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제111사단 주둔지 ③도너리오름
日포병부대 주둔·관통형
갱도 확인
한라일보 : 2006.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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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너리오름 갱도내부에서 밖을 바라본 모습. /사진=이승철기자
sclee@hallailbo.co.kr | |
길이 50미터 갱도 등 3곳 포함 진지흔적 생생
봄의 전령사인 복수초가 노랗게 피었다. 자지러질듯
오름 기슭을 노랗게 물들인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복수초 사이로 하얀노루귀도 수줍게 고개를 내밀었다. 도너리오름은 앞다투며 피어난 야생화의
향기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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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오름에서 바라본 도너리
오름 | |
도너리오름(남제주군 안덕면 동광리
산 90번지 소재·표고 439m)은 복합형 화구를 대표하는 오름의 하나로 꼽힌다. 오름 정상부의 원추형 화구(둘레 약 4백m·깊이 40m)와
서쪽으로는 말굽형 화구가 깊은 골을 이룬채 뻗어 내렸다. 제주의 오름 어느곳이나 그렇듯이 이곳 역시 활짝 열린 전망이
압권이다.
태평양전쟁 말기 이곳은 일본군 제111사단 사령부 주둔지인 원물오름·당오름과 함께 전략적 요충지로 인식됐다.
‘제58군배비개견도’ 등에는 원물오름·당오름·도너리오름이 원을 그린 형태로 진지가 구축된 사실이 나타난다. 김여수씨(1930년 생·안덕면
동광리) 역시 당오름 뿐 아니라 “도너리오름에 갱도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그 실체는 아직껏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특별취재팀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25일 이곳에 대한 탐사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3일에 이은 두번째 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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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 2(그림 위)와 도면
1 | |
조사결과 도너리오름에서는 관통형
지하갱도의 존재가 확인됐다(도면 1). 지하갱도는 말굽형 화구 9부능선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파들어간 형태다. 즉 입구가 북쪽 방향으로 나 있으며
출구는 남쪽 방향으로 오름능선을 관통했다. 당오름에 이어 도너리오름에서도 관통형 갱도진지가 처음 확인된 것이다.
관통형 갱도는
직선형으로 길이가 50m 정도 된다. 갱도 폭은 150㎝, 높이는 160㎝ 규모다. 갱도 입구 앞에는 10m 정도의 교통호가 나 있다. 입구는
송이층이 쌓여 폭 80㎝, 높이 60㎝ 정도에 불과하다. 갱도 내부 역시 중간중간 무너져 내렸다. 이 때문에 원래의 갱도 모습은 많이 변했다.
폭과 높이가 서너차례 좁아졌다 넓어지기를 반복했기 때문에 내부를 조사하는데는 상당한 위험이 따랐다.
그런데 이 관통형갱도는 입구는
하나지만 출구는 두개가 나 있다. 주 출구는 폭 165㎝, 높이 145㎝ 정도다. 소나무 등 잡목이 우거진 출구에 서면 산방산이 위압스런
모습으로 다가온다. 또 다른 출구는 오른쪽으로 5m 정도 떨어진 지점에 나 있다. 폭과 높이는 각각 55㎝, 80㎝ 정도로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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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도 내부를 조사중인
탐사단 | |
도너리오름의 또다른 갱도는
8부능선 쯤에서 발견됐다. 처음 확인한 갱도와는 직선거리로 30m 정도 된다. 이 지하갱도는 14m 지점까지는 원상태로 남아있다. 그 이후부터는
천장이 무너져내려 진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무너져내린 틈으로 내부공간이 죽 연결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갱도진지 역시 처음 구축
당시에는 관통형으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상태로 남아있는 부분의 갱도는 폭과 높이가 각각 170㎝, 160㎝에 이르고, 갱도입구의 폭과
높이는 각각 120㎝, 95㎝ 정도다.
취재팀은 이 곳과 30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또하나의 갱도를 찾아냈다(도면 2). 분화구
안쪽 대략 7부능선쯤 되는 지점이다. 측정길이만도 50m에 이르는 직선형 갱도로 폭과 높이는 각각 135㎝, 190㎝ 규모다. 하지만 이
갱도진지 역시 16m 지점 이후부터는 천장이 무너져 내려 원형이 많이 상실된 상태다. 송이층이 무너져내린 부분은 50도 정도의 경사가 졌고 또한
낮아지는 등 조사하는데 어려움이 따랐다. 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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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능선을 관통한 갱도입구와 그 앞쪽으로 교통호가 나 있는
모습. | |
내부 탐사과정에서 가장 위험했던
곳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겨우 낮은 포복으로 끝부분에 이르자 바깥쪽에서 들어오는 바람의 기운이 느껴진다. 얼마 안되는 지점에 입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지하갱도는 측정길이 등으로 볼 때 9부 능선의 갱도처럼 오름능선을 관통한 것으로 추정됐다. 갱도 옆에는 현무암을
쌓아올린 석축구조물과 함께 정상부에도 갱도흔적으로 보이는 지점이 3∼4곳 확인된다.
도너리오름의 갱도진지는 무엇일까. 태평양전쟁
말기 도너리오름에는 어떤 일본군이 주둔했을까.
‘제58군배비개견도’에 따르면 도너리오름은 주저항진지로 나타난다. 1945년 7월에
작성된 일본군 ‘기밀을철’에는 도너리오름 주변 일대에 제111사단 예하 독립산포병 제20연대 2천9백명과 박격포 제29대대 1천4백명이 주둔한
것으로 나타난다. 즉 4천3백명에 이르는 포병부대가 도너리오름 일대에 주둔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름 정상부에 서면 이곳은 멀리
마라도까지 제주 서남부 해안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러한 입지조건으로 이곳에 위치한 포병부대는 해안으로 상륙하는 미군을 포사격하거나 전투가
발생하면 바로 이동할 수 있는 기동결전병단으로서 주둔하고 있었다.
이렇듯 아픈 역사적 상흔이 남아있는 이곳은 현재 골프장 건설
등으로 자연환경이 마구 훼손되고 있다./특별취재팀
[전문가리포트]1백여 오름에 갱도진지
구축
일본군의
제주도 진지구축은 1945년 1월부터 계획되었다. 일본군 방위총사령관은 1월 중순부터 사단 막료와 함께 진지구축 공사 담당부대에 필요한 정찰반을
편성하고 제주도에 도착하여 정찰을 실시하면서 진지구축 계획을 세웠다. 2월 상순부터 공사부대의 수송을 개시하였고, 2월 중순부터는 세부 정찰과
아울러 진지구축에 착수하였다.
3월 말경에는 전체 공정의 30% 정도 진척되었고, 일본 규슈로부터 제11공사대가 제주도에
도착하였다. 2월 상순부터 방위축성부로부터 파견된 교관이 공사를 지도할 기간요원 80명에 대하여 진지 구축 교육을 실시하였다. 일본군
기밀문서에는 이때 ‘동굴식 갱도(洞窟式 坑道)’와 ‘굴개식 포병 엄체(堀開式 砲兵 掩體)’ 공사 교육이 10일간 실시되었다고 하여, 제주도에
구축된 진지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구축된 제주도내 일본군 갱도진지 및 참호진지는 제주도 곳곳에 산재해
있다. ‘제58군배비개견도’를 보면, 본토결전 준비를 위해서 제주도에 네 종류의 진지가 마련되었다. 위장진지(僞裝陣地), 전진거점(前進據點),
주저항진지(主抵抗陣地), 복곽진지(複郭陣地)이다.
위장진지는 적의 포 폭격의 흡수·교란 등 적의 진행 방향을 틀리게 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전진거점은 주저항진지의 전방에 두고, 한 부대를 파견하여, 요점이 적에게 뺏기는 것을 방해하기도 하고, 적에게 전개방향을 틀리게
하여 주저항진지에 접근시키는 것을 어렵게 하는 등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주저항진지는 모든 진지의 골격에서 주력을 다하여 방어하는 진지로서,
보병의 항전지대와 그 후방의 주력포병 및 그 설비로 이루어진다. 복곽진지는 주저항진지가 함락되었을 경우 최후의 저항거점으로 마련된
것이다.
‘제58군배비개견도’에는 이들 진지가 구축된 오름의 위치가 뚜렷이 표시되어 있다. 지도를 통해 확인되는 진지 수는
위장진지 23개, 전진거점 16개, 주저항진지 43개, 복곽진지 10개에 이른다. 이들 진지는 미군이 상륙할 것으로 예상한 제주도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다. 제주도내 100여개의 오름에 구축된 갱도진지는 일본군의 무력과 강제력 앞에 군말 없이 동원되어 고난을 겪은 징용자들의
애환이 서린 역사의 현장이다.
<박찬식/한라일보 일제전적지 탐사단 자문위원·한국근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