"고 했고, '디셈버' 주인공 김준수는 "김광석 노래의 힘은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대"라고 했다.
김광석의 노래는 모두의 삶이었고 또 위로이기도 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위로를 얻고, 또 부르면서 스스로를 위로한다. 각박한 세상, 위로는 더욱 온기를 얻는다. 뮤지컬 '그날들'의 장유정 감독은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가만히 옆에서 '괜찮다, 괜찮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다"고 했다.
작년 '불후의 명곡2'에서 '서른 즈음에'로 우승한 가수 문명진은 "김광석 노래는 낭독만으로도 그 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래서 김광석 노래를 할 땐 음정·박자에 대한 걱정이 들지 않는다. 술에 취해 위태롭게 불러도 되고, 울면서 목이 갈라져 가래 끓는 소리가 섞여 나와도, 동요처럼 수수하게 불러도 가슴 속 깊이 감정들이 스며든다"고 말했다.
'김광석 다시부르기' 관계자는 "영원히 32세에 머물러있는 것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김광석의 노래는 그 푸름이 더해진다. 이제 그의 노래들은 '청춘의 이정표'가 되어 삶의 골목 어귀마다 기다리고 서서 우리를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고 있는 듯하다. 20년 전의 청춘들에도, 현재의 청춘들에도 김광석의 노래는 잠시 그 밑에 걸터앉아 쉬어갈 이정표이자 안식처"라고 평가했다.
이 기사 주소 http://media.daum.net/v/20140110070805194
[김광석 다시 보기] Ⅱ. 김광석 “저도 어느덧 쉰 즈음…기타 들고 해외공연 나설까봐요”
2014-01-10
◁ 1. 키가 작아 ‘반토막’이라 불린 중학생 시절, 바이올린을 켜는 김광석. 유순한 성격이었다. 2. 1979년 고등학생이 된 뒤 합창반에서 활약했다. “거짓 희망을 심어주지 않았”던 모교 대광고에 그는 늘 고마워했다.(‘김광석 평전’ 참조) 3. 엄혹했던 1980년대 초반, 그는 평범한 회사원을 꿈꾸며 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4.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 참여해 활동하던 시절. 5. 1990년대 초반, 자유로움을 꿈꾸던 그는 미국 여행을 하며 문화적 경험을 쌓았다. 6. 1990년대 어느 날 김광석의 공연. 그는 늘 해맑은 웃음으로 관객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그런 그를, 관객은 좋아했다. 사진제공|예담출판사
주말기획|‘불멸의 가객’ 김광석 입체분석
■ 22일 탄생 50주년…쉰 살의 그를 만나다
할리 데이비슨 여행과 다양한 장르의 음악
마흔 즈음 꿈꿨던 두 가지 목표 모두 이뤄
아프지 않은 사랑은 없어…애써 부인할뿐
산다는 건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것일지도
노래의 몫은 아름다운 마음을 갖게 하는 것
사람을 보듬으며 살라던 아버지 말씀 새겨
관객 마주보는 소극장 좋아 1000회 공연
공연을 하고 또 한다고 붙여진 별명 ‘또해’
올해는 김광석이 세상에 태어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18년 전 세상을 떠났지만 탄생 50주년의 이름으로 김광석은 세상에 다시 나서고 있다. 이제 쉰 즈음에 들어선 그를 만났다. 묻고 싶은 많은 것들, 하지만 한정된 지면은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칫 표피적인 말들 때문에 그의 노래를 추억하고 사랑하는 수많은 이들의 비난을 감수하는 건 아닌지 두렵다. 김광석의 육성이 살아 있는 듯, 작은 진정성이라도 전해진다면 좋겠다.
- 이제 22일이면 딱 쉰 살이시네요. 미리 축하드립니다.
“허허! 벌써 그런가요?”
- 떠나간 청춘과 사랑을 그리워하며 “매일 이별하며 살”았던 서른 즈음을 지나셨네요. 마흔에는 멋진 할리 데이비슨에 올라 여행하고 싶다 하셨죠? 당신이 그토록 좋아한 무라카미 하루키도 나이 마흔을 앞두고 유럽으로 훌쩍 떠났다던데, 여행은 즐거웠나요?
“다녀왔지요. 돈을 모아 오토바이를 충무로에서 샀거든요. 누구는 내 다리가 (페달에)닿지 않을 거라고 오해하지만, 다 닿습니다. 다리도, 팔도. 문제는 몸무게였는데, 나잇살 덕분일까, 되더군요. 여행이나 사랑이나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조금 힘들더라도 뭔가 좀 새로운 게 있겠거니 기대하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에서 함께한 후배 (안)치환이는 ‘한 몸인 줄 알았더니 아니다/머리를 받친 목이 따로 놀고/어디선가 삐그덕 삐그덕/나라고 믿는 내가 아니다’(마흔즈음)고 노래하던데, 이상과 꿈을 좇다 이젠 현실에 지친 마흔의 언저리에서 그래도 여전히 새로운 기대감을 갖고 싶더군요. 그래서 마흔 즈음에는 그 기대와 새로운 희망을 노래하고 싶었지요. 장르도 포크록, 얼터너티브, 블루스, 컨트리 등 다양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 쉰 즈음, 이제 뭘 하실 건가요.
“예전에 친구 (박)학기와 이런 얘기를 나눴지요. 나이 들면 우리끼리 기타 들고 해외에 나가서 공연도 하자고. 얼마 전에 친구들과 후배들이 호주에서 ‘김광석 다시 부르기 공연’을 하고 왔다던데…. 많은 분들이 우셨다지요? 허허! 그저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노래하고 싶을 뿐이지요.”
- 환갑 때는 연애하고 싶다 하셨는데…. ‘김광석 다시 부르기Ⅱ’에서 부른 ‘바람과 나’의 원곡자 한대수도 나이 60에 새로운 로맨스를 이뤘습니다.
“하하! 축하드릴 일이지요. 로맨스! 그냥 ㄹ자만 들어도 설레지요. 코웃음치지 마시고! 뭐, 그때까지 그렇게 정열이 남았을지 모르겠지만…. 로맨스는 번개처럼 ‘번쩍’해가지고 정신 못 차려야 되는 거지요.”
- 그러고 보니 부르신 노래에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많네요. 특히 이별의 고통스러움과 그 흔적이 남긴 상처들? 사랑이 남긴 상처가 컸나봅니다.
“그러게요. 왜 가고 나서 가슴이 온통 무너진다는 둥, 하늘이 캄캄하다는 둥 하는지…. 있을 때 잘 하세요. 하하! 동물원 때나 1, 2집 때도 그랬고…, 쓸쓸하거나 아니면 좀 나약한 그런 사랑 노래를 많이 부른 것 같아요.”
- 꿈꾸던 사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부치지 않은 편지’를 함께 작업한 백창우의 곡 ‘내 사람이여’를 한창 부르고 다니던 20대 초반, ‘내가 너의 어둠을 밝혀줄 수 있다면/빛 하나 가진 작은 별이 되어도 좋겠네/너 가는 길마다 함께 다니며/너의 길을 비춰주겠네/내가 너의 아픔을 만져줄 수 있다면/이름없는 들의 꽃이 되어도 좋겠네/…/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내 가난한 살과 영혼을 모두 주고 싶네…’라고 노래했지요. 지금이야 그때의 순수함에서 좀 벗어나 있기는 하지만….”
- 흠…, 그래도 사람들은 여전히 순수한 모습을 기억하고 있답니다.
“류근 시인의 노랫말에 곡을 붙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처럼, 사랑을 잃고 새로운 사랑이 다가올 때마다 아프기가 두려워 도망치는 사람도 여럿이더군요. 사실 아프지 않은 사랑은 없겠지요. 사랑은 이렇다 말한 순 없지만…, 사랑은 많은 부분 인정해야 하고, 많은 것을 얻기도 하고 또 잃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아픔으로 더욱 사랑하게 되고. 아픔으로 더욱 괴로운 것…. 혹여 그게 사랑 아닐까요. 아픈 사랑이 아니라고 우기고 싶겠지만 사실은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부정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 어찌 보면 지나간 것, 이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착도 강하셨던 것 같아요.
“이제 막 서른 즈음에 들어선 무렵, 미국을 여행한 적이 있어요. 참 다양한 문화가 살아 숨쉬는 나라더군요. 미니애폴리스라는 곳에는 6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카페도 있어요. 내가 느낀 것을 내 딸 서연이도 똑같이 받아 안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손잡고 함께 찾을 수 있는 문화의 공간이 우리에겐 많이 없는 것 같아요. 그게 안타까울 뿐이죠, 뭐. 사실 ‘다시 부르기’ 앨범도 대학 시절 자주 들르던 카페를 찾아갔다 흔적도 없어진 걸 보고 실망해 당시 즐겨 부르고 듣던 노래를 담아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지요.”
- 노래한 사랑이 꼭 이성을 향한 순정의 마음,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기어이 안아야 하는 사랑만은 아니겠지요. ‘노찾사’나 그 이전 대학연합노래패 ‘메아리’ ‘새벽’ 등에서 불렀던 노래들, 이를테면 ‘녹두꽃’ ‘그루터기’ ‘타는 목마름’ ‘광야에서’ 등도 세상과 사람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 아닐까요.
“맞아요. 아버지는 늘 제게 ‘사람을 보듬으며 살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한때 노래의 힘을 믿었던 때가 있었지요. 뭐, 지금도 그렇지만. ‘아버지를 따라서 일터 나갔지/처음 잡은 삽자루가 손이 아파서/땀 흘리는 아버지를 바라보니까/나도 몰래 눈에서 눈물이 난다’는 한돌의 ‘못생긴 얼굴’이라는 노래에 충격을 받았어요. 어릴 적 서울 창신동 허름했던 시절도 기억나고. 노래와 음악이 좋아 걷기 시작한 길, 노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갖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노래를 부르는 저나, 듣는 분들이나 모두가.”
- 그렇게 사람들을 만난 공간은 소극장이었어요. 1000회 공연을 펼치면서 참 많은 이들을 만나셨겠네요. 대단합니다. 가끔은 공연에서 틀리기도 하셨지요.
“보기 싫었나요? 폴 사이먼이 그러더군요. 틀린 걸 보고 싶지 않으면 음반을 사서 들으라고. 하하! 이런 식으로 날 합리화하고 있나? 1993년 5월5일 공연에선 목감기까지 걸려 고음이 올라가지 않아 창피를 당하기도 했지요. 모두 제 불찰이지요. 그래도 소극장은 참 좋은 공간 같아요. 관객이 빼곡히 들어차서 제 무릎 앞에까지 앉아 노래를 들어주시기도 했는데, (침이) 튀기도 하지요. 어떤 분은 하품을 하다 그만…. 그렇게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누면서 눈빛도 서로 바라보는 그런 느낌이죠.”
- 박학기나 한동준, 김창기, ‘서른 즈음에’를 쓴 강승원 음악감독 등 절친들에 따르면 술도, 사람도 무척이나 좋아하신다더군요.
“그랬죠. 어찌보면 산다는 건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또 혼자임을 깨닫는 것일 수도…. 하지만 나눌 줄도 알아야죠. 나눔을 배워 행복할 거라 믿으며 살고 싶었어요. 원래 통기타 치면서 노래하는 사람들이 다 그래요.”
- 사람과 세상에 대한 그런 애정과 애착, 부럽습니다. 음악과 노래에 대한 열정과 고집도 강하시지요? 별명도 많습니다. ‘슈퍼맨’ ‘또해’ ‘휘발유통’ 등등….
“하하! 음…, 슈퍼맨은 불교방송 ‘밤의 창가에서’의 구경모 PD가 일러줬죠? ‘휘발유통’은 동물원 시절 (김)창기가 붙여준 거고. ‘또해’는 아시다시피 공연을 하고 또 한다 해서 붙은 거지요. 사실 창기와도 많이 싸웠습니다. 사실 제가 좀 욱하는 걸 참지 못하기도 하는데, 노래와 음악에 관한 한 누구에게라도 쉽게 양보하지 못했어요. ‘거리에서’를 부르는 내 보컬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봐요. 그래도 결국은 져 주더군요. 고마울 뿐이지요. 기차 안에서 읽은 김지하 시인의 ‘틈’처럼, 아무도 비집고 들어올 틈 없이 마음의 문을 꼭꼭 잠가두지 않고 틈을 벌리는 법도 배워봅시다.”
- 고집과 열정은 또 새로움을 낳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요. 공연에선 와인잔을 깨고 나오는 붕어 그림 얘기를 하셨어요.
“뭔가 새로운 것, 새로운 느낌과 경험, 상황은 지금 익숙한 그 틀을 벗어나면서부터 시작될 거에요. 붕어가 부럽죠, 뭐. 30대 초반엔 새로운 걸 시도하려 했지요. 공부를 빙자한 다른 방식의 생활? 어쨌든 새로운 시도는 삶에 활력을 주는 것이지요.”
- 그 새로움에 대한 열정을 버리신 건 아니죠. 그렇게 믿고 있겠습니다. 아직 완성하지 못한 노래 중에 ‘다시 돌아온 그대’라는 곡이 있더군요.
“언젠간 꼭 마저 끝내야죠. ‘그대 나를 떠나야 했던 이율 알고 싶진 않아/다시 이렇게 내 곁에 숨 쉬고 있으니/나의 사랑은 영원히 그대의 것이니/우리 이젠 헤어지지 마요/어느새 그댄 내게 사랑이란 이름으로/참았던 눈물 속에 다시 서 있죠.’ 뭐, 이런 노랫말인데…, ‘그대 내게 돌아오리란 믿음을/내 마음 깊은 곳에 간직했었죠’라는 말, 한 번 믿어볼까요? 다 같이?!”
- 공연에선가, 한 여성팬이 “김광석 만세!”라고 외치시더군요. 같은 마음입니다. “김광석 만세!”
“하하하! 그때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얼굴도 빨개졌지요. 그래도 너무 좋고 감사해서 저도 모르게 하하하! 지금처럼 소리 높여 웃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렸죠. 땡큐!”
- 너무 웃지 마셔요. 그 웃음주름이 너무도 그리우니까. …, ….우린 당신의 노래로 위안을 받았지만 정작 당신이 힘들고 외로울 때 아무 것도 해드린 게 없네요.
“흐흐! 어쩌겠습니까. 그러나 저러나 제가…, 김광석인데요! 행복하세요!”
김광석은? △1964년 1월22일 대구 출생. 서울 경희중 시절 현악반에서 바이올린, 오보에, 플루트 등 악기를 익혔다. △1982년 대광고 졸업, 명지대 경영학과 입학. 대학연합 노래동아리 ‘연합메아리’ 활동. △1985년 입대해 6개월 단기 사병 복무. 복학 뒤 ‘노래를 찾는 사람들’ 활동. △1990년 6월 아내 서해순과 결혼해 딸을 낳았다. △1988년 3월∼1995년 8월11일 소극장 1000회 공연 기록. △1996년 1월6일 사망.
● 도움말 주신 분들 : 강승원(음악감독)·김창기·박학기·한동준(이상 가수)·장유정(뮤지컬 ‘그날들’ 연출)
● 참고 문헌 및 자료 : ‘김광석 평전-부치지 않은 편지(이윤옥·세창미디어 펴냄)·미처 다 하지 못한-김광석 에세이(예담출판사)·음반 ’김광석 노래 이야기‘·’김광석 인생 이야기‘·김광석 인터넷 팬사이트 ‘둥근소리’·‘김광석을 추억하는 이들의 작은 모임터’·네이버 카페 ‘김광석 매니아’·네이버 블로그 ‘타는 목마름으로’
[김광석 다시 보기] Ⅲ. 그의 마지막 노래엔 치열한 시대 청춘들의 고민이…
2014-01-10
▷ 김광석은 “거울 같은 10대와 좌충우돌하는 20대를 지나면 ‘ㄴ’자가 붙는 나이가 된다. 서른이 되면 20대의 가능성은 대부분 좌절되고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면서 ‘서른 즈음에’를 노래했다. 그의 18주기였던 6일 이 노래를 쓴 강승원 음악감독(사진 오른쪽)이 서울 대학로 학전 블루 소극장 앞에서 생전 김광석의 ‘1000회 콘서트’ 포스터를 들여다보고 있다.
주말기획|‘불멸의 가객’ 김광석 입체분석
■ 노래 곳곳에 그의 삶이 고스란히…
군대서 죽은 형을 위한 노래 ‘이등병의 편지’
할머니에게 소녀감성 찾아준 ‘사랑했지만’
딸에 대한 미안함 담은 ‘자장가’ ‘자유롭게’
서른두 해를 살다 간 김광석이 읊는 노래엔 그가 보낸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곧 이야기이다. 노래는 세월이 지날수록 깊은 향기를 더한다. 김광석은 누군가의 어린 동생이었고, 다른 누군가에겐 자상한 아빠였다. 또 다른 이들에겐 웃음 많은 선배이고, 후배였다.
● 세상을 떠난 형을 그리며…‘이등병의 편지’
‘이등병의 편지’를 처음 불러 음반에 담은 이는 전인권이다. 김민기가 이끈 음반 ‘겨레의 노래’(1990년)에서 처음 소개됐다. 이때 코러스로 참여한 ‘막내’ 김광석은 전국순회공연에서 마침내 전인권의 빈자리를 채우며 노래했고 이후 자신의 음반에 넣었다.
그에겐 11세 위의 형이 있었다.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입대한 형은 결혼을 열흘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형의 죽음은 상처가 됐고 그는 “이 노래를 부를 때 장교로 복무하다 돌아가신 형님에 대한 기억 때문에 감정은 고조된다”(‘김광석 평전’)고 말하곤 했다.
2000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배경음악으로도 쓰였다. 극중 카세트테이프로 흐르던 ‘이등병의 편지’에 북한 병사 오중사(송강호)는 “근데 광석이는 왜 그렇게 일찍 죽었대니” 안타까워한다. 사실 이 장면에 쓰일 뻔한 건 서태지였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각색한 박찬욱 감독은 김광석을 택했다.
● 70대 할머니의 뭉클한 고백…‘사랑했지만’
한동준이 쓴 ‘사랑했지만’은 김광석이 솔로가수로 성공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의 차지는 아니었다. 솔로 2집 준비를 하던 1991년, 김광석은 한동준의 공연에 초대가수로 참여한다. 데뷔 음반을 준비하던 한동준은 선배 김광석에게 ‘사랑했지만’을 들려주고 평을 원했다. 김광석은 노래에 마음을 빼앗겼다. 다짜고짜 술자리를 마련해 한동준을 꾀였고, ‘사랑했지만’은 김광석 목소리로 세상에 알려졌다.
정작 김광석은 “다분히 수동적으로 그려져 다가서지도 못하고 멀리서만 바라보는 사랑에 대한 태도가 싫었다”(1995년 KMTV ‘슈퍼콘서트’)며 즐겨 부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70대 할머니의 고백에 마음을 돌렸다. 할머니는 레코드점에서 흘러나오는 ‘사랑했지만’에 빠져 우산도 없이 내리는 비를 맞았다고 고백했다. 그리곤 ‘열여섯 소녀의 감정을 되찾아준 노래’라며 반가워했다. 김광석은 이후 “더 열심히 더 잘” 부르려 했다.
● 딸을 향한 사랑…‘자장가’와 ‘자유롭게’
김광석에겐 딸이 있다. 이름은 서연. 생전 그는 바쁜 공연 탓에 딸과 지내지 못하는 걸 늘 안타까워한 것으로 전해진다. 딸을 위해 만든 노래가 4집에 담긴 ‘자유롭게’다. 의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산부인과에서 엉겁결에 자신의 두 손으로 첫 딸을 받은 그 순간의 환희와 오묘한 느낌을 잊지 못해 만든 노래다. 3집에 수록된 ‘자장가’도 비슷하다. 첫 번째와 마지막 트랙을 ‘자장가’ 연주곡으로 채우고 자신의 음악을 딸과 공유하기를 꿈꿨다.
● 삶을 향한 고민…‘부치지 않은 편지’ 등
“‘막내아들 대학시험’이란 대목에 이르기만 하면 이상하게 목이 메어 녹음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술을 마시고 불렀다.”(1995년 나우누리 팬클럽 ‘둥근소리’ 게시판)
김광석이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1989년 마포대교를 달리던 버스 안에서다. 블루스 기타리스트 김목경이 쓰고 부른 이 노래에 그는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들었다”고 돌이켰다.
김광석의 마지막 목소리가 담긴 노래는 ‘부치지 않은 편지’. 정호승의 시를 노래한 그는 치열한 시대 청춘들의 세상에 대한 고민과 시선을 음악에 담아냈다. 1995년 ‘둥근소리’ 게시판에서 “책임져야 하는 가족이 생긴 후부터 잘사는 것에 고민이 생겼고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에서 잘 살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김광석 다시 보기] Ⅳ. 배명진 교수 “김광석 배음·음폭·바이브레이션 일반가수의 2배”
2014-01-10
◁ 김광석은 없지만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명징하다. 맑고 청아하며 올곧게 내뻗는 진정성의 비장함, 그리고 감미로움 모두 그의 목소리다. 사진제공|배명진 교수
■ 소리 공학으로 듣는 김광석의 노래
“맑고 쾌활…타고난 울림의 소리”
최근 TV는 김광석을 무대 위로 다시 호출했다. 비록 장막 뒤 아무도 없는 듯 보이지만 울려 나오는 목소리는 무대 안팎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김광석 평전’의 이윤옥 작가는 “자신의 음악적 특성을 오직 목소리 하나로 관철시켰다”고 썼다. 대체 그 목소리는 어떤 매력을 지닌 것일까.
국내 최고의 ‘소리박사’로 평가받는 배명진 숭실대 정보통신전자공학부 교수(소리공학연구소장)는 “맑고 쾌활하면서 감미롭다”면서 “타고난 울림의 소리다”고 말한다.
배 교수는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 ‘사랑했지만’ ‘먼지가 되어’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총 6곡을 통해 배음과 음폭, 음의 지속력 등을 토대로 김광석의 목소리를 분석했다.
배 교수는 “그의 목소리는 다른 가수들보다 2배 이상 많은 배음을 지녔다”고 말했다. 배음은 발음체의 진동수가 밑음(기본음)의 2∼3배가 되는 음. 음계, 화음, 음색과 관련 깊다. 가수들이 평균 12∼15개인 데 비해 김광석은 30개 정도의 배음을 낸다. 즉, 목소리의 부드러움과 감미로움이 탁월하다는 얘기다.
음폭(사람의 목소리나 악기가 낼 수 있는 최저음에서 최고음까지 넓이)도 넓다. 가수들이 2000Hz의 음폭을 가졌다면, 김광석은 4500Hz까지 음을 균일하고도 넓게 낸다.(사진) 배 교수는 “일반 가수들이 리코더의 음색을 낸다고 하면 김광석은 플루트의 음색이다. 플루트는 최고 음역의 목관악기다. 그만큼 맑고 선명하며 힘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진영의 ‘공기 반 소리 반’ 표현은 김광석에게 적확하다. 성대톤이 심폐 골격과 조화가 잘 이루어져야 공명 울림이 일어나는데 김광석은 그런 면에서 어느 정도 타고났다. 배 교수는 “음을 지속하는 기간이 뚜렷하고 길다. 마치 악기가 힘을 내어 소리를 내듯 음정이 고르고 정확하다”고 덧붙였다. 저음, 중음 대역에 바이브레이션이 탁월한 점도 강조했다. “깊고 균일한 바이브레이션은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악기에서는 하나의 음이 길게 나오지만 목소리는 톤의 변화가 짧고 빠르다. 음의 지속력이 길면 힘이 실리고, 가사도 잘 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종합적으로 김광석의 목소리는 배음과 음폭, 바이브레이션 등 특출한 능력을 가진 가수다. 악기가 아닌 다음에야 기존 가수들과 수치적으로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것은 대단하다. 무엇보다 이런 목소리에 세상과 사람들을 향한 김광석의 진정성이 더해져 세대를 뛰어넘는 사랑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故 김광석, 왜 17년 지난 지금까지 사랑받나
2013-12-31
대중은 왜 17년이 흐른 지금까지 모던포크의 대명사 故 김광석을 찾을까? 12월30일 방송된 JTBC ‘히든싱어2 히든스토리’에서는 고 김광석이 현재까지도 대중에게 사랑받는 이유와 김광석의 세 친구 김창기, 박학기, 강승원이 기억하는 인간 김광석의 모습이 공개됐다.
이날 강헌 대중음악 평론가는 대중이 끊임없이 고 김광석을 찾는 이유에 대해 "그의 노래는 '아 이 사람은 지금부터 노래를 부르는구나'가 아니라 '나에게 뭔가 친밀하게 이야기를 해주는구나'라는 일종의 이야기꾼으로서의 느낌을 담고있다"며 "그래서 뭔가 구체적인 정황, 누구나가 당하거나 경험할 수 있는 일상들이 노래에 들어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밋밋하거나 평범하게 들릴 수 있는 노래를, 어떤 구체적인 상황이 느껴지게 만드는 노래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며 "라디오가 사라지지 않는 한 김광석의 노래는 계속 사랑받을 것 같다"고 자신의 견해를 나타냈다.
'서른즈음에' 작곡가 강승원은 노래 제목도 한 몫 했다고 밝혔다. 그는 "노래는 이야긴데 자기랑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며 "그래서 이렇게 사랑을 받는 것 같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가수 한동준은 "그 형은 늘 특유의 미소를 지으면서 화를 내지 않았다. 한 번도 운전하면서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아주 따뜻한 모습 속에 노래가 나와서 지금까지 사랑을 받는게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 29일 방송된 '히든싱어2'는 1996년 세상을 떠난 고 김광석 편으로 꾸며져 방송 후에도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진=JTBC '히든싱어2 히든스토리'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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