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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에 생각나는 어진 통치자들

한라의메아리-----/주저리주저리

by 자청비 2014. 12. 3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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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에 생각나는 어진 통치자들

 

<박석무 다산연구소 소장>

 

금년 한 해도 저물어갑니다. 달력의 마지막 장에는 동지(冬至)가 지나 며칠이 남지 않은 연말의 날짜가 딱 다가서있습니다. 아무런 성과 없이 한 해를 또 보내야 하는 마음, 괜스레 허전하기만 합니다. 『목민심서』를 읽어보니 “섣달그믐 이틀 전에 노인들에게 음식물을 돌린다(歲除前二日 以食物 歸耆老)” 「養老」라고 되어 있습니다. 통치자(목민관)는 노인들을 봉양하는 정신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연말이면 음식물이라도 노인들께 나눠주는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추운 날씨에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은 노인들에게 높은 사람이 간단한 음식물이라도 보내준다면 그게 얼마나 따뜻한 일인가는 묻지 않아도 알 일입니다. 정치란 이렇게 인정(人情)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다산은 양로연을 베풀기를 강조하면서 백성과 통치자와의 소통의 길이 열릴 방법을 상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장횡거(張橫渠 : 이름은 재(載), 송나라의 큰 성리학자)가 운암(雲巖)의 현령으로 있을 때, 매월 초하루에 술과 음식을 갖춰놓고, 고을의 노인들을 불러 현청에 모아서 술을 권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어른을 봉양하고 섬기는 뜻을 알게 하였다. 그러면서 백성 간의 괴로운 사정을 묻기도 하고 자제들을 훈계하는 도리도 물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여헌 장현광(張顯光:조선 성리학자)이 보은(報恩)의 현감이 되어 부로(父老)들과 초하루와 보름날에 서로 모이기로 약속하고, 그들로 하여금 민간의 괴로움과 잘못된 점들을 말하게 하여 보완해 바로잡고, 효도와 우애를 돈독히 하며 염치를 힘쓰고, 덕행을 존중하고 나쁜 풍속을 물리쳤다.”「양로」라는 이야기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장횡거와 장여헌은 양로 잔치에 필수적으로 있어야 했던 일을 했다고 칭송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필수적인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양로의 예(禮)에는 반드시 ‘걸언(乞言)’하는 절차가 있으니, 백성들의 괴로움과 질병을 물어서 예의에 합당하도록 해야 한다(養老之禮 必有乞言 詢瘼問疾 以當斯禮 : 養老)”
 
  날씨가 추워진 연말, 대통령·도지사·광역시장·군수·시장·구청장 등의 목민관은 의당 연로한 노인들을 불러 모아 양로 잔치를 베풀어야 하고 그 잔치에서는 노인들 각자에게 백성이 당하는 현실적 괴로움이나 그들이 병고에 시달리는 아픔 정도를 물어보는 ‘걸언’, 즉 민정을 물어보는 예를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요즘 같은 연말, 대통령은 지역별로 순수한 노인 몇 십 명이라도 불러 음식도 대접하고 조그마한 선물이라도 선사하면서 가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근래에 그들이 당하는 괴로움이나 병고에 대하여 듣고 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또 다른 목민관들은 지역 내의 노인들을 모아 잔치를 베풀고 그들의 괴롭고 고달픈 ‘민막(民瘼)’을 듣고 해결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바로 국민과의 소통이자 양로연의 목적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날씨가 추운 세모입니다. 우리의 목민관들, 대통령에서 구청장에 이르기까지 그런 ‘걸언’제도를 활용해보면 어떨까요. 그렇게라도 해야 추위가 한 풀 꺾이지 않을까요.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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