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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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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14. 7. 29.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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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법정스님이 머물렀던 길상사(서울 성북구 선잠로5길 68)는 한 때 명성을 날리던 요정 대원각의 주인인 김영한으로부터 시주를 받아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로 창건된 사찰이다. 1951년경 김영한씨가 일제시대 ‘청암장’이라 불리던 별장을 매입하여 운영하기 시작한 대원각은 3공화국이후 군사정부시절 국빈 접대와 정치 회담 장소로 명성을 떨쳐온 서울의 3대 요정중 하나로 1980년대 말까지 운영됐다.

 
원래 이 요정의 주인이었던 김영한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1987년 무렵 LA에 머물던 법정 스님을 찿아가 당시 시가로 천억 원이 넘는 대원각을 시주하겠으니 절로 만들어 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법정 스님은 몇 번이나 고사하다가 마침내 1995년 대법사를 짓게 됐다. 그리고 1997년 길상사 창건 법회 때 김영한은 법정 스님으로부터 염주 하나와 길상화라는 법명을 받았다. 그 때 당시 그녀는 수천의 대중 앞에서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 저는 불교는 잘 모릅니다만... 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언젠가 그녀는 기부한 천억 원이 아깝지 않느냐는 질문에 "천억 원은 그 사람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라고 말했다. 그녀가 말한 그 사람은 바로 천재 시인 백석이었고 그녀는 백석이 사랑했던 그녀 자야였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백 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있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사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에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20대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였지만 기생과의 만남을 못마땅히 여긴 백석의 부모로 인해 백석은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고 그 이후로도 백석은 몇 번이나 김영한의 곁으로 돌아가다가 결국 같이 만주로 도망가자고 설득했지만 김영한이 이를 거절하고 혼자 만주로 떠났다. 이 때의 이별이 얼마 후 남북이 분단되면서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이별이 될 줄은.... 

김영한은 육신의 옷을 벗기 하루 전 목욕재계 후 길상사에 와서 참배를 하고 길상헌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그녀는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서 첫눈 오는 날 길상사 마당에 뿌려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리고 49재 후 첫눈이 도량을 순백으로 물들인 날 시와 사람을 사랑한 그녀는 하얀 눈이 되어 길상헌 뒤쪽 언덕 바지에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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