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27, 2018 /윤보석
한라와 백두가 만났다
널문리가게에서
소리없는 총성이 오갔던 마당에서
너비 2018mm의 테이블 하나를 두고
흙과 흙이 하나가 되고
물과 물이 하나가 되서
민족의 아픔을 간직한
소나무를 잘 키우자고 다짐했다
적막한 어둠속에서
한라와 백두가 서로 얼싸안자
녹슨 철조망 사이로
붉은 꽃 하얀 꽃들이 피어났다
그 사이로 노란 나비가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녔다
애잔한 아리랑이지만 오늘만큼은
신나게 흥겹게 불러보자
압제에서 벗어난 기쁨도 잠시
허리가 끊어진지 70년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었고
한라는 한라대로 백두는 백두대로
위협과 모함으로 서로 할퀴며
무시와 냉대 속에
온갖 고난과 아픔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다
지난 겨울은 너무나 힘들고 추웠다
이제 하나의 봄을 맞이하고 있다
녹슨 철조망을 타고 봄바람이
살랑거리며 다가온다
녹슨 기찻길 위로 만리마는 벌써
한라에서 백두까지 달려가고 있다
가을이 오는 길목 / 윤보석
한낮의 열기를 뒤로하고
어지러이 휘날리는 태풍을 가르며
한밤중에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모다깃비와 함께 나타났다
곱등이가 재잘거리기 시작하고
뜨거웠던 바다에 갈치잡이 배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할 때
한가로이 노니는 비둘기를 채가려는
들고양이의 발자국 소리처럼 다가왔다
동네 어귀에 널린 나팔꽃의 외침속에
묻어나는 알싸함과 구수한 호박꽃처럼
천천히 다가왔다.
창백한 비가 퍼붓던 새벽
평생 술 담배도 안하고 농사일밖에 모르던
삼촌이 난치병으로 고생하다가
일흔다섯번째 가을을 다 못보고 흙으로 돌아갔다
뜨거웠던 여름의 뒤끝
아직 가야할 길이 먼데
벌써 숨이 차오고
심장이 시큰해진다
잣벡 / 윤보석
정말로 한낱 자갈더미였을까
구불구불 밭 경계선을 따라
휘파람을 불며 서 있었다
어느날 밭 한복판으로 길이 나면서
육중한 굴착기 소리에
돌무더기가 드럼 소리를 내며
힘없이 쓸려 나갔다
한줄기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처럼
허리가 잘려나갔다
돌이 쓸려가며 흐느끼는 소리에
애기구덕을 흔들던 엄마의 자장가소리
섬모시풀의 펄럭임마저 사라졌다
대나무의 흔들림 속에
잣벡과 함께 살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제주어 시>
<2018년 12월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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