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8.04.25
병원에 입원 중인 할머니는 아흔한 살이었다. 할머니의 병이 위중하다는 의사의 연락을 받고 열한 명의 자녀와 많은 손자 손녀가 병실에 모였을 때, 그는 이미 혼수상태에 빠진 듯했다. 가톨릭 신부인 장남이 "어머님은 이미 말씀하는 것이 불가능하니까 다 함께 기도를 올리자"라고 말하고 모두 미사를 올렸다.
미사가 끝나자 어머니는 눈을 번쩍 뜨고서 "나를 위해 모두 기도를 했구나, 고맙다. 그런데 위스키 한 잔 마시고 싶은데"라고 말해 모두 놀랐다. 위스키 한 잔을 가져오자 어머니는 한 모금 마시고는 "미지근하니까 얼음을 조금 넣어줘"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두 시간 정도밖에 살 수 없다고 했던 그가 얼음마저 요구하니 모두 충격을 받았다. 재빨리 얼음을 넣어주자 어머니는 "맛있다"고 말하면서 전부 마셔버렸다. 그러고 나서 이번에는 "담배를 피우고 싶구나"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장남이 "의사가 담배는 좋지 않다고 했어요"라고 하자 어머니는 "죽는 것은 의사가 아니라 바로 나지. 담배 한 개비 주게나"라고 말했다. 그는 여유 있게 담배를 한 대 피우더니 모두에게 감사를 표한 뒤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안녕"이라고 말하고는 옆으로 누워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그때 슬퍼했던 자녀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물론 어머니의 죽음은 슬픈 일이었지만 죽음의 순간 그가 보여주었던 밝은 유머를 생각하면서 얼마나 어머니답게 죽었는지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고는 웃었다. 어머니는 평생 위스키나 담배를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니까 죽기 직전 아무리 생각해도 위스키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울 이유는 없었다.
그는 그때까지 여러 번 친척이나 친지의 장례식에 참석해 모두가 눈물을 흘리면서 슬퍼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래서 자신이 죽으면 자녀와 손자를 슬프게 할 게 아니라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주려고 했다. 실로 너무나 아름다운 배려가 아니겠는가? 그것도 자신이 죽음에 직면하고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말이다.
위의 글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독일인 신부로서 일본 상지대에서 죽음학과 인간학 등을 가르치고 있는 알폰스 데켄 교수의 친구가 겪은 이야기다. 보통 우리는 마지막 순간에 임종을 앞둔 사람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할머니는 유머를 통해 자식과 손자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귀한 선물을 남겨주고 떠났다.
한국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광주에 사는 70대 할머니가 자식에게 감사하는 글을 남기고 최근 운명했다. 나 모 할머니는 암으로 투병하다가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길 즈음 자식들에게 14줄의 짤막한 유서를 작성했다.
"자네들이 내 자식이었음이 고마웠다. 자네들이 나를 돌보아줌이 고마웠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자네들이 세상에 태어나 나를 '어미'라 불러주고, 젖 물려 배부르면 나를 바라본 눈길에 참 행복했다네" 그러면서 "병들어 하느님 부르실 때 곱게 갈 수 있게 곁에 있어 줘서 참말로 고맙네"라며 자식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할머니는 40대 초반 시청 공무원이던 남편을 암으로 먼저 떠나보낸 뒤 35년간 수절하며 자식들을 키웠다. "지아비 잃어 세상 무너져 험한 세상 속을 버틸 수 있게 해줌도 자네들이었네"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자네들이 있어서 열심히 살았네"라는 말도 남겼다.
할머니를 떠나보낸 자식의 마음은 어떠할까? 물론 슬플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할머니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은 세상을 떠나면서도 살아있는 사람을 배려할 수 있다.
생전에 장례식을 치르며 이웃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 사례도 있다. 일본의 안자키 사토루(安崎暁) 전 코마츠 사장이다. 그는 지인을 초청하는 글에 “암을 발견해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연명 효과는 조금 있겠지만, 부작용 가능성도 있는 방사선이나 항암제 치료는 받고 싶지 않다. 아직 건강할 때 여러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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