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빈 검찰총장이 퇴임식 도중 착잡한 듯 잠시 눈을 감고 상념에 잠기고 있다.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후 검찰총장의 사퇴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우리나라 검찰조직을 새삼 되새기게
한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정치권력의 시녀‘라는 비난을 들으며 나름대로 특유의 조직행태를 다듬어온 검찰은 이제 비로소 틀이
잡혀가는 민주국가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비춰진다. 법으로 규정된 장관의 지휘권 발동조차 순순히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이유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권 독립을 훼손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검찰의 논리가 맞는
것일까.
김종빈 총장은 퇴임사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외부 영향 없이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사건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며 이는 검찰조직의 이기주의가 아니라 국민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보장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우선 법무부를 외부로
보는데 대해 심히 유감이다. 검찰의 특수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법무부와 검찰은 행정자치부와 경찰본부, 국방부와 육군본부와 같은 관계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법무장관이 검찰출신이었다면 어쨌을까. 김영삼 정부 이후 지금까지 법무장관 16명중 검사출신이 아닌 법조인은
1994년 안우만 정 장관과 강금실 전 장관, 현 천정배 장관 등 3명이다. 우연이겠지만 이들 외부인 장관이 취임했을 때 검찰은 특정 사건이나
인사문제와 관련해 장관 혹은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안우만 전 장관은 대법관과 법원행정처장을 역임한 정통 사법부 출신. 대법관 출신 장관은
1963년 민복기, 1992년 이정우 씨에 이어 건국이후 세 번째였을 만큼 드문 일이다.
안 전 장관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
‘4천억원 비자금 의혹‘이 터졌다. 이에 대해 총리실이 수사 착수를 지시하자 정치권에서 일어난 일은 정치권이 해결하라며 검찰은 수임을
거부했다. 힘겨루기 양상으로 비화된 수사착수 논란은 안 전 장관이 총리의 지시를 받아 전격적으로 수사 지시를 내리자
봉합됐다.
이후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파격적으로 강금실 장관이 취임하자 검찰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게다가 인사파문까지
겹치면서 사상 초유의 대통령과 법무장관, 평검사들의 난상토론까지 이뤄졌다. 그러나 강 전 장관의 후임으로 부산고검장을 지냈던 김승규 현
국정원장이 취임한 이후에는 검찰이 인사나 특정 사건을 놓고 장관과 충돌을 빚은 적이 없다. 강 전 장관을 경험했던 검찰은 천 장관이 부임 당시
크게 동요하지 않았지만 이번 파문으로 결국 외부인 장관에 대한 반감이 폭발했다.
이같이 되는데는 사법시험 하나로 법조인이 되는
풍토도 한몫한다. 안 전 장관은 법관출신이지만 당시 김기수 검찰총장의 사법시험 선배였다. 그러나 강 전 장관과 천 장관은 임기를 같이한 송광수
전 검찰총장이나 김종빈 총장보다 사법시험 후배였다는 점도 총장이 장관의 지휘를 쉽사리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중 하나로
보인다.
김종빈 검찰총장은 퇴임사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권 독립을 거듭 강조했다. 이번 사안의 발단은 친북 발언을 한
강정구 교수에 대한 구속이나 불구속이냐 문제였다. 검찰은 그동안의 전례에 비춰 당연히 구속수사를 하려했으나 인권변호사를 활약했던 천 장관은
불구속 방침을 피력했고 양측간 협의가 있었으나 불발로 끝나면서 이례적으로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라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검찰은 정치인의 외압이라는 인식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그동안 ‘권력의 시녀’라는 비난을 감수했던 검찰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이번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 정치적 중립을 훼손한 것일까. 천 장관 측은 “군사독재 시절 폐습인 구속 남발을 막고 불구속 수사를
확대하는 것은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어야 할 원리”라며 지휘권 발동은 법치주의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검찰권의 남용을 막고 검찰권이
인권보장과 민주주의 정신에 맞게 행사되려면 민주적 통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헌정제도상 검찰권에 대한 민주적 통제 장치는 국회의 검찰총장 탄핵과
법무장관의 수사 지휘권 발동 등 두가지이다. 이 두가지중 한가지가 행사된 것이다. 게다가 예전같으면 암암리에 공식계통을 무시하고 직접 담당
검사나 관할 지검장에게 지시가 이뤄졌지만 이번에는 공식계통을 통해 공개적으로 지휘가 이뤄졌다. 그런데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 훼손
운운이라니….
검찰권 독립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검찰권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법제도상의 장치가 검찰총장의 임기제이다. 그런
면에서 김 총장이 보장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그만둔 것은 적절치 않았다고 본다. ‘타협할 줄 모르는 검찰의 생리‘ 때문이거나 `조직을 위해’
그것도 아니면 차후 꼭같은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스스로 희생양을 자처했든 간에 검찰총장이 임기를 포기한 것은 스스로 검찰권 독립을 훼손한
것이나 다름없다. 총장은 장관과 이번 사안에 대해 심도있게 조율하는 지혜와 함께 검찰 내부를 설득하는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총장은 시대의 변화를 인지하면서도 검찰의 자존심을 내세워 내부개혁을 통해 검찰권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을 다질 수 있는 기회를 오히려
놓쳤다. 앞으로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권이 법에 명시된데다 이번에 공개적이고 공식적으로 발동된 이상 앞으로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그러면 그 때마다 검찰총장은 일일이 몸으로 맞부딪쳐야 하는 사태가 초래된다. 이는 검찰조직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파문은 검찰총장의 사퇴로 매듭지어지는 듯 하다. 검찰총장이 사퇴하면서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후배검사들에게 자중을 당부한데다 검찰 내부에서 조직이기주의로 비쳐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설득력을 얻은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에 대해 보는 관점에 따라 누구의 잘못이 더 큰지 주장이 다르겠지만 사태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은 공통된 마음이라고 본다. 검찰총장의 사퇴직후 일부 검사의 행동을 보면서 세상은 블루오션을 찾아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고 있는데
검찰은 여전히 조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이제 법무부와 검찰은 제 자리에서 이번 사태가 일어나게 된 배경과 진행 및
수습과정에서 문제점을 되짚어보고 향후 검찰이 진정으로 국민에게 존경받는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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