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제111사단 주둔지 ②당오름
오름능선 관통한 지하갱도
실체 생생
한라일보 : 2006.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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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오름 지하갱도 내부에 놓여있는 당시 갱목들. /사진=이승철기자
sclee@hallailbo.co.kr | |
분화구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갱도형성
사단 사령부 주둔지·갱목 등 곳곳 산재
당오름은
원물오름과 함께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 최정예부대인 제111사단 사령부 주둔지로 꼽힌다. 당오름(안덕면 동광리 산 68-1 소재)은 북동쪽
일부에 소나무 등이 자라고 있을 뿐 대부분 미끈한 초원오름이다. 표고 475m로 정상부는 원형화구(둘레 약 8백m, 깊이 41m)가 패여
있다.
당오름은 원물오름·도너리오름·정물오름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으면서도 시야가 확 트였다. 제주 서남부 해안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난해 12월 25일 본사 특별취재팀과 이곳을 조사한 일본 군사전문가인 츠카사키 마사유키씨(일본 15년전쟁연구회 연구원)의 말대로 항공폭격에도
끄덕없을 곳이고, 시야가 트여 이 일대는 어느 누가 와도 사령부 주둔지로 탐낼 만한 곳이다.
탐사단은 이 곳에서 오름 정상부
능선을 관통한 지하 갱도진지를 처음으로 확인했다. 제주도가 2003년 4월에 펴낸 ‘제주도 근대문화유산 조사 및 목록화 보고서’에도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던 곳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탄성이 절로 나는 아름다운 오름이 그 내부에 전쟁의 상흔을 깊이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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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 1(왼쪽)>과 <도면
1-1> | |
오름 능선을 관통한
지하갱도는 분화구 안쪽 9부 능선 쯤에 입구가 나 있다(도면 1-1). 지하갱도는 분화구 안쪽 입구를 통해 25m쯤 들어간 뒤 좌우로 갈라진다.
오른쪽으로 이어진 갱도는 중간에 함몰돼 있지만 왼쪽은 분화구 바깥쪽을 향해 출구가 나 있다.
입구는 거의 45도 각도로 경사진데다
미끄럽고, 지열이 피어올라 진입하는데 무척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지하 갱도진지는 송이층으로 돼 있다. 어두컴컴한 갱도 안쪽으로 빛이 희미하게
들어온다. 오름능선을 관통한 분화구 바깥 출구를 통해 햇빛이 들어오는 것이다. 출구를 통해 나가자 도너리오름·정물오름이 바로 코앞이다. 서남부
해안가 역시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오름을 관통한 지하갱도는 폭 140㎝ 정도, 높이는 2m 내외, 총 길이 80여m 규모로
파악됐다(도면 1).
이 지하갱도 안에는 ‘4·3’ 당시 피난민들이 만든 석축구조물도 있어 눈길을 끈다. 석축구조물은 갱도
통로바닥에 길이 230㎝, 높이 60㎝ 규모로 남아 있다.
원물오름·당오름 일대의 당시 상황을 증언한 김여수씨(안덕면 동광리)가
“‘4·3’ 당시 토벌대를 피해 당오름 일대에 사람들이 피신했었다”고 말한 점으로 미뤄 아마도 이 구조물은 당시 사람들이 생활한 흔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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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단이 당오름 지하갱도 내부를 실측하고
있다. | |
또 하나의 갱도는 역시 오름
분화구 내부 8부능선 쯤에 위치해 있다. 이 지하갱도 입구 역시 거의 45도 각도로 경사져 있고 지열이 피어올라 전방을 분간키
어려웠다.
특히 탐사단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갱도내부에 10여개 이상 남아있는 갱목이다. 이 갱목은 벽면과 천정이 무너지지 않게
받치는데 이용했던 것들로 길이는 70㎝ 정도, 둘레는 50㎝ 정도였다. 쓰러진 갱목 옆벽에는 홈이 나 있다. 또 갱목을 설치했던 바닥 구멍도
그대로 남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하갱도의 규모는 폭 140㎝ 정도, 높이는 2m 내외로 파악됐다. 길이는 동∼서 방향이
40m 정도, 남쪽 방향으로 25m 정도다. 지하갱도 내부 서쪽 방향으로는 막혀 있지만 남쪽 방향은 토사가 유입돼 함몰된 것으로
보인다.
츠카사키씨는 당오름 지하갱도에 대해 “이 정도의 폭과 높이로 볼 때 이 곳에 사람들(일본군)이 살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사실상 당오름·원물오름 주변 일대는 일본군 제111사단 사령부 주둔지로 본사 특별취재팀이 입수한 ‘일본군
기밀을철’ 자료에 따르면 사령부 병력 2백45명을 비롯 포병대·통신대 등이 배치돼 있었다. 111사단 총병력은 1만2천명에 이른다. 당오름의
지하갱도는 제주 서남부를 관측하기에 용이한 전략적 거점이고, 앞에 도너리오름에는 포병대 등이 주둔한 점으로 미뤄 작전지시를 하기에도 적합한
곳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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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오름 지하갱도 공동조사에 나선 일제전적지 탐사단과
일본조사팀 | |
김여수씨 또한 이 곳에 대해
생생한 증언을 했다.
김씨에 따르면 “이 곳에 갱목이 많이 남아있었지만 일본군이 물러난 후 이 지역주민들이 집을 짓기 위해 가져다
사용했다”는 것. 또 김씨는 “갱도 내부는 소나무를 대고 그 위로 널판지를 씌워 흙이 떨어지지 않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이곳
일대에 탄약고터도 있었고, 광복후 불발탄을 가지고 놀았었다고 증언했다.
60년 전 오름속 지하갱도의 모습, 이 일대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상상할 수 있다.
분화구 안쪽에는 이외에도 입구가 막혀있는 갱도가 3개 더 있다. 갱도 입구는 방목중인 소가 떨어질
것을 우려하여 철조망을 둘러쳐 놓았고 돌로 막혀 있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원형분화구 안에 보이는 돌담구조물이다. 잡석들을 장방형의
일정한 형태로 모아놓은 구조물은 한눈에 보기에도 인위적으로 쌓았음을 엿볼 수 있다. 이 돌담구조물 역시 당시 일본군과 관련된 시설로
여겨진다.
하지만 당오름 지하갱도는 자연적·인위적 요인에 의해 훼손이 이뤄지고 있는 상태다. 우선 안내문이라도 세워 이곳이 아픈
역사의 현장임을 알리고 최소한의 보호·활용방안을 세워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특별취재팀
[전문가리포트]일본군 제111사단 주둔지로 적합
남군
충혼묘지를 뒤로하여 원물오름을 오르다 문득 이곳에 일본군 전사자 위령비가 세워졌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 생각에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원물오름과 함께 당오름에 오르면 불쑥 솟아오른 산방산과 멀리 마라도까지, 고산일대 및 차귀도까지, 또한 한림항과
비양도까지도 관측이 가능했다. 따라서 이곳은 미군 상륙이 예상되는 모슬포, 고산 그리고 한림지역을 한 눈에 직시할 수 있어 작전지시 뿐만 아니라
포지원사격 등이 용이하여 사단 사령부가 위치하기에 적합한 장소임에 틀림없다.
당오름과 원물오름에는 일본군 제58군 소속
제111사단의 사령부가 주둔하여 있었고 여러 갱도진지가 형성되어 있고, 많은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실제로 사령부 병력(245명)뿐만 아니라
독립산포병 제20연대 2,900명과 박격포 제29대대 1,400명이 존재하고 있어서 약 4,550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제111사단은 중국 관동군의 경력을 지니고 있는 3개의 연대(234, 244, 245연대)를 예하부대로 갖고 있는데
제주도 주둔 일본군 중 가장 정예부대로 알려져 있다.
제234와 제244연대는 미군이 상륙할 것으로 예상하여 이들을 방어하기 위한
주저항진지로서 해안에서 약 10Km 남으로 올라온 지역에 배치시키고 있고, 제245연대는 송악산과 화순항 지역에 특공유격작전으로 섬멸하려는
목적으로 부대들을 배치시키고 있다. 이처럼 제111사단은 미군의 공격에 저항 뿐만 아니라 해안가에서 전면전을 시도할 의도를 지닌 강력한 부대를
지휘하였다.
<황석규/제주대 사회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