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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지 돌과 바람 7집 수록

한라의메아리-----/문예창작 모음

by 자청비 2019. 6. 4.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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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수레 / 윤보석

 

 

눈이 펑펑 쏟아지는 이른 새벽

노부부가 손수레를 끌고 밀며 지나간다

폐휴지와 종이상자가 가득 쌓인 손수레

할아버지는 모자를 눌러쓴 채 앞에서 끌고

할머니는 뒤에서 구부정한 자세로 밀고

비옷도 아닌 투명비닐을 뒤집어 쓴 채

그 위로 하얀 눈이 사정없이 퍼붓는다

 

국민을 위한다는 것들은

사회복지 예산을 삭감하면서

지역구 선심성 예산을 챙기고

최저임금 몇백원 인상에 반대하면서

자신들의 세비는 몇천만원씩 인상한다


노부부는 10원이라도 더 받기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손수레를 끌어야 한다

하루하루 수레와 함께 하는 삶

죽지 못해 살고 있다는 말이

밤사이 귓가를 어지럽히는 세찬 비처럼

가슴을 파고 든다

검은 구름 사이로 고개 내민 햇살처럼

아스팔트에 피어난 구절초처럼

아슬아슬하게 파고 든다

툭툭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처럼

삶의 무게로 가슴에 박힌다.





숲에서 길을 잃다  / 윤보석

 

 

숲 속에서 나와 옷을 털기 시작했다

도깨비들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네들이 언제 달라붙었는지 기억이 없다

개암을 부스러뜨리면 모두 떨어질까

한시바삐 여기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무한궤도 레일자국이 선명했던 숲길

나뭇가지들은 버려진 비닐처럼 너덜너덜해졌고

밑둥부터 잘려나간 나무들은 한귀퉁이에

아파트처럼 차곡차곡 쌓여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굴착기 소리

기차가 지나가는 듯한 전기톱날 소리

무거운은 굉음과 함께 숲이 무너지고 있었다

갈 곳 잃은 노루들의 울음소리만 숲 속에 메아리쳤다

 

인간이 욕망이 할퀴고 있는 와중에도

겨우내 차디찬 땅을 뚫고 나신이 솟아나고 있었다

파헤쳐진 듯 했던 뿌리는

달팽이 기어가듯 땅 속 깊이 뻗어가고

나뭇가지도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갔다

얼어붙은 것 같은 숲에 휘파람새 소리가 퍼졌다

 

도깨비들을 모두 털어내니

내 가슴을 작은 북의 트레몰로처럼

두근거리게 만드는 누군가가 있다

빨간 헬멧을 눌러쓴 아가씨들이

따뜻한 햇살아래 말없이 웃고 있다



 

  나부랭이의 주접떨기

     -  저항의 미학

                                                      / 윤보석  

 

레이디 고다이바의 알몸과 가이포크스의 가면

빅토르위고의 방랑과 로자파크 부인의 버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과 바스티유 감옥의 습격

뱀은 목숨을 걸고 자신을 옥죄는 허물을 벗는다.

 

이 땅의 선남선녀들에게 강요되는 삶은 경쟁. 유치원 때면 그림 태권도 피아노에 영어도 몇마디 할 줄 알아야 한다. 학교에 들어가면 학원과 학교에서 끝없이 답을 골라내야 한다. 하등의 상상력이나 창의력은 허용되지 않는 경쟁. 하지만 노는 물이 다른 금수저 자녀들이 이기게 돼 있는 불공정한 게임.

 

이 땅의 금수저들은 별장 성접대를 받고, 불타는 태양 아래 성폭력을 가하고, 마음대로 비행기 회항시키고, 마음에 안들면 물컵을 내던지고 욕설하며 지랄같은 갑질을 하고 별별 부조리를 저질러도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는 초능력자. 언론 흉내내는 찌라시와 기레기가 감싸고, 떡검 떡경 농판이 눈감아 버리면 깜깜이 세상. 미국을 떠받드는 토착왜구 정치인과 종교인까지 가세한다. 결국 가재는 게편. 꼴보수가 덧칠한 이념의 굴레에 사로잡혀 사리판단을 못하고 이용당하는 OOO부대는 금수저의 충견.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건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의 전설. 전국에 편의점보다 더 많은 교회, 성당, 사찰을 찾아다니며 성공을 기원하는 것은 흙수저의 몫. 그렇게 각자도생하는 현실에서 간택받은 이는 비틀린 사회에 맞게 잘 훈련된 원공. 낙오되거나 견디지 못해 자신을 내던져버리는 곳은 백짓장같은 허공. OECD국가중 자살률 1~2, 무엇이든 순위경쟁에선 수위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 대한민국. 이 땅에 촛불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4월이 오면  / 윤보석

 

 

해마다 4월이면 핏빛 광풍에 휩쓸려

동백나무 아래 힘없이 떨어진 별들을 떠올린다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돼 어미를 잃은

젖먹이의 울음소리가 허공에서 맴돌고

평생 땅밖에 몰랐던 하르방은

영문도 모른 채 쫓겨 다녀야 했다

오라리 어느 집에서 시작된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노란 유채꽃 위로 붉은 선혈이 흘렀고

평화롭던 남도를 절규로 뒤덮었다

 

세치 혀와 작은 몸짓에 삶과 죽음이 갈렸다

빨갱이타령 앞에 그 많던 신들조차도

어디론가 가버리고

옴팡밭 동백나무 아래로 별들이

힘없이 툭툭 떨어져 갔다

동굴에 피해 있던 가족과 이웃들은

연기에 실려 사라지거나

폭포수와 함께 기억에서 지워졌다

살아남은 자는 고통과 아픔 속에

말도 못하고 평생을 숨죽여 지냈다

 

이제 아침이 밝아오고

동백나무는 새로 심어지는데

빨갱이 타령은 아직도 그칠 줄 몰라,

각명비에 박혀버린 별과

이름없이 누워 있는 백비는

누런 모래바람 속에 억겁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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