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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의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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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14. 11. 7.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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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는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요즘 케이블TV의 모 종합편성채널의 한 프로그램이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프로그램 제목도 거창하게 '국경없는 청년회 비정상회담'이다.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 청년들이 출연해 우리나라의 문화, 풍습 등에서 하나의 가상주제를 설정해 정상이냐 아니냐를 논하는 토론프로그램이다. 대학 다니는 딸 때문에 처음 이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을 때는 프로그램 제목이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정상회담(頂上會談)이라는 말은 익히 들어봤지만 비정상회담이라는 말은 낯설다. 국가를 대표하는 정상(頂上)들이 아닌 사람들의 회담일 수도 있고, 정상적(正常的)이 아닌 회담이 될 수도 있다.

 

이 프로그램은 일전에 모 공중파 채널에서 인기를 끌었던 '미녀들의 수다'에 착안해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미녀들의 수다'는 외국인들의 시각으로 본 한국문화, 풍습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첫 고정 프로그램이어서 참신하다는 호평을 받았다. 나중에는 취지가 변질되서 여성출연자들의 신변잡기만 늘어놓다가 결국 프로그램이 막을 내리는 비운을 맞이했지만 말이다. 아마 그 기획에서 출연자들만 남성으로 교체하고 진행방식을 변경한 정도로 보인다. 프로그램 취지는 외국인들을 통해서 본 한국문화 및 풍습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국가간 견해차와 사고방식을 확인하고 이해하자는 것이다. 즉 국가간 생활방식이나, 풍습, 사고(思考)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해하자는 취지인 듯하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어디까지가 정상이고, 어디까지가 비정상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하나의 상황에 대해 사람마다 또는 나라마다 서로 의견이 분분하다. 그래서 듣다보면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애매하다. 사전을 찾아보면 정상이란 개인이 속해 있는 집단에서 규정하고 있는 기준(基準)에서 벗어나지 않는 일상적인 상태라고 한다. 비정상은 정상에서 벗어난 것으로 흔히 개인이 소속하고 있는 집단이나 사회에서 무엇을 정상이라고 규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비정상이냐, 정상이냐 하는 것은 시대·집단·사회적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시대와 사회에 따라 행위의 지침과 기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세까지만 해도 우리가 사는 지구를 중심으로 하늘이 돌고 있다는 천동설이 정상이었고, 지동설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았으나 지금은 천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자위행위는 비정상으로 인식됐으며,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동성애는 정신질환으로 여겼으나 지금은 여전히 논란은 되고 있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합법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정상을 재단하는 기준중 하나는 부적절한 적응이다. 이는 직업을 가지거나 행복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거나 미래를 설계하는 등의 일상적인 행동을 제대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불합리성이다. 물리적 사회적 세계뿐만 아니라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 기괴하고 비논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비정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판단하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주관적이기 때문에 완전히 들어 맞다고 할 순 없다.

 

즉 사회가 병들어 있으면 건강한 사람이 오히려 비정상이라는 딱지를 받게 된다. 또 행위자와 관찰자간 관계에서 보면 관찰자는 자신의 입장과 다르거나 특히 자기에게 위협적인 사람에 대해 비정상적이라고 판단하기 쉽다. 역사적으로도 사회가 구성원의 믿음에 대한 편협한 기준을 제시하고 복종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았다. 앞서 예를 들었던 지동설의 경우도 중세시대에 그같은 주장하던 과학자들이 종교재판에 회부돼 목숨을 잃을 뻔 하기도 했다.

 

보편적으로 대부분의 사람은 비정상적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의 행동은 예측하기 힘들고 무척 불안정하다. 자신의 행동을 전혀 통제하지 못하고 부적절한 행동을 태연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도덕적 기준을 어기고 사회규범이나 규칙을 무시하는 행위 등도 비정상적이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대부분 사람들은 곁에 있는 누군가가 비정상성을 분명하게 드러낼 때 심하게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2014년 대한민국을 돌아보자. 부실 건축으로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지붕이 무너져 내리면서 대학 신입생 수십명이 목숨을 잃었다. 평온한 날씨에 제주로 가던 여객선이 침몰해 수학여행길에 나섰던 고교생 등 수백명이 희생됐다. 지하철 환풍구 붕괴로 음악공연을 보던 관람객 수십명이 숨지는 사고도 있었다. 군대에서는 선임이 후임병을 괴롭히다가 목숨을 잃게 만들기도 했다. 병장이 왕따당한 나머지 총기난동을 일으켰다. 고위 장교가 부하 여군 장교를 성희롱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자주 국방하겠다며 구입했던 신형무기들이 불량으로 드러났다.

 

이밖에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이어졌다. 사건·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지만 앞서 말한 사고들은 모두 정상적이 상황이라면 일어나서는 안되는 사고다. 더구나 사고후 수습과정도 많은 국민들이 불편함을 느꼈다. 그런 와중에 힘없는 사람들의 최후의 항의표시인 단식투쟁을 하는 옆에 먹을 것을 쌓아놓고 '폭식투쟁'을 벌이는 모습은 불편함을 넘어 실로 공포영화를 보는 듯한 기괴한 느낌을 줬다. 중세 봉건왕조가 아닌 민주사회에서 대통령이나 권력기관에 대한 비판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권력을 비판한 작품의 전시가 거부되고 사이버공간에 올려진 댓글이나 신문에 기고한 글중 내용 하나 때문에 검찰에 고발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검찰은 지극히 사적인 사이버 채팅공간까지 검열하겠다고 나서면서 전무후무한 사이버 이민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과연 정상인가. 지금 우리 사회가 정상이라면 이러한 것들을 불편하게 느끼고 있는 내가 비정상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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