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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방송원고 13

마감된 자료-------/성제훈의우리말

by 자청비 2006. 2. 9.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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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방송이야기가 나온 김에, 방송에서 잘못 쓰고 있는 말이 또 있다면요?
성     텔레비전 방송 중에 화면 밑에 ‘잠시후 OOO가 방송됩니다’라는 자막이 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것도 잘못된 말인데요. 우리말에는 수동형식이 거의 없습니다. ‘잠시후 OOO가 방송됩니다’라는 말은 영어식으로 보면, 뒤에 ‘by 누구누구에 의해서’라는 게 생략 된거죠. 그 누구누구는 바로 방송국이고요. 그 말을 다시 바꾸면, ‘잠시 후 우리가(곧, 우리 방송국이) OOO을 방송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좀 부드럽게 바꾸면, ‘잠시후 OOO을 방송합니다’나 ‘잠시후 OOO을 보내드립니다.’라고 하면 됩니다. ‘방송 됩니다’라는 영어식 수동태 문장을 쓰면 말이나 글이 어색합니다.
정     얼마 전에 대학원서 접수하는 컴퓨터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는데요.  그런데 듣다보면 이상한 게, 학생들은 원서를 접수하는 게 아니라 제출하는 거 아닌가요?
성     그렇습니다. 학생은 원서를 내고, 그 원서를 대학이 컴퓨터를 써서 받는 거죠. 곧, 학생이 원서를 ‘제출’하고, 그 원서를 대학이 ‘접수’하는 겁니다. 따라서, 대학에서 컴퓨터를 써서 원서를 접수하는 데 문제가 있었던 것이고, 학생이 컴퓨터로 원서를 제출하는 데 문제가 있었던 거죠. 또, "원서를 접수 받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도 틀린 말입니다. '접수 받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데요. '접수'가 "신청이나 신고 따위를 받음"이라는 뜻인데 이 단어 뒤에 '받다'를 또 쓰면 안 되죠. 그냥 '접수하다'라고 하면 됩니다.
정     그렇다면 ‘인수 받다’도 틀린 말이겠네요?
성     그렇죠. ‘인수’가 “물건이나 권리를 건네받음”이라는 뜻이므로 ‘인수 받다’가 아니라, ‘물건을 인수하다’처럼 써야 합니다. 이 말을 '넘겨받음'으로 순화해서 쓰면 더 좋겠죠.
‘인계’도 마찬가집니다. ‘인계’가 “하던 일이나 물품을 넘겨주거나 넘겨받음”이라는 뜻이므로 ‘인계 받다’고 하면 안 됩니다. 이 말도 '넘겨줌'으로 순화해서 쓰는 게 좋겠습니다.
정     인계/인수 보다 넘겨줌/넘겨 받음이 훨씬 좋네요...     아, 그리고 희귀병이라는 단어도 잘못된 거라고요?
성     ‘희귀’는 드물 희(稀), 귀할 귀(貴)자를 써서 “드물어서 매우 진귀하다”는 뜻입니다. 100 캐럿짜리 다이아몬드 같은 게 희귀한 것이죠. 이런 단어를 써서 ‘희귀병’이라고 하면, “세상에 별로 없는 귀한 병”이라는 단어가 돼버립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당혹스럽죠. 굳이 그런 단어를 만들고 싶으면 ‘희소병’이라고 하는 게 좋을 겁니다. ‘희소’는 드물 희(稀), 적을 소(少)를 써서, “매우 드물고 적음”이라는 뜻이므로 ‘희소병’은 말이 되죠.  사람의 성씨가 드물 때도 ‘희귀 성씨’가 아니라 ‘희소 성씨’나 ‘희성’이라고 해야죠. ‘드문 성’이라고 하면 더 좋고요. ^^*
정     의학용어도 신중하게 만들고 사용해야겠어요...
성     의학용어 중에, ‘불치병’과 ‘난치병’이 있죠? ‘불치병’은 “고칠 수 없는 병”이고, ‘난치병’은 “고치기 어려운 병”인데요. 이와 비슷한 게 ‘불임’입니다. ‘불임’은 “임신할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불임 치료’를 해서 애를 낳을 수 있죠? 치료해서 고칠 수 있는 병, 치료해서 애를 낳을 수 있는 상태면 ‘불임’이 아니라 ‘난임’이겠죠.
정     얘기가 나온 김에, 병원에서 잘못 쓰는 말들 좀 더 알아볼까요?
성     치과[치꽈]는 이가 아플 때 가는 병원이죠? ‘이’가 아픈 거지, ‘이빨’이 아픈 게 아닙니다. ‘이빨’은 ‘이’를 낮잡아 이르는 말로, 주로 동물에게 씁니다. 이런 말은 ‘머리’ 대신에 ‘대가리’를 쓴다거나, ‘입’ 대신에 ‘주둥이’나 ‘아가리’를 쓰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단어는 사람에게는 쓰면 안 되겠죠.
정     네. 또 우리말은 쓰기는 다르게 써도 발음이 같은 것이 많아서 헷갈리는 것도 참 많은데요.
성     ‘부치다’ ‘붙이다’가 그런 경우인데요. 발음은 모두 [부치다]이지만, 쓰기는 달리 쓰죠. 헷갈리지 않는 방법이 있습니다. 양쪽을 딱 접착시킨다는 의미가 있으면 ‘붙이다’를 쓰고, 그렇지 않으면, ‘부치다’를 쓰면 됩니다.  예를 들어, 우표를 봉투에 접착시키는 것이므로, 우표를 ‘붙이다’가 맞고, 어떤 조건을 다는 것도, ‘붙이다’입니다. 이름을 붙이다, 농담을 붙이다처럼 쓰죠.  ‘부치다’는 힘이 부치다, 편지를 부치다, 표결에 부치다처럼 양쪽을 붙인다는 의미가 없는 경우에 씁니다.
정     ‘빈대떡을 부치다’와 ‘빈대떡을 붙이다’는 뜻도 당연히 다르고요? ^^
성     그렇죠. ‘빈대떡을 부치다’는 빈대떡을 만드는 것이고, ‘빈대떡을 붙이다’는 만든 빈대떡을 벽에다 붙이는 거겠죠. ^^*
정     그렇게 또 헷갈리는 것이 부딪치다[부딛치다]와 부딪히다[부디치다]도 있는데요.
성     발음은 거의 비슷하죠. 쉽게 구별하는 방법은 ‘-치-’는 강조할 때 쓰고, ‘-히-’는 피동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따라서, ‘부딪치다’는 어디에 세게 부딪는 것이고, ‘부딪히다’는 “부딪음을 당하는 것”이죠.
정     아…, ‘-치-’는 강조, ‘-히-’는 피동이라고 외우면 되겠네요.  우리말, 배우면 배울수록 어려운 것 같습니다 ^^
성     네, 정말이지 우리말은 정신 바짝 차리고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끝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릴게요..   흔히 별 생각 없이“무슨 고민이 있는지 고개를 숙이고 땅만 쳐다보고 있다.”라는 말을 하잖아요. 이것도 말이 안 됩니다. 고개를 숙이는 것은 좋은데 땅을 어떻게 쳐다보죠? 얼굴을 들고 하늘을 ‘쳐다본다’고 하거나, 고개를 숙이고 땅을 ‘내려다본다’고 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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