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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일제하 일본군 주둔실태 8

마감된 자료-------/숨겨졌던日戰跡地

by 자청비 2006. 4. 1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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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제111사단주둔지 ⑤가마오름
迷路처럼 얽힌 초대형 지하갱도에 ‘전율’


한라일보 : 2006. 04.13

▲탐사단이 지하갱도내부에 파놓은 함정형태의 참호를 조심스레 지나가고 있다. /사진=이승철기자 sclee@hallailbo.co.kr
알려진 길이만 1km… 계속 발견돼 관심

규모·구조 등 여전히 베일속 규명 시급


 1945년 6월말 무렵 일본 방위청 ‘대본영 육군부’ 기록에는 제주도의 지하갱도에 대해 ‘6·7갈래, 동굴 32,000m’라는 문구가 남겨져 있다. 일본 대본영 참모본부 미야자키(宮崎)제1부장이 그 해 7월 1, 2일 제주를 찾아 일본군의 제주에서의 전쟁준비 상황을 시찰하며 남긴 메모에 제주도 지하갱도에 대해 ‘32km’로 기록해 둔 것이다. 미야자키의 32km라는 기록은 해군과는 따로 육군이 제주도 각지에서 판 지하참호를 나타낸 것이다. 여기서 동굴은 대부분 ‘지하갱도’라 불리는 것이다. 일본군은 제주섬에 32km에 이르는 지하갱도를 만들고 최후까지 미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벌이려 했던 것이다. 1945년 6월말∼7월초 시점이면 일본군 제96사단, 108여단, 111사단, 121사단의 배치가 완료되고, 미군의 상륙에 대비해 각종 진지구축이 한창이던 무렵이다.

 단일 규모가 아니질라도 ‘32km’라는 지하갱도는 좀체 실감이 나지 않는다. 도대체 이러한 지하갱도는 어디에 구축됐을까. 이에 대한 실체를 엿볼 수 있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가마오름의 지하갱도다.

▲가마오름 지하갱도 내부. 좁다랗게 이어진 통로바닥에 당시에 시설됐던 계단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사진=이승철기자 sclee@hallailbo.co.kr
 가마오름(부악釜岳·북제주군 한경면 청수리 소재·표고 141m)의 지하갱도는 남제주군 대정읍 송악산 알오름 일대와 함께 가장 잘 알려진 곳 중의 하나다. 비교적 낮은 오름이지만 중산간의 평원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사방으로 전망이 확 트였다. 북쪽으로는 저지오름(새오름), 남쪽으로는 산방산·단산이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다. 남서쪽으로는 새신오름이 바로 지척이다. 제주 서남부 해안과는 6∼7km의 거리다.

 가마오름은 지하 전체가 거미줄처럼 갱도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마오름 지하갱도는 구조와 길이면에서 제주도내 갱도진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마오름 지하갱도의 길이는 대략 1.2km 정도. 하지만 가마오름 지하갱도의 정확한 규모와 구조 등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지면 그 길이는 더욱 늘어날 것은 분명하다. 본보 탐사팀도 지난 3월 18일과 이달 8일 가마오름에 대한 조사에서 1백여m에 이르는 갱도진지 두 곳을 새롭게 찾아냈다.

 가마오름 지하갱도는 전체적으로 지하에서 정상부까지 통로가 연결돼 있는 등 쉽게 파악할 수 없는 구조다. 마치 미로(迷路)처럼 종잡을 수 없다고나 할까. 입구와 출구를 도무지 가늠할 수 없다. 또한 좁은 갱도를 따라 넓은공간과 좁은공간이 중간중간 들어서 있다. 전투가 벌어질 경우를 상정하여 전투상황에 대비한 공간을 지하갱도 곳곳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한마디로 오름내부 전체가 지하벙커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지하갱도 내부에서 올려다본 수직 갱도
 갱도 폭은 좁은 곳은 90cm에서 130cm 내외, 넓은 곳은 210cm 정도 되는 곳도 있다. 갱도 높이는 낮은 곳도 있지만 보통 180∼190cm 내외를 보인다. 갱도벽면에는 등잔불을 놓기 위한 홈 등이 파여 있으며 갱목을 세웠던 홈과 계단시설도 남아있다. 뿐만 아니라 갱도 내부에는 지하로 푹꺼진 함정형태의 참호와 수직갱도 등을 만들어 놓아 쉽게 접근할 수 없도록 했다.

 아마도 제주땅에서 실제 전투가 벌어졌을 경우 가마오름 지하갱도는 최후까지 게릴라전의 무대로 강력한 저항진지의 하나가 됐을 것이다.

 가마오름의 지하갱도를 보면 일본 오키나와 도미구스쿠시(豊見城市)의 구해군사령부호가 연상된다. 구해군사령부호는 오키나와전쟁 당시 실제 미군과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구불구불 이어진 갱도 내부에는 사령관실과 막료실, 암호실, 의료실, 하사관실, 작전실, 발전실, 비상통로 등이 갖춰져 있다. 미군이 진입하자 이 곳의 일본군은 최후까지 저항하다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을 했고, 벽면에는 그 흔적이 선명히 남아있다.

 가마오름 일대는 제243보병연대가 주둔, 주저항진지를 구축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연대본부 주둔지는 가마오름 기슭의 옛 절터다.

 여기에 더해 가마오름에는 제108여단의 일부병력도 이동배치된다. 제108여단(스이부대·翠부대) 주력부대 4천명은 4월 상순 제주에 상륙, 동부지역인 검은오름·부대오름 일대에 주둔한다. 하지만 7월 말이 되면 제108여단 병력은 1개대대 1천명 정도만을 남겨두고 바로 가마오름 일대로 이동 배치된다. 제주서남부 해안으로 미군의 상륙에 대비한 전력재배치가 이뤄진 것이다. 가마오름 일대에는 이처럼 병력증강 뿐 아니라 새신오름의 기갑부대 등 막강화력이 포진해 있었다. 또 실제 가마오름에서는 포발사도 이뤄졌다는 증언도 있다.

 임경재씨(1935년생·한경면 청수리 425번지)는 “가마오름에서 미군 비행기를 향해 포를 쏘니까 청수곶자왈 지경에 떨어지는 장면을 보았어. 포탄 6발 정도 쏜 것으로 기억돼. 또 가마오름에서는 분대·소대훈련, 총검술 등 매일 군사훈련이 벌어졌어.” 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임씨는 또 “패전 뒤에 일본군이 가면서 가마오름에 권총·실탄·수류탄 등 각종 무기와 굴파는데 썼던 ‘도로코’를 묻는 걸 봤다”며 “일본군들이 간 뒤에 그것들을 파내서 권총 한자루, 실탄 한 말 정도, 일본도 5개, 38식·99식 장총 등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가마오름 평화박물관을 운영하는 이영근 관장은 “전문가들은 가마오름 지하갱도 구조가 3층구조로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며 “정확한 구조와 규모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관련 전문가와 당국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전문가 리포트]서남부지역 일본군 주력부대 배치

 제주도 내 일본군은 1945년 초까지 1개 사단이었다가 1945년 8월 해방 직전에 3개 사단 1개 여단의 강력한 병력을 구축하였다. 제58군은 주진지선을 해안 근처로 잡았고, 관동군 제111사단 및 제121사단 등 주력을 제주도 서쪽 방면으로 결집시켜 공세 병력으로 삼았다.

 일본군은 미군부대가 상륙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을 제주도의 서남부 지역으로 판단하고 최고 정예 주력부대인 관동군 제111사단(사단장 중장 이와사키 도미오 ; 市부대) 1만 2천명을 배치하였다. 제111사단은 1945년 4월 중순부터 만주로부터 직통으로 제주도에 이동 배치되어 제58군의 예하에 편입되었다. 5월 상순에 이르기까지 제주도에 상륙하였다. 사단 사령부는 당오름·원물오름 일대에 주둔하였으며, 제주도 서남부 지역을 관할하였다.

 제111사단의 주력은 산방산과 넙게오름의 선에 배치하여 약 1개 연대(245연대)를 기동예비대로 삼아 미군의 상륙에 대비하였다. 또한 가마오름·이계오름·새신오름 일대에 2개 연대(243·244연대)를 배치하였다.

 서남부 지역에는 1945년 4월 초 제96사단이 주둔하고 있다가 제111사단이 이동해 오면서 제주도 북부지역의 삼의악 일대로 옮겨갔기 때문에, 4월 이후부터는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제주도내 여타 지역에 비해서 참호 및 진지갱도의 구축 공정이 해방 전에 완결된 곳이 많고 지금도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유적이 많다.

<박찬식/한라일보 일제전적지 탐사위원·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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