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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방송원고 18

마감된 자료-------/성제훈의우리말

by 자청비 2006. 2. 20.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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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상대방과 문제가 생겼을때 실랑인지, 승강인지 헷갈리는데...  뭐가 맞죠?
성     흔히, 도로에서 운전자들이 서로 실랑이를 하느라 차가 막힌다는 이야기를 하는데요. 이 때는 ‘실랑이’ 대신 ‘승강이’를 써야 합니다. 승강이는 한자고, 실랑이는 우리말인데요. ‘승강이’는, 오를 승(昇) 자, 항복할 강(降) 자를 써서, “서로 자기주장을 고집하며 옥신각신하는 일”을 말합니다. 서로 싸우는 것이죠. ‘실랑이’는, “이러니저러니, 옳으니 그르니 하며 남을 못살게 굴거나 괴롭히는 일”을 말합니다. 실랑이 하는 주정꾼처럼 쓰죠. 차가 부딪쳐서 서로 상대편이 잘못했다고 (자기주장을 고집하며) 목소리를 높여 싸우는 것은 ‘승강이’죠. 그들이 지금 남을 못살게 구는 게 아니잖아요.
정     흔히 뭘 ‘짜집기’ 한다.. 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짜집기’가 아닌 ‘짜깁기’가 맞는 말이라고요?
성     네, “옷의 찢어진 곳을 짜서 깁는 일”이나, “기존의 글이나 영화 따위를 편집하여 다른 작품을 만드는 일”을 말하는 단어는, ‘짜집기’가 아니라 ‘짜깁기’입니다. ‘짜집기’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정     ‘승패’와 ‘성패’ 이것도 참 헷갈려요... 오늘은 확실하게 좀 알려주시죠..
성     예전에 선거철에 자주 나오는 말로, “이번 선거는 민주주의 승패를 가름한다”라는 게 있는데요. 이 때 쓴 ‘승패’는 ‘성패’를 잘못 쓴 겁니다. 성패(成敗)는 성공과 패배, 곧 ‘되고 안 되고’를 말하고, 승패(勝敗)는 승리와 패배, 곧, ‘이기고 짐’을 말합니다.
따라서, 어떤 선거로 민주주의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되고 안 되고 하는 것이므로, “이번 선거는 민주주의 성패를 가름한다”처럼 쓰셔야 합니다.
정     ‘수‘에 대한 것도 참 어렵습니다. 그러고 보니 달포쯤 전에 저희 방송에서 돼지고기 이야기를 했었는데, 하면서 삼겹살이 아니라 세겹살이 문법적으로는 맞다는 말씀이 있었는데... 정말 그런가요?
성     우리말로 개수를 셀 때 ‘한 개, 두 개, 세 개’라고 하지, ‘일 개, 이 개, 삼 개’라고 하지 않잖아요. 따라서, “비계와 살이 세 겹으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돼지고기”는 어법상 '세겹살'이라고 부르는 게 마땅하고 실제 80년대까지는 '세겹살'이리고 많이 했습니다. 90년대 중반에 사전에 오르게 된 ‘삼겹살’은 개성상인들의 만든 단어라는 설이 있습니다. 인삼이 많이 나는 개성의 삼(蔘)을 세겹살의 삼(三)과 연결시키려고 ‘삼겹살’이라고 부른 것이 오늘날의 삼겹살로 굳어진 것이라는 거죠.
성     또 우리말에서 단위를 나타내는 일부 의존 명사, 곧, '돈, 말, 되, 자' 등의 수량 단위 앞에서 수를 나타내는 말이 쓰일 때, 여러 형태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좀 정리해 보면, 세 개를 말할 때, '돈, 말, 발, 푼' 앞에서는 '서'를, '냥, 되, 섬, 자' 앞에서는 '석'을 쓰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는 ‘세’를 씁니다. 따라서, 반지는 ‘세 돈’이 아니라 ‘서 돈’이 맞고, 쌀 ‘세 되’를 산 게 아니라, ‘석 되’를 산거죠.
정     아... 반지는 서 돈이 맞고 쌀은 석 되가 맞는 거네요...
성     네 또 앞에서 말씀 드린, '돈, 말, 발, 푼' 앞에서는 '서'를, '냥, 되, 섬, 자' 앞에서는 '석'을 쓴다는 규정은 네 개에도 똑 같이 해당됩니다. 따라서, 반지는 서 돈, 너 돈이고, 쌀은 석 되, 넉 되라고 해야 합니다.
정     그럼 길이의 단위도, 석 자, 넉 자라고 해야겠네요?
성     그렇습니다. 그리고 달의 경우도 3개월을 말할 때, 전통적으로는 ‘석 달’이 맞는데, 요즘은 ‘석 달, 세 달’ 모두 맞고요, 기계 대수를 이야기 할 때는 자동차 세 대, 네 대로 하는 게 맞습니다.
정     아... 다시 한번 정리를 해주시죠..
성     세 개를 말하는 삼(三)을 가지고 예를 들면, '돈, 말, 발, 푼' 앞에서는 '서'를, '냥, 되, 섬, 자' 앞에서는 '석'을, 다른 수량 단위 앞에서는 ‘세’를 씁니다. 사(四)인 넷도 마찬가집니다.
정     며칠전에 백남준 화백이 돌아가셨는데, 그 유해를 한국, 독일, 미국에서 나눠 안치하기로 했잖아요, 유해와 유골.. 같은 의미로 써도 되는지 궁금하네요...
성     유해(遺骸)와 유골(遺骨)은 같은 뜻입니다. 모두 시신을 태우고 남은 뼈를 말합니다. 그래서 백남준 화백의 유해는 세 나라에 나눠서 안치할 수 있는 것이죠. 가끔, 외국에서 돌아가셔서 죽은 후에 국내로 시신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유해를 국내로 모셨다고 하면 안 됩니다. 시신을 모신 것이지, 화장하고 남은 뼈만 들어온 게 아니잖아요.  또, 죽은 사람의 몸을 말할 때도, ‘사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사체’는 일본말입니다. 일본에서는 자기들 상용한자에 포함되지 않는 어려운 한자는 뜻이 비슷하고 발음이 같은 다른 한자로 대체해 낱말을 만들기도 합니다. 사체도 '주검 시(屍) 자'와 '죽을 사(死) 자'의 일본어 발음이 '시'로 같아, '屍' 대신 쉬운 한자인 '死'로 바꿔 '死體'라고 쓴 것입니다. 따라서 죽은 사람의 몸은 시체(屍體), 주검, 시신(屍身) 등으로 순화해 쓰는 게 좋습니다.
   또 ‘빈소’는 “상여가 나갈 때 까지 관을 놓아 두는 방”을 말하므로 사람이 죽으면 빈소는 한 군데 밖에 없습니다. 죽은 사람의 몸이 하나니까 두 군데에 빈소를 설치할 수 없죠. 그러나 '분향소'는 “영정을 모셔놓고 향을 피우면서 돌아가신 분을 기리는 곳”이므로 여기저기에 많이 차릴 수 있습니다.
정     아.. 그래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있는 것은 ‘빈소’가 아니라 ‘분향소’군요. 돌아가신 분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얼마 전에, 알려주신 내용이 기억나는데요.. 장지를 말 할 때는 ‘선영’이라고 하면 안 되고, ‘선영하’나 ‘선영 아래’라고 해야 한다고 하셨죠?
성     예, ‘선영’은 “조상의 무덤”이고, ‘선산’은 “조상의 무덤이 있는 산”을 말합니다. 이번에 돌아가신 분을 조상의 무덤에 묻는 게 아니라 조산의 무덤이 있는 산에 묻는 것이므로, ‘선영’이 아닌 ‘선산’에 모시는 것이죠. 굳이 선영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으시면, ‘선영하’나 ‘선영 아래’라고 쓰시면 됩니다.
정     끝으로 어제 제가 방송에서 담배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담배를 ‘피다’가 맞나요? ‘피우다’가 맞나요?
성     ‘피다’는 목적어를 취할 수 없는 자동사이기 때문에 ‘담배를 피다’라고 쓰는 것은 국어의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입니다. 담배를 ‘피우다’가 맞습니다. 몇 가지 이런 예를 들어보면, 장작을 모아 불을 피는 게 아니라, 불을 피우는 것이고, 잔을 비는 게 아니라, 비우는 것이고, 식은 국을 데는 게 아니라, 데우는 것이고, 운전을 배러 학원에 가는 게 아니라, 배우러 학원에 가고, 한 시간 만에 담배 한 갑을 태니 목이 아픈 게 아니라, 태우니 목이 아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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