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대 국문학과에서 지역문화 탐방에 나섰다. 해마다 하는 행사인데 점점 내실이 깊어져간다. 올해는 해설사까지 동원됐다. 지난해에 이어 4.3의 흔적을 찾아보는 코스였다. 지난해가 제주동쪽이었다면 올해는 서쪽이다. 4.3의 흔적이야 도내 곳곳 아닌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이 널려 있었지만 이제는 4.3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지면서 유적지 정비도 제법 됐고, 공개적인 연구도 많이 이뤄졌다. 이번 탐방은 안덕면 동광리 헛묘에서 부터 시작됐다. 4.3 당시 소개작전으로 인해 마을이 완전히 소실됐고 피신했다가 잡혀간 후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시신을 찾지 못하게 되자 후손들이 유품 몇점을 집어넣고 묘를 썼다. 이른바 헛묘다. 이 구역안에 7기의 묘가 2기안에는 두사람이 함께 있어 총 9명의 묘인 셈이다. 이 동네에만 이같은 헛묘 지역이 두 곳이나 있다. 동광리 자연마을이었던 무동이왓과 삼밭구석, 조수궤 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채 마을이었다는 표지석만 남아 있을 뿐이다.
다음으로 향한 곳이 대정읍 섯알오름이다. 일제말기 미국의 상륙에 대비해 결7호작전이 제주에서 전개됐고, 가장 상륙가능성이 높았던 화순 해안에 인접한 안덕과 대정읍의 오름에는 곳곳에 갖가지 진지와 갱도가 있다. 섯알오름 바로 앞 송악산 밑에는 함정을 공격하기 위한 가미카제식 개인어뢰정(카이텐이라고 했던가?)이 출격할 수 있도록 호를 파놓았다. 지금은 절벽등이 붕괴되면서 많이 메워져 원형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지만 아직도 큰 규모로 남아 있는 곳이다. 섯알오름에는 일제때 고사포진지와 함께 대형 갱도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것만 있었다면 섯알오름이 그토록 아프고 슬픈 의미로 다가오진 않았을 것이다.
섯알오름이 제주도민에게 그토록 슬프고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4.3의 연장선상에서 이곳에서 대규모 학살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4.3때 도내 곳곳에서 학살이 진행된 것은 난리통 속에 벌어진 참극이었지만 이곳 섯알오름에서 진행된 학살은 한국동란의 와중에 진행됐다. 전쟁이 일어나자 전국적으로 이전에 빨치산이었다가 전향-이런 사람들은 내륙에서는 보도연맹회원으로 관리했다-했거나 평소 사회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사람 등 적에게 협력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색출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예비검속이었다. 대정읍 지역은 한국동란 당시 육군 제1훈련소가 들어서는 등 군인들이 많이 주둔하던 곳이다. 이런 영향때문인지 대정읍지역에서 예비검속으로 3백여명이 붙잡혀갔다. 이가운데 일부를 추려낸 뒤 250여명을 고사포진지가 있었던 섯알오름의 탄약고터-움푹 패여 있다-로 끌고와 재판도 없이 집단 총살했다.
당시엔 시신을 수습할 엄두도 못내다가 나중에 시신을 수습하려 했으나 누가 누구의 뼈인지 알수 없을 정도로 되어 결국 '백 명의 할아버지에 한 명의 손자'라는 뜻의 백조일손지묘가 인근에 자리잡게 됐다. 이제 섯알오름 입구에는 평화의 비둘기와 소녀상과 슬픔을 상징하는 노란 깃발 무더기가 입구에 서 있다. 입구에서 모슬봉쪽으로 바라보면 일제의 비행기격납고도 보인다. 섯알오름 정상에는 일제의 고사포진지가 아직도 남아 있다. 섯알오름을 돌아내려오면 오름을 관통하는 갱도진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갱도 지붕에서 간간히 작은 돌이나 모래 등이 떨어지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철제구조물을 설치해놓았다.
점심식사 후 가까운 추사기념관으로 향했다. 여러차례 들러 보았지만 한문에 조혜가 깊지못해 이해가 모자라 공감을 못했던 터라 데면데면했는데 이번에는 단체방문으로 미리 해설사를 요청해놓은 덕에 추사의 가정환경과 추사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하게됐다. 기근으로 백성들이 굶게 되자 그동안 모은 재산을 털어 쌀을 사서 백성들에게 풀었던 김만덕의 선행을 기려 그의 손자에게 추사가 직접 써주었다는 '은광연세(은덕의 후광이 세세토록 빛난다)'에서 은(恩)자에 담긴 추사의 마음이 크게 다가왔다. 형상으로 보자면 섬에 사람이 갇혀 있는데 배에 쌀을 싣고 와서 구해준다는 모습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다른 곳이 고산 수월봉이다. 효심과 우애가 지극한 녹고의 눈물이 흐르는 곳이다. 수월봉 아래 엉알길은 지질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다. 수천년전 화산분출에 따른 쇄설물과 용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이다. 그런데 지질학에는 자신이 없어 생략한다. 수월봉 정자에서 바라본 당산봉과 그 뒤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구름의 모습이 이채롭다. 단체사진 뒤로 보이는 차귀도에 제주의 혈맥을 끊어놓은 고종달이 중국으로 돌아가려는 것을 차단하고 물에 수장시킨 오백장군의 막내장군과 고종달을 수장시키는데 크게 힘을 보탠 한라산신이 보낸 매의 영혼이 훨훨 날아다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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