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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사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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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05. 6. 30.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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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라고는 대중가요 몇 곡 밖에 모르는 주제에 단언할 형편이 못되지만, 우리의 여러 노래는 세월 따라 덤덤히 흐른 것만도 아니다. 신산한 현대사를 견디는 과정에서 많은 굴절을 겪었다. 대중들의 삶을 어르고 위무하는 가운데, 시대의 아픔과 갈등도 반영하는 구실이 남달랐다.

최근에 논란의 대상이 된 두 노래,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평양에서 불렀다는 ‘이름 없는 영웅들’과, 송호근 서울대 교수가 그만 부르라고 했다는 ‘임을 위한 행진곡’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내력을 다시 떠올렸다. 

  어둡고 괴로워라 밤이 깊더니
  삼천리 이 강산에 먼동이 튼다
  동무야 자리차고 일어나거라
  산 넘고 바다건너 태평양까지
  아아 자유의 자유의 종이 울린다.

8.15 해방의 기쁨에 넘쳐 온 겨레가 한마음 한뜻으로 불렀던 ‘독립행진곡’(1절)이다.

  <대중가요는 시대의 아픔과 갈등도 반영>

‘천변풍경’의 박태원이 노랫말을 짓고 김성태가 곡을 붙인 이 노래는 모두 3절인데, 요새 사람들 중에 이 가락을 제대로 입에 옮기는 이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는 모두 작은 태극기를 손에 손에 쥐고  목청껏 불렀다. 

급조된 태극기는 저마다 엉성했다. 누런 시험지나 창호지 위에 국대접을 엎어놓고 원을 그렸다. 동그라미의 한가운데를 다시 곡선으로 갈라 만든 태극기가 오죽할까. 건(乾) 곤(坤) 감(坎) 이(離) 사괘의 위치는 더구나 제각각이기 쉬웠다. 그래서 일장기의 붉은 바탕을 먹으로 반 토막 낸, 나상(裸像) 같은 태극기마저 등장했다. 그러나 아무도  탓하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통쾌했기 때문이다.

해방의 환희를 동시다발로 누리게 한 그 노래는 수명이 무척 짧았다. 어느덧 고착화된 분단 현실이 ‘가거라 삼팔선’을 부르게 만든 탓이다. 

그러나 48년에 나온 남인수의 ‘가거라 삼팔선’ 역시 이승만 정권 초기에 벌써 금지곡으로 묶인다. ‘삼팔선을 헤맨다’를, ‘삼팔선을 탄한다’ 등으로 개사한 후에야 다시 빛을 보게 된다.

이 무렵부터 반세기 동안 자행된 금지곡의 역사는 가위 무소불위의 수준이었다. 왜색, 월북, 반체제, 풍자를 이유로 입을 막고, 국민총화를 저해한다는 빌미를 내세워, 청년문화의 대본인 팝음악의 발랄한 활동에 쐐기를 박았다.

이런 노래는 되고 저런 노래는 안된다고, 국민대중의 노래할 자유까지 그토록 오래 빼앗은 경위가 참으로 우습다. 그렇다고 금지곡으로 묶은 ‘달도 하나, 해도 하나, 사랑도 하나’라든가, ‘한 송이 눈을 봐도 고향눈이요, 두 송이 눈을 봐도 고향눈일세’를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가사에 ‘섹스’ ‘드럭’(Drug), '퍽‘(Fuck)같은 단어만 들어가면 사전심의에서 퇴짜를 놓은 결벽주의 앞에서, 이 사회의 칙칙한 성도덕은 얼마나 당당했던가.

 <민중가요는 일종의 문화현상인 것을>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생긴 게 ‘노가바’(노래 바꿔 부르기)다. 유신 시절의 야당원들이 바꿔 부른 ‘사막의 한’이 그런 예의 하나다. 고복수가 노래한, ‘자고 나도 사막 길, 꿈속에도 사막 길’을, ‘야당 길’로 고쳐 한을 달랜 것이다.

뒤이어 등장한 ‘민중가요’는 국어사전에 오를 정도의 문화현상으로 뚜렷하다. 지금까지 창작된 것이 2천곡을 넘는다고 하는데(아침노래기획 엮음. ‘애창민중가요 대백과’)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한계 역시 분명하다. 아니 그것으로 너와 나를 가르는 선을 긋기도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그만 부르라는 소리도 그래서 나왔겠지만, 그다지 걱정을 안해도 될 듯하다. 노래의 발생과 수용 과정이 대강 그렇듯, 생길만 해서 생긴 노래는 사라질만 해서 사라지는 분위기 파악에도 재빠를 것이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어련히 잘 알아서 자취를 감출까 싶다. 그게 노래의 생리다. 함에도 불구하고 영악한 현대인이 그 음악성을 높이 평가하여 끝내 놓아주지 않으면 별수 없다.

해방 60주년이 눈앞에 다가온다. 별별 기억을 추스르고 새 전망을 트려고 벼르는 마당에, 그 동안 부른 노래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던가를 잠시 되짚는다.


글쓴이 / 최일남
소설가
前 동아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
작품: <흐르는 북> <서울사람들> <누님의 겨울> <석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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