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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4의 도전은 계속된다

건강생활---------/맘대로달리기

by 자청비 2005. 6. 10.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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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이번에도 안됐다. 그러나 SUB-4를 향한 나의 도전은 계속된다. 올 가을 제주시보다 더 힘든 코스인 서귀포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에서 나의 도전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이제 지난 6월 5일 6번째 풀코스에 도전하면서 품었던 SUB-4의 꿈은 내가 달리던 해안도로 곳곳에 흩어지고 말았다. 원인은 역시 동계훈련 부족과 무더위와의 싸움에서 진 탓으로 생각된다. 며칠전부터 무더워진 날씨가 예사롭지 않다고 여기며 대회날 매우 무더울 것으로 예상했다. 아닌게 아니라 대회날 아침 따가운 햇살이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무더울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러나 난 sub-4가 어려울 것 같다고 느끼면서도 그래도 내심 기대했다. 하긴 첫 도전할 때부터 제 분수도 모르면서 은근한 나의 기대는 혹시나 SUB-4 하는 행운이 오지 않을까 라고 항상 생각했다.
 운동장에 도착하고 나서 탈의실에서 복장을 갈아입고 선크림을 바르고 선글라스를 끼고 만반의 준비를 갖춘 뒤 운동장에 나갔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강한 긴장감이 들지는 않는다.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간덩이만 커져 버렸는가 라고 생각해본다. 운동장에 나서니 푸른 잔디가 매우 부드럽게 느껴졌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뒤 운동장 트랙을 두어바퀴 천천히 돌았다. 그리고 에어로빅을 함께 하며 완전히 몸을 푼 뒤 출발선에 섰다. 몇몇 아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인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한담하며 총소리를 기다렸다.
 마침내 9시. 총소리가 울렸다. 천천히 출발했다. 항상 출발할 때는 소란스럽다. 주자들과 주변에서 화이팅하는 소리에 시끌벅적하다. 운동장을 완전히 벗어나니까 조금 조용하다. 1km를 넘어서니까 주자들의 숨소리만이 들린다. 5km가까이 이르니 걸궁팀(다른지방의 농악놀이팀과 비슷하다)이 꽹과리와 징소리, 장구소리가 요란하다. 5km 체크포인트 통과시간이 27분. 조금 빠른가? 9km쯤 이를 때 한무리의 행렬이 앞에 있다. 가만히 보니 포커스마라톤의 정모 사장이다. 이번 대회에서 풀코스 도전 1백회 기록을 세운다고 한다. 1백회 기록을 세우는데 주위에서 동반주를 하다보니 덩어리로 뭉쳐져 있다. 모두들 달리기에 관한한 고수들이다. 후아! 난 과연 1백회 기록을 세울 수 있을까 하고 잠깐 생각해본다. 그리고 저 주자들은 모두 고수들인데 내가 저 뒤만 쫒아가도 SUB-4를 달성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잘난(?) 사람들과 함께 달리기가 싫다. 원래 내가 별볼일 없는 사람이다보니 성질이 좀 그렇다. 그냥 넘어섰다. 나중에 어떻게 될값에 달려가자 라고 생각하면서...
 하프반환점을 지나가니 풀 주자는 별로 보이지도 않는다. 16km쯤 가다보니 뒤에서 웬 남자와 여자가 쫒아온다. 유니폼을 보니 부산오뚜기마라톤클럽이다. 남자의 행색을 보아하니 고수다. 내 실력은 별로지만 달리기를 오래하다보니 척보면 고수인지 알아본다. 남자가 여자의 페메를 해주는 것 같았다. 남자가 나보고 기록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온다. 4시간을 넘긴다고 대답하자 이시간대면 4시간이내가 충분할 것 같은데요라며 코스가 좋아 기록을 많이 낼 것 같다고 한다. 이런 말을 한다면 이 코스가 초행인 사람이다. 이 코스 반환점을 전후해 구불구불한 길과 오르락내리락 하는 언덕으로 매우 힘든 코스라고 설명해줬다. 말이 없다. 여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저만치 앞서간다. 바짝 쫒아가려다 오버하는 것 같아 그만뒀다.
 이윽고 마침내 반환점에 이르렀다. 1시간 56분대다. 이 정도면 평상시와 비교할 때 오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면서 힘차게 반환점을 돌았다. 반환점을 돌고 한 3백m쯤 갔을까. 정모사장 행렬과 마주쳤다. 난 잊고 있었는데 바로 내 뒤에 달리고 있었구나. 하기야 대부분 3시간 초반대 고수들인데...라고 생각하며 이들이 얼마쯤에서 나를 추월하고 갈까라고 생각하며 달려갔다. 그러나 페이스가 초반보다 많이 느려진 것 같았다. 24km를 조금 넘어서자 뒤에서 한무리가 달리는 소리가 들린다. 정 모사장 일행이다. 그런데 함께 달리는 주자들의 숫자가 많이 줄었다. 후반들면서 고수들이 스피드를 올리자 많은 사람들이 뒤처진 모양이다.
 역시 고수들이다. 거침없이 치고 나간다. 이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러고 보니 조금씩 나를 추월해 넘어가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난다. 27km쯤에서 잘아는 도르미(제주도청 달리기모임) 회원이 나를 넘어서간다. 4시간5분이 목표라고 한다. 내 페이스는 그를 따라가기엔 너무 느렸다. 그러면 이제 sub-4는 이미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30km를 통과했다. 시간은 2시간52분. 이제 12km를 1시간8분에 가야 하는데 그럴려면 5km를 28분대에 뛰어야 한다. 이미 25~30km구간 5km 페이스는 30분을 넘어설 정도로 페이스가 떨어진 상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가다보니 32km지점에 이른다. 시간은 3시간을 넘어섰고 페이스는 이미 km당 7분대로 크게 떨어졌다. sub-4 목표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다리에 맥이 풀렸다. 그러고보니 너무 덥다고 느껴졌다. 바가지를 빌려 머리에 물을 쏟아붓고 천천히 뛰어본다. 한 3백m쯤 달리다가 나무그늘이 보이길래 잠시 쉬며 다리를 뻗어본다. 지금까지 항상 이 지점(32km)쯤 되면 주저앉았다. 비가 왔던 지난해엔 씩씩하게 통과했지만 작년 가을 서귀포에선 이 지점에서 대회를 포기하기도 했었다.
 걸어가기엔 나의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고 뛰어보지만 사실상 걷는 것이나 별반 다름없다. 35km구간을 통과할 즈음 갑자기 겨드랑이가 매우 아파왔다. 대회 시작전 쓸림을 방지하기 위해 바세린을 발랐는데 잘 안발라졌거나 무더운 날씨로 바세린이 일찍 씻겨진 모양이었다. 아프니까 되게 신경이 쓰인다. 급수대에 혹시나 약품을 구했으나 없다. 다행히 얼마가지 않아 119구급대가 보여 바세린을 찾았으나 없어 할 수 없이 대일밴드를 붙이고 뛰었다. 한결 나았다. 36km지점에 이르니 웬 아줌마 셋이서 꿀물을 공급해준다. 정말 꿀맛이었다. 소속을 물어보니 제마클이란다. 제주마라톤클럽이다. 고맙다는 말한마디 던지고 달리면서 생각했다. 사실은 나도 제마클 창립회원이 될 수도 있었다. 내가 한창 달리기 재미에 빠져 갈 때 제마클이 창립준비위를 구성하고 창립회원 모집을 시작했다. 현재 제마클 회원인 한 분이 같이 가입하자고 했으나 나는 사양했다. 그분은 당시 회원으로 가입해 여전히 제마클서 활동하고 있다. 나는 실력도 없으면서 달리기 클럽에서 달리기 한다는 티를 내는 것이 싫었고, 함께 하자면 시간을 정해야 하는데 나의 업무상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울 것 같았고, 마지막으로 클럽에 소속되버리면 달리기가 즐거움이 아니라 의무가 될 것 같아 독립군을 택했고 지금도 그 선택은 잘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달리다보니 37km를 지나갔다. 여기서도 물을 한바가지 머리에 쏟아부었다. 조금 시원하다. 이제 마지막고비를 맞게 됐다며 각오를 다져본다. 완만한 오르막 언덕이다. 하프뛸 때는 이 정도 길은 날라서 가지만 풀코스에선 이 길이 마치 보스톤코스(가보지는 않았지만)의 상심의 언덕과도 같은 곳이다. 어렵게 통과하고 마침내 종합경기장 정문이 보였다. 그리고 정문앞 로터리를 가로질렀다. 모든 차들이 나를 위해 멈춰서 있다. 내가 첫 풀코스 도전에서 이 곳을 지날때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그 때 그 기분이 나를 마라톤에 빠지게 한 또 하나의 요인이기도 하다. 로터리를 지나자 일단의 제마클 회원들이 열렬히 환영해준다. 잘 알지도 못하지만 '달림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 서로 격려해 줄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운동장 트랙에 들어서면서 뜻하지 않게 도르미 회원들의 열렬한 환영도 받았다. 난 잠시 얼떨떨 했지만 속으로 감사를 드리며 골인지점을 힘차게 밟을 수 있었다. 최종 기록은 4시간27분대.
 무더운 날씨로 SUB-4를 일찍 포기할 수 밖에 없었지만 나의 생각은 이미 올 가을 서귀포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에 가 있었다. 이곳에서 나의 도전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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