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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없는 세월호 침몰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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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14. 4. 23.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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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대한민국은 안전한가

 

전남 진도 해상에서 여객선 침몰사고 발생한지 7일째 밤이다. 한마디로 참담하다. 슬프면서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자꾸 눈물이 나 뉴스특보를 외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생존자 소식에 아주 외면하지도 못하고 귀동냥을 했다. 하지만 들려오는건 기상악화와 거센 조류 때문에 구조활동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실종자의 바람과는 전혀 거꾸로 가는 구조활동과 오락가락 하는 대책본부,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의 헛짓거리만 난무했다. 이것이 리더십이 실종된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다. 언론보도를 토대로 사고관련 문제점들을 짚어본다.

 

◇ 사고발생
16일 오전 9시쯤 인천을 떠나 제주로 향하던 6,800톤급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해상에서 침몰했다. 이 배에는 수학여행을 떠나는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을 비롯해 총 476명이 탑승해 있었다. 해경과 인근 어선들이 긴급구조에 나섰다. 그러나 배가 완전히 침몰되기 까지 구조된 인원은 174명에 불과했다. 사망자는 2명 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실종이었다. 침몰후 혹시나 에어포켓에 의지해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생존자 구조작업을 벌인다고 했으나 실제 3일이 지나도록 단 한명도 구조됐다는 소식은 안들렸다. 다만 침몰 선체 주변에 떠오른 시신을 인양할 뿐이었다. 생존자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사망자는 3일째부터 조금씩 늘기 시작하더니 7일째인 오늘 100명을 넘어섰다.

 

이번 사고이후 정부의 대응은 겉돌았다. 부서간 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구조활동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언론보도는 간신히 구조된 고교생에게 친구가 숨진사실을 아느냐라는 질문까지 서슴없이 하는가 하면 정부의 잘못된 발표를 그대로 받아쓰면서 오보에 춤을 추고 나중엔 실종자가족들로부터 불신을 받으며 취재를 거부당하는 사태까지 빚었다.

 

사고원인은 사고발생 7일째가 되면서 하나하나 드러났다. 오래된 선령, 게다가 무리한 구조변경, 시간단축을 위해 정규항로를 벗어나 위험지역으로 운행, 평소 운항때도 선박운항에 문제를 노출했다고 하나 적절한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운항에서도 무리한 선적, 승선원들의 안전규정 미준수, 사고발생직후 승객들을 버리고 자신들만 탈출하기 등등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사고발생을 전후해 동시에 일어났다. 결국 인재가 빚어낸 대형참사였다. 이같은 일들은 사고발생 직후 이미 예견할 수 있었던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사고발생 신고 때부터 드러난 관계기관과 사고대책본부의 허술한 대응이 화를 더욱 키웠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정부 발표 오락가락
사고대책본부는 사고발생 초기부터 줄곧 세월호에 몇 명이 승선했는지 파악을 하지 못하고 오락가락했다. 정부는 세월호를 운영하는 청해진해운의 말만 듣고 처음엔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과 인솔교사 14명, 승무원 24명 등 476명이 승선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시간에 따라 459명에서 462명, 474명 등으로 바뀌다가 다시 선사와 함께 탑승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TV(CCTV)를 보며 수를 헤아린 뒤 475명으로 수정했다. 이러다가 18일 밤 10시에는 다시 476명으로 번복했다. 이게 정확한 숫자인지 알 수 없게 됐다. 이러면서 구조자 174명과 사망자 2명 이외에 실종자 숫자는 시시각각 늘었다 줄었다 했다.

 

사고발생 초기 선박이 침몰했으나 대부분 구조된 것처럼 발표해 사고의 심각성에 대해 전혀 인지 하지 못했다. 사고발생 초기 언론보도를 보면 선박침몰사고가 발생했으나 구조대가 대거 투입돼 큰 희생자 없이 대부분 구조될 것처럼 보도됐다. 이에 따라 16일 오전 학교 측과 경기도교육청은 학생 전원이 구조됐다는 문자를 실종자 학부모들에게 날리기도 했다. 대책본부는 오후 1시 현재 368명이 구조됐다가 발표했다가 저녁 늦게 164명, 174명, 190명, 179명에서 5명이 줄었다. 처음부터 승객과 승무원이 각각 몇 명 구조됐는지도 헤아리지 못했다. 일부 학생은 섣불리 사망했다고 밝혔다가 정정하는 일도 벌어졌고, 실종자를 구조자로 발표해 슬픔에 빠진 가족을 두 번 죽이기도 했다.

 

◇ 정확한 원인규명 불신만
사고 발생 시각은 정확하지 않다. 진도군청은 전남도청에 보낸 보고서에서 사고발생 시각을 '16(수) 08:25분경'이라고 적었다. 신고시간인 오전 8시58분보다 33분이나 빠른 것이다. 해양수산부 국립해양조사원도 사고 발생 시점을 '항행경보 제14-155호'에 사고 시간을 오전 8시30분으로 적었다가 논란이 되자 8시55분으로 사고 발생시간을 정정했다. 이 두 기관은 인터넷에 올라온 언론보도를 검색해 사고발생 시각을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사고발생 초기 언론보도를 보면 "최초 신고 1시간여 전부터 세월호가 사고 해역에 서 있었다"는 사고 지역 어민들의 증언이 있었다. 이에 대한 진위규명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초 구조 요청 시각도 오락가락했다.

 

최초 구조 요청 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혹을 살만했다. 전남소방본부 기록에는 사고가 난 지난 16일 오전 8시52분 구조 요청이 들어와 1분 뒤 목포해경에 연결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해경에는 8시58분에야 처음 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기록됐다. 사고발생 시각과 최초 신고 시각이 명확히 규명되어야 한다. 그래야 정확한 사고원인과 처리 과정 등을 규명하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인명구조를 위한 대응이 이뤄졌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번 사고와 대응방법이 향후 해양사고에 반면교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고 해상은 진도관제센터 구역이었다. 하지만 세월호가 사고직후 구조요청 등과 관련해 제주관제센터와 교신내용만 알려졌을 뿐 관할인 진도관제센터와의 교신내용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정부는 '있다' '없다' 오락가락하다가 뒤늦게 진도관제센터와 교신한 내용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 교신내용도 전체를 공개한 것은 아니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왜 공개를 하지 못할까? 그럴수록 더욱 의심만 살 뿐이다.

 

◇ 구조작업 우왕좌왕
정부는 단 한명이라도 생존자를 구조하겠다며 객실 안에 산소를 공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해경은 19일 오전 11시 19분 공기 주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당초 해경은 지난 17일 오전 "공기 주입을 위해 사고해역 주변에 잠수부 등이 오전 8시30분부터 대기 중"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이 때는 장비도 도착하지 않은 때였다. 이 후 해경은 공기 주입 개시 시간을 계속 바꿔 발표했다. 17일 낮 12시30분에서 오후 10시가 됐다가 다시 "18일 오전에 공기를 불어넣겠다"고 했다. 하지만 관련 장비가 뒤늦게 도착하고 날씨 영향으로 물살이 거세지면서 공기 주입 시기는 계속 미뤄졌다. 상심해 있는 실종자 가족들을 우롱한 셈이다.

 

◇ 사고대응 제각각
세월호 침몰 사고가 나자 정부 부처마다 대응 본부를 만들었다. 사고 발생 하루 만에 정부 부처가 경쟁적으로 설치한 본부는 10개에 육박했다. 서울에는 안전행정부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설치했고, 세종시에서 해양수산부와 교육부가 중앙사고수습본부를 각자 차렸다. 해양경찰청은 인천과 목포에 지방사고수습본부, 서해해경은 목포에 중앙구조본부를 세웠다. 이 부처를 하나로 모아 총지휘해야 할 안전행정부는 경험 부족을 여실히 드러내며 '오락가락' 행보를 부추겼다. 안전행정부는 지난 2월, 법까지 바꾸며 재난 대응을 총괄하게 됐지만 경험도 능력도 없었다. 안행부가 법을 바꾸며 재난대응을 총괄하게 된 이유는 대통령에게 직보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신속한 대응이 필수적인 사고 수습에서 현장을 책임지는 해경은 서울에 보고하느라 또 잘못된 발표를 정정하느라 허송세월했다. 사공은 많고 제대로 된 지휘본부가 없는 사흘 동안 실종자 가족들은 책임자를 찾아헤맸다. 체계적 지휘가 안된다는 것이 문제가 되자 총리실이 취합하겠다며 목포에 사고대책본부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가 하루 만에 철회했고, 결국 해수부 장관이 범부처 사고대책본부의 장을 맡는 것으로 정리했다. 그러나 범대본부도 허둥대긴 마찬가지였다. 명령과 보고 체계에 집착한 탁상 행정에 부처 이기주의가 겹치면서 진짜 중요한 사고 수습은 소홀할 수 밖에 없었다. 1분 1초가 급한 구조 작업이 계속 지연되면서, 당국의 초동 대응에 대한 논란이 더욱 거세졌다. 결국 사고발생 초기 발 빠르게 구조 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 이해하기 어려운 초동대처
사고 원인을 제공한 것은 청해진 해운과 세월호 선원들이다. 그러나 참사를 키운 것은 정부의 무능력한 대처방식이었다. 세월호는 구조신호를 보내고 완전 침몰하기까지 무려 1시간 이상 떠 있었다. 제주관제센터는 승객 탈선 명령을 내렸다고 했다. 배가 가라앉기 전에 해경 헬기와 어선 등이 세월호 주변에서 구조작업을 진행했다. 뒤늦게 선원들이 승객들에게 객실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하고 자기들은 먼저 해경 구조선에 옮겨 탄 것으로 드러났지만 그 때 왜 선장을 확인해 승객 탈선 명령을 내리도록 하거나 헬기에서 승객들에게 탈선하도록 지시하지 못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구조에 나선 해경 지도부는 다수의 승객들이 탈선을 위해 갑판에 나와 있지 않다는 점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조치방안을 강구했어야 했는데 그저 눈 앞에 보이는 승객만 구하기에 바빴다.

 

인근에 해경 이외에도 어선과 다른 화물선 등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구명조끼를 입은 상태에서 일단 바다에 뛰어들면 구조될 확률은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고발생 현장에서 해경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어도 이런 대참사를 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사고발생직후 인근해상에 있던 미군헬기도 구조작업에 참여하기 위해 왔으나 해경의 만류로 돌아갔다. 왜 그랬을까? 구조작업에 혼선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부지깽이도 필요했던 순간이 아니었던가?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한 뒤 해경은 기상악화와 거센 조류 등으로 잠수부를 대거 확보해놓고도 속수무책이었다.

 

◇ 춤추는 언론의 보도
정부 발표에 따라 춤췄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책본부를 방문한 것이 속보로 자막에 뜨기도 했다. 모 방송국 앵커는 사고발생 당시 간신히 구조된 학생과 인터뷰를 하다가 친구가 죽은 사실을 아느냐고 과감하게 질문했다. 무슨 대답을 듣고 싶었던걸까? 자녀를 잃고 상심해하는 실종자가족에게 지금 심정이 어떠냐고 과감하게 마이크를 내밀기도 했다. 정부 발표나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사항은 깨알같이 보도하면서 실종자 가족들의 이유있는 항의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언론보도와 실제 사고현장의 구조활동은 전혀 달랐다. 박근혜 대통령이 실종자 가족을 찾았을 때 실종자 가족의 항의하는 소리는 뉴스에서 아예 빼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실종자가족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취재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실종자가족들이 머물던 체육관내 모든 카메라를 내쫓았다. 외신들에게만 취재를 허용하기도 했다. 국민의 언론이 국민에게 외면당하는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 어처구니없는 정치인과 고위관료
정부의 대응에 실망해 실종자 가족들이 항의의 목소리를 높여가자 여지없이 종북론이 튀어나왔다. 새누리 한기호 의원은 페이스북에  "드디어 북한에서 선동의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는 북괴의 지령에 놀아나는 좌파 단체와 좌파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이 정부 전복 작전을 전개할 것"이라며 "국가 안보 조직은 근원부터 발본 색출해서 제거하고, 민간 안보 그룹은 단호히 대응해 나가야한다"라는 글을 게재했다.

한기호 의원의 발언이 수그러들 즈음에 이번엔 정몽준 의원 아들이 페이스북에 "비슷한 사건 일어나도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다른 국가 사례랑 달리 우리나라 국민들은 대통령이 가서 최대한 수색 노력하겠다는데도 소리 지르고 욕하고 국무총리한테 물세례하지 않느냐"라는 글을 게재했다. 정 군은 이어 "국민 정서 자체가 굉장히 미개한데 대통령만 신적인 존재가 돼서 국민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없다"고 지적한 뒤 "국민이 모여서 국가가 되는 건데 국민이 미개하니까 국가도 미개하다"며 실종자 가족을 맹비난했다. 아버지 정몽준 의원이 긴급히 사과했다.

또 새누리 권은희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세월호 실종자 가족 행세를 하며 정부를 욕하며 공무원들 뺨때리고 악을 쓰고 욕을 하며 선동하는 이들"이라며 "학부모 요청으로 실종자 명찰 이름표를 착용하자 잠적해버린 이들. 누구일까요? 뭘 노리고 이딴 짓을 하는 걸까요? 현장에 혼란과 불신, 극한 대립을 일으키는 전문 선동꾼은 누굴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인지?"라며 동영상과 사진을 게재했다가 해당 자료는 조작된 것이고, 선동꾼으로 매도됐던 여자는 진짜 실종자 가족으로 확인돼 사과를 하기도 했다.
과거 김영삼 정부 시절에도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참사 등이 발생했지만 종북 공세, 색깔론은 없었다. 그런 측면에서 오히려 지금의 정부여당은 김영삼 정부 시절 신한국당보다 더 복고반동적 퇴행을 겪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안전행정부 모 국장은 전남 진도 팽목항 상황본부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 회의를 마친 뒤 동행한 공무원들과 사망자 명단 앞에서 기념촬영을 시도했다가 실종자 가족들의 항의를 받았고 결국 부적절한 행동으로 해임됐다.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이 모여 있는 진도로 내려갔던 김문수 경기도지사가는 실종자 가족의 질문을 받자 "경기도 안에서는 좀 영향력이 있는데 여기서는 여러 가지로 한계가 있다"라며 무성의한 태도로 답변해 빈축을 샀다. 서남수 교육부장관은 실종자가족이 머무는 진도체육관에서 맨바닥에 머무는 실종자가족과는 달리 귀빈용 테이블에 앉아 컵라면을 먹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는가 하면 희생자 학생의 장례식에 갔다가 수행했던 공무원이 유가족에게 장관오셨다고 귀띔하다가 유가족들의 항의를 받는 등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1994년 가을비 내리는 아침,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버스를 타고 등교하던 꽃다운 여고생 8명이 추락해 숨졌다. 1999년 여름 씨랜드 화재로 꽃봉오리 같은 유치원생 19명이 저세상으로 갔다. 여섯 살 난 아들을 잃은 김순덕씨(필드하키 국가대표, 88올림픽 은메달리스트)는 메달과 훈장을 반납하고 조국을 등졌다. 2014년 겨울 경주마우나 오션리조트 체육관 지붕이 눈무게를 이기지못하고 붕괴되면서 젊은 꿈을 피우려던 대학새내기 9명이 목숨을 앗아갔다. 그리고 불과 몇개월지나지 않아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인 봄에 시퍼런 바닷물이 배를 덮친 순간 안산 단원고 아이들은 애끊는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놓는다. 사랑해." "어떡해, 엄마 안녕, 사랑해."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 내내 어른들은 이기심과 탐욕, 무책임과 방치로 채 피어나지 못한 꽃들을 모질게 꺾어 버리고 있다. 21년 전인 1993년 10월 10일 오전 서해 페리호가 전북 부안 위도 앞바다에서 침몰해 292명이 사망했다. 그 때도 발만 동동구르며 깊은 바다속에서 말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그저 바라만 봤다. 20여년이 지나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른들은 여전히 무책임과 이기심과 탐욕으로 무장해 있고, 정부는 주먹구구식 대책 정도가 아니라 아예 책임이 없다고 발뺌한다. 머지않아 세월호 참사도 다시 잊혀질 것이다.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 해운회사 대표 등 몇 사람이 구속되고 공무원 몇명 속죄양으로 구속되고 나면 다시 깊은 망각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더 슬프고 화가 난다.

"차갑고 어두운 바닷속에서 떠돌고 있는 영혼들이 영원한 안식처를 찾을 수 있도록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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