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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일 방송대 입학하다

한라의메아리-----/오늘나의하루

by 자청비 2014. 3. 14.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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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 드디어 입학식날이다. 여지껏 초중고교와 대학까지 4번의 입학식을 하면서 지금처럼 설레던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방송통신대학교 입학이 무슨 서울에 있는 S대 들어가는 것처럼 어려운 것도 아닌데 무려 4번의 시도끝에 -우물쭈물하다가 원서접수기간을 넘겨버렸다- 마침내 입학할 수 있게 됐다.

 

조금은 들뜬 기분에 입학식장으로 향하면서도 마음 한켠엔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4년간 잘 다닐 수 있을까 하는 마음과 과연 내 가슴속에 문학적 열정이 있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내가 지원한 학과는 국어국문학과다. 소설을 쓰고 싶어 지원했지만 그동안의 내 삶은 문학이라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게 지내온 터였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소설을 써보고 싶었다. 아마도 신문에 쓰는 내 글들이 보잘것없이 느껴지기 시작한 때부터였을 것이다.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하루에 수백~수천만 건의 글이 인터넷에 쏟아진다. 그 중에 과연 후대에 길이 남을 글들이 얼마나 될까. 나머지 글들은 한번 읽히고 버려지는 쓰레기에 불과했다. 내가 쓰는 글이 그 쓰레기더미 위에 한 줄 더 얹어놓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펜을 놓게 만들었다. 뭔가 의미있는 소설작품을 남기고 싶다. 예전에 읽었던 '태백산맥'이나 '장길산' '토지' 같은 대하소설은 언감생심으로 힘들겠지만 '칼의 노래'와 같은 작품 한점쯤은 남기고 싶다. 그러고 보며 내가 막연히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할 때가 아마 '칼의 노래'를 읽고 나서가 아닌가 생각된다. 명작이라고 할 순 없지만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아버지'를 읽고나서 뭔가 남겨야 되겠다는 생각은 좀 더 굳어진 듯하다.

 

입학식장에는 올해 편입학하는 새내기들로 가득했다. 20대 후반의 직장인 여성, 아이 맡길데가 없었는지 어린 아기를 안고 온 엄마, 초등학생쯤 되는 아들의 손을 잡고 온 엄마들도 눈에 띄였다. 사회생활을 한참은 했음직한 40~50대의 여성들도 많이 보인다. 여성보단 적었지만 30~40대의 아저씨들도 적지 않게 보였다. 입학식은 식순에 따라 차례차례 진행됐다. 입학선서도 했다. 입학식이 끝나고 2부순서에선 각 학과별 학생회장들이 나와 소속 학과를 간단히 소개하고 오리엔테이션 강의실 번호를 누차 강조한다. 모든 입학식 일정이 끝나고 각 학과별 오리엔테이션 시간이 됐다.

 

입학식장에서 늦게 나오는 바람에 국문학과 오리엔테이션 강의실은 이미 가득 찼다. 얼떨결에 앉은 자리가 3학년 편입생 자리여서 다시 옮기도록 하는 바람에 1학년 제일 앞자리에 앉게됐다. 제일 앞자리가 싫었지만 빈자리 찾아 왔다갔다 하느니 얼른 자리에 앉아버리는게 나을 것 같아 그냥 아무소리 않고 앉았다. 뒤에 어떤 사람들이 앉아 있을까 궁금했지만 뒤를 돌아볼 수 없다. 소심한 성격이 나온다.

 

사회를 보는 4.5학년 김윤화 선배의 빠르고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귀에 착착 감긴다. 그런데 워낙 말이 빨라 잠깐만 정신을 팔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를 정도다. 사회를 보면서 얼굴에 웃음이 함빡 넘쳐난다. 적당히 자기자랑도 할 줄 안다.  태반이 여 학우들로 이뤄져서 인지 조금만 재미있는 소리만 나와도 "까르르~ "강의실에 웃음이 넘쳐난다. 성주풀이를 개사한 노래가락과 장구치는 소리에 국문학과 학생들의 개인 이력이나 특기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아닌게 아니라 이미 문단에 등단한 시인도 있다고 한다. 젊은 시절 대학다닐때 처럼 허투루 해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시영 학생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후배들이 손을 내밀면 선배들은 기꺼이 손을 잡고 함께 가겠다고 했다. 이번 행사때문에 직접 서울에서 내려오신 이호권 교수는 특강을 통해 신입생들이 우선 1학기를 충실히 잘 마치고 2학기를 넘어가 한 학년을 무사히 마치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이 교수는 많은 학우들이 과정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래서 혼자 하지 말고 다른 학우들과 함께 하라고 했다. 묻어서 가라고 했다. 또 자신이 방송통신대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말을 주위에 소문내라고 했다. 많은 신입생들이 자신이 방송통신대학교에 다니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중간에 포기해도 부담이 없도록 하기위해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그랬다. 이유야 어쨌든 나도 주위에 전혀 알리지 않았다. 중간에 포기해도 부담이 없다는 때문이 아니라 원래 조용히 다니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OT를 끝내고 내가 즐겨하는 카카오스토리에 입학식 장면을 담은 사진과 함께 국문학과에 입학했다고 공개했다. 몇몇 지인들이 열심히 하라는 격려와 축하 댓글을 달아줬다. 자~ 이젠 살짝 공개했으니까 열심히 하는 도리밖에 없다.^^

 

학생회 임원을 소개하는 시간이다. 학생회 임원 한 두 사람씩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허걱~' (요즘 10대들은 놀랐을 때 이렇게 표현한다.) OT가 진행되는 동안 제일 앞자리에 앉은 바람에 뒷자리에 어떤 사람들이 앉았는지는 모르고 웃음소리 등으로 미뤄 여자 학우들이 많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학생회 임원은 모두 여성으로 구성됐다. 뒤이어 신·편입생 소개때도 남자 학우는 나를 포함해 단 3명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여자 학우였다. 아마도 중고교때 한번쯤 시나 소설을 읽으며 문학소녀를 자처해보지 않은 소녀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고교때 시나 소설에 빠져본 소년은 별로 없다. 아마도 이 차이가 지금과 같은 현실을 만들게 한 것 같다.

 

신편입생 소개시간이 왔다. 제일 앞자리에 앉은 죄로 내가 첫 순서가 됐다. 준비된 멘트가 전혀 없다. 더구나 나는 말주변도 별로 없다. 막상 말을 하려면 말들이 서로 먼저 입밖으로 나오겠다고 하거나 아니면 준비했던 말들은 입속 어느 구석에 꽁꽁 숨어버린다. 그러다보면 말이 조리있게 나오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는 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나 다를까. 이날도 앞에 나가 방송대와 국문학과에 지원하게 된 동기를 설명하는데 조금은 횡설수설한 듯하다. 知天命을 넘겼는데도 여전히 말은 내 뜻대로 안된다. 이것도 병이런가.

 

마지막으로 1학년 학생회 임원을 선출한 후 오리엔테이션이 끝났다. 즐거운 마음으로 화기애애하게 오리엔테이션을 꾸미려고 애썼다고 한다. 애쓴 흔적이 역력히 나타났다. 선배 학우들의 마음씀씀이가 고맙다. 나름대로 방송통신대학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수해주고 후배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함께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OT하는 내내 배어났다.

 

오리엔테이션을 끝내고 강의실을 나오면서 나의 꿈을 다시 한 번 되새겨봤다. 50을 넘긴 나이에 문학의 'ㅁ'부터 시작하겠다는게 가당키나 한 일인지 모르겠다. 10대의 문학소년·소녀들이 열정을 갖고 시작해도 쉽게 이루지 못하는 꿈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도 꿋꿋하게 가겠다고 다짐해본다. 예술은 천부적인 자질을 바탕으로 미친듯한 열정을 갖고 노력할 때 大作으로 남는다. 내 스스로 문학에 천부적인 자질이 없음을 안다. 다만 혹시라도 내 가슴속 한켠에  조그마한 문학적 열정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꺼내 불사르고 싶다. 4년동안 나는 내 가슴속 문학적 열정을 꺼내기위한 훈련을 해나갈 것이다. 4년의 노력이 내 후반부 삶을 새롭게 열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설혹 4년동안의 노력이 일장춘몽이 된다고 해도 좋다. 내 가슴속에 문학적 열정이 전혀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는 날, 나는 나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바탕 일장춘몽이면 어떠랴. 4년동안의 노력은 내 후반부 삶에 자양분 역할을 하기에 충분할 것으로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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