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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일제하 일본군 주둔실태 10

마감된 자료-------/숨겨졌던日戰跡地

by 자청비 2006. 4. 2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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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111사단 주둔지 ⑦새신오름 지하갱도
오름사면이 벌집처럼 구멍 ‘숭숭’


한라일보 : 2006. 04.27

▲지난 8일 두갈래로 나뉜 새신오름 갱도 내부를 조사하고 있는 모습. 양쪽으로 갱목홈이 뚜렷이 나 있다. /사진=이승철기자 sclee@hallailbo.co.kr
 가마오름에 이어 탐사팀이 찾은 것은 새신오름이다. 새신오름은 가마오름과는 불과 1km 정도 거리에 있다. 새신오름이라는 이름은 옛날에 이 오름에 새가 많이 날아와 살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한자 표기로는 조소악(鳥巢岳)이다. 또 신서악(新西岳)으로 불리기도 하나 이름의 유래를 알지 못한다. 오름 자체가 낮은데다(표고 141.5m·비고 40m 정도) 둥글 넓적하게 생겨 보기에는 오름다운 느낌을 별로 못준다.

 본보 탐사팀이 새신오름을 주목한 이유는 태평양전쟁 말기에 이 곳 일대에 일본군 기갑부대가 주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실체는 여지껏 확인되지 않고 있다. 오름이 소재한 한경면 산양리 주민들도 “많은 갱도가 있었지만 갱도입구를 다 막아버렸기 때문에 실체를 확인할 수 없을 것”이라며 탐사팀의 조사에 다소 회의적 이었다.

▲갱도 내부에서 밖을 바라본 모습.
 탐사팀은 헛발품을 파는 셈치고 이달 8일 이 마을 조경송 이장과 이 곳 토박이인 김원욱씨(1935년 생)의 안내로 첫 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왠걸,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이날 조사에서 탐사팀은 오름에 감춰진 대규모 지하갱도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오름사면에 나 있는 갱도 출·입구만도 30여 곳이나 돼 탐사팀을 놀라게 했다. 오름사면이 마치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형국이다. 제주도내 지하갱도를 대표하는 가마오름 갱도의 경우 입·출구가 24곳 정도 파악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갱도 입구는 대부분 큼직한 돌 등으로 막혀 있다. 이유는 이 마을 주민들이 방목중인 소가 자주 지하갱도에 떨어져 죽는 바람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막아버린 것이다. 이 곳 갱도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갱도 입·출구가 30여개 이상 된다는 것은 오름지하가 거미줄처럼 갱도로 연결돼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새신오름 갱도 내부에 나 있는 갱목홈. 다른 갱도에 비해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아니나 다를까. 비록 많은 갱도 입구가 막혀 있지만 탐사팀은 첫날 조사에서 70m 길이의 갱도를 비롯, 10m 내외의 갱도 세 곳과 많은 입·출구를 확인했다. 또다른 규모를 알 수 없는 갱도 등은 다음 탐사로 미뤘다. 그래서 조사는 지난 15일과 23일로 이어졌다.

 세 차례에 걸친 조사에서 탐사팀이 확인한 갱도는 길이 약 150m 규모의 갱도 2곳과 130m 규모의 갱도 1곳, 70m, 40m 규모의 갱도 2곳 및 10m 크기의 갱도 3곳 등 모두 8곳이다. 탐사팀이 확인한 갱도의 총 길이만도 600m 가까이 돼 입구가 막혀 조사하지 못한 갱도를 포함하면 새신오름 갱도의 규모와 길이는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도면
 첫날 조사에서 탐사팀이 확인한 남서사면의 갱도<도면>는 주통로의 길이가 30m정도 된다. 이어 왼쪽으로 직선형 갱도 두개가 나 있고 가운데 갱도는 수직갱도와 연결된다. 수직갱도는 방목중인 소가 떨어질 것을 염려하여 밀어넣은 큼지막한 바위가 갱도바닥에 놓여 있다. 총 길이는 70m 정도, 폭은 1m에서 160cm 내외, 높이는 최고 190cm 정도 된다. 입구는 폭이 150cm, 높이 170cm 정도 된다.

 무엇보다 이 지하갱도는 벽면에 갱목을 세웠던 홈이 원형그대로 남아 있어 주목된다. 갱목 홈은 15cm, 홈과 홈 사이의 간격은 40cm 정도 된다. 갱도 내부 벽면을 따라 갱목을 세웠던 홈이 일정간격으로 나 있다. 지금까지 확인한 갱도내부의 갱목흔적 중 보존상태가 양호해 가장 원형대로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갱목흔적은 당시 갱도내부의 구조 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갱도 내부를 밝히기 위해 등잔 등을 놓았던 홈도 뚜렷하다. 갱도만 판 것이 아니라 실제 갱도 내부에서 일본군이 주둔했음을 추측케 한다.

 실제 ‘제58군배비개견도’와 ‘제주도병력기초배치요도’ 등에 따르면 새신오름 일대는 일본군 제243연대 주둔지로 나타난다. 즉 가마오름과 새신오름, 굽은오름 일대에서 일본군은 대규모 지하갱도를 만들고 ‘주저항진지’를 구축한 것이다.

▲지난 15일 새신오름 지하갱도 탐사에 동행한 문화관광부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우회창 전문위원(오른쪽 두번째)이 취재진으로부터 지하갱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주저항진지’는 주력을 다하여 방어해야 하는 진지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새신오름 역시 일본군의 강력한 지하요새로서의 기능을 했음을 보여준다. 이 마을 주민 김원욱씨도 “새신오름 북쪽에 탱크부대가 있었고 기마병과 의무병도 함께 주둔했다”고 말해 많은 일본군이 이 일대에 포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곳 일대에 주둔했던 탱크부대는 1945년 6, 7월쯤 협재에서 기뢰공격을 받아 일본함대가 침몰할 때 출동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처럼 새신오름은 태평양전쟁 말기 제주서남부 일대 일본군 주둔의 주요 거점중 하나이다. 또한 당시 일본군의 진지구축 실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곳중의 하나로 평가된다. /특별취재팀


[현장인터뷰]북제주군 한경면 산양리 김원옥씨 “오름 북쪽에 日 탱크부대 주둔”

 “새신오름 일대의 갱도는 1944년쯤에 일본군들이 와서 파기 시작했지. 일본군들은 오자마자 오름 앞에 천막을 치고 굴(갱도)만 파기 시작했어. 그러다가 1년쯤 뒤에 해방을 맞았어.”

 당시 11세 였다는 김원욱씨(1935년 생·북제주군 한경면 산양리·1935년 생)는 “일본군들은 순전히 곡괭이 등 수작업으로 굴을 팠는데 깊이 들어간 곳은 ‘도르레’로 흙을 밖으로 내쳤다”며 그때 상황을 설명했다.

 어릴때 장남삼아 굴파는데 구경가서 놀기도 하고 감자 찐 것 하고 일본군 빨랫비누 같은 생필품을 바꾸기도 했다는 김씨는 또 새신오름 북쪽에는 탱크부대가 있었다며 일본군 주둔상황을 설명했다. “탱크는 오름 한쪽 면을 정리해서 탱크를 들이밀고 위장을 했어. 탱크는 나무풀로 덮고 위장망을 씌우고 했는데, 기마병도 탱크병과 같이 있었지.”

 김씨는 이어 가마오름 절터 연대본부 주둔지에 연대장인 대령이 살았고 가마오름과 새신오름 등을 총지휘했다고 말했다. “연대장은 머리가 허영한 ‘백하르방’인데 그 하르방이 나왔다 하면 가마오름에서 산양리까지, 또 그 앞쪽으로도 그만한 정도의 경호부대가 따라 붙었어. 위관장교들도 말을 타서 경호를 하고…. 그 하르방이 시찰을 나오면 일본군들은 통제를 했는데 주민들은 구경을 할 수 있지만 움직이질 못했어.”라고 당시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 후 일본군들은 패전 뒤 피복이나 통조림 등 물품은 전부 소각했고 군마도 개인참호 같은데 세워놓고서는 주사를 주입시켜 죽였다고 말했다. 군수물자를 운반했던 ‘구루마’는 아는 집에 놔두고 갔는데 그때부터 주민들이 ‘구루마’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설명을 이어갔다.

 김씨는 해방후 일본군이 판 굴(갱도)안에 소가 떨어지는 일이 자주 일어나자 마을주민들이 갱도입구를 막아버렸다고 말했다. 어떤 경우는 소가 빠지면 냄새가 나서 굴(갱도)를 조사해보면 거기서 찾기도 했다는 것. 김씨는 그러면서 굽은오름에는 미군이 소형폭탄을 두어발 떨어뜨렸으며, 미군비행기가 나타나면 일본군들은 상대를 하지 않고 굴속에 숨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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