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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지 돌과바람4집 수록시

한라의메아리-----/문예창작 모음

by 자청비 2018. 11. 12.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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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 윤보석

 

병원은 공항터미널처럼 오가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여행 직전의 설렘이나 즐거움은 없다

기다리는 사람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번호가 불려질 때까지 무표정하게 앉아 있고

진료를 마친 환자는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간호사는 진료실과 환자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고

응급구조사는 긴급히 의료장비를 옮기고

이송요원은 환자가 누워있는 이동침대를 밀고 간다

오랜 병원생활에 지친 듯 덥수룩한 수염에

기브스한 다리를 쭈욱 내밀고

휠체어에 탄 채 햇빛을 찾아가는 환자.

가녀린 왼팔에 긴 튜브와 바늘을 꽂은 채

약들이 주렁주렁 달린 수액걸이를 끌면서

생기없는 얼굴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가녀린 환자

이런 환자들의 모습에 안쓰러운 감정은 잠시뿐,

중증환자를 봐도 크게 연민이 일지 않을 만큼

익숙해져버린 감정이 두려워 진다.

로비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병원의 시간은 느릿하지만 빠르게 흘러간다

환자는 자유인이 될 때까지 긴 시간의 기다림으로

의사와 간호사에게는 정신없는 일상으로

그렇게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이 병원을 오간다

어스름 저녁 병원을 나서면

세상을 쓸어버릴 듯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가

어딘가 겹겹이 쌓여 숨어 있는

무거운 감정들을 끄집어내 산산이 부순다.




게임의 법칙 / 윤보석

 

이기심은 생존본능이다.

 

목표는 이문을 남기고 시장에서 살아남기다. 노동은 가려지고 한겨울 거친 들판에 누런 잎만 남았다. 누런 잎은 인간만이 누리는 행복이다.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위에 군림할 수도 있다. 사랑이 없어도 예쁘고 잘생긴 애인도 얻을 수 있다. 없는 사람들은 삶의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많이 가진 사람은 더욱 많이 갖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인간관계도 누런 잎으로 말을 한다. 사막에서 영혼을 내팽개친 나그네들이 오아시스인줄 알고 모여든다. 광활한 대지와 푸른 초원을 잃어버린 영혼들은 목적지도 모른채 어둠 속을 걸어간다. 게임의 법칙은 칼날이다. 의사의 손에 들려 목숨을 살리기도 하고 정화되지 않은 폐수가 되어 강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칼날 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무엇이든 밟고 올라서야 한다. 비겔란 공원의 모놀리트는 계속된다.




회색빛 오후 / 윤보석


교회 첨탑 앞에 큰 소나무가 마주 서 있다.

소나무에 앉아 있던 까마귀가 갑자기 울어댔다.

한동안 울어대던 까마귀는 훌쩍 자리를 털고

회색빛 하늘 속으로 날아갔다.

하늘 사이로 한줄기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바람에 휩쓸린 낙엽들이 우루루 한쪽으로 몰려갔다.

그 곳에는 잔뜩 웅크린 고양이 한 마리가

곁에 있는 나무 위를 노려다보고 있다.

나무 위에는 비둘기들이 모여 앉아

한가로이 졸고 있다.

주위에는 비둘기 깃털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한 사내가 흩어진 깃털사이를 터벅터벅 걸어갔다.

표정없는 그 사내의 얼굴에 콘크리트 벽이 새겨졌다.

콘크리트 벽사이로 사내가 조용히 사라졌다.

거대한 벽은 아틀란티스 대륙처럼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2017년 12월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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