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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을 학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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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05. 7. 5.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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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포럼>

잇따라 일어나는 신세대 병사들의 사고 소식이 국민들의 마음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한다. 나라를 맡은 군인들의 정신 자세가 저래서야 편하게 잠을 자겠느냐고 한탄하기도 하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겁나서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겠느냐고 걱정하기도 한다. 이 땅의 소위 ‘힘 있고 빽 있는’ 사람의 아들들이 국적을 포기하는 것이 공연한 일이 아니라고 투덜거리기도 한다. 그런 투덜거림 속에는 국적을 포기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심정도 은근히 스며 있는 것 같다. 

이런저런 진단과 처방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군기가 해이해졌다거나 군대의 운영이 민주적으로 되어서 그렇다든가 전에 비해 군대가 너무 편해진 때문이라는 식의 진단은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접근일 가능성이 있다. 오히려 쉽게 극단적인 사고를 하고 작은 일에도 충동적으로 목숨을 던지는 젊은 세대들의 전반적인 성향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젊은 세대의 사이버적 성향과 풍족했던 성장기>

컴퓨터 게임 세대들의 리셋(Reset) 증후군을 지적하는 생각에는 일부분 타당한 근거가 있어 보인다. 마음에 들지 않은 게임을 접고 새로운 판을 벌이기 위해 리셋 버튼을 누르는 일이 게임 속에서는 얼마든지 언제나 가능하다. 사이버의 세계는 일회적이지 않고 유일하지도 않다. 언제든지 대체 가능하고 무엇으로든 변신 가능한 공간이 사이버의 세계이다. 

사이버 상에 떠도는 수없이 많은 아이디들과 닉네임들이 그 증거이다. 네티즌들은 사이트의 성격에 따라 아이디를 새로 만들고, 아이디에 따라 신분을 위장한다. 필요하면, 더러는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도, 나이와 직업과 심지어는 성별까지 기획한다. 아이디는 네티즌의 신분증명서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 신분증명서는 한 사이트에서만 통용된다. 단 한번의 클릭을 통해 다른 페이지로 넘어 가면 그 아이디는 필요 없게 된다. 사이버상에서 아이디는 수없이 태어나고 수없이 버려진다. 대체 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유일한 것도 없고 고유한 것도 없기 때문에 존중되는 것 또한 없다. 생명 또한 그러하다. 남의 생명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도 그러하다.

물론 이런 신세대들의 사이버적 성향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그렇지만 그것이 전부일 것 같지는 않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좌절이나 절망을 경험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지적은 이 불충분한 논의를 보충하는 데 조금 유익할 수 있다.

지금 20대는 1980년 이후에 출생한 세대이다. 어린 시절에 민주화의 열기를 그저 풍문처럼 들었을 뿐, 그들이 학교생활을 한 90년대는 비교적 사회의 격랑이 심하지 않을 때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구의 사회주의 정권들이 우루루 와해되고 그동안 짓누르던 이념의 짐이 털려나가면서 급격하게 찾아온 포스트모던한 기운은 욕망의 분출을 지원했고 소비와 쾌락이라는 자본주의 코드를 보편화시켰다. 1996년에는 OECD에 가입하여 선진국 행세까지 하였다. 살만큼 살게 되었던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는 후진국의 국민이었고, 의식과 삶의 태도에 있어서 여전히 후진국의 국민이었지만, 자식들은 의식과 삶의 태도에 있어서 공히 당당한 선진국의 국민이 되었다. 

더구나 산아제한으로 하나나 둘밖에 낳지 않은 귀한 자식들에게 자신들이 해온 고생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부모들의 지나친 보호심리가 그들을 고생이 뭔지 모르고 자라게 했다. 사달라는 건 다 사주고 사달라고 하지 않은 것조차 다 사주었다. 초등학교 학생까지 몇 십만원짜리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전화 쓸 일이 뭐 그리 많다고. 어렵게 살아온 부모들의 한풀이 성격이 약간은 있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적당한 좌절은 더 큰 좌절을 이겨내는 항체>

그전에도 원하는 것은 뭐든 하면서 자란 상류층이야 언제나 있었지만,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원하는 것은 뭐든 가질 수 있게 된, 아마도 첫 번째 세대가 요즘의 20대들일 것이다. 돈과 시간이 많아도 시장에 물건이 없거나 오락거리가 없으면 써먹을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사회가 풍요롭지 않던 시절의 부자들은 좀 불행했을 수 있다. 그래서 그때 이 땅의 부자들은 돈을 쓰기 위해 외국으로 나갔겠다. 

오늘날의 소비재화의 풍요로움은 대개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욕망의 충족을 뒤로 미루지 못하도록 추동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손을 뻗으면 욕망하는 것이 손에 잡힌다.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젊은이들은 절제를 모르고 타인을 배려할 줄도 모르는 쾌락주의자가 되어 간다. 욕망의 좌절을 맛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성질 급한 폭군이 되어간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욕망의 좌절, 사회에 대한 절망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어린 시절의 그런 자잘한 좌절과 절망은 세상의 큰 절망과 좌절에 맞설 수 있는 참된 항체를 만들어낸다. 항체를 가진 자는 병을 이겨낸다. 항체가 없기 때문에 작은 병에도 쓰러지는 것이다. 조기에 영어를 가르치고 수영을 가르치는 것이 우선이 아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좌절과 절망을 학습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세상과 삶을 옳게 바라보고 바로 살게 하는 더 급한 교육이라는 생각을 한다. 


글쓴이 / 이승우
· 소설가 / 조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 1981년 <에리직톤의 초상>으로 <한국문학> 신인상 수상
· 1993년 <생의 이면>으로 제 1회 대산문학상 수상
· 대표작 <심인광고><구평목 씨의 바퀴벌레> 
            <미궁에 대한 추측><일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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