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말기 제주에 온 일본군 제96사단 주둔지로 알려진 제주시 삼의양 오름 일대 계곡에 구축된
일본군 갱도진지 내부에서 밖을 바라본 모습. /사진=이승철기자 sclee@hallailbo.co.kr
‘제58군배비개견도’와 ‘제주도병력기초배치요도’, ‘일본제58군방어진지위치도’ 등에 따르면 월라봉은
주저항진지로 나타난다. 월라봉에 대한 현장조사에 나선 도내외 학자 및 전문가들은 오름을 관통한 대규모 갱도와 토치카 시설들에 높은 관심과
놀라움을 표명했다.
이날 조사한 월라봉에는 약 60m 길이의 직선형으로 관통된 갱도와 토치카 시설이 구축돼 있다. 뿐만 아니라
오름 사면에는 약 150m 길이의 대형갱도 등이 구축돼 있는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이 갱도 끝에는 토치카 시설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또 콘크리트 토치카 벽면에는 당시 갱도를 파기 위해 동원된 사람들의 이름 등으로 추정되는 한자가 새겨져 있는 사실도 처음으로 확인돼 큰
관심을 모았다.
▲삼의양 오름 갱도 밖에서 의견을 나누는
조사단
갱도 주변에는 포탄야적장 등도
확인돼 당시 월라봉 일대에 포병부대가 주둔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산방산 용머리해안의 절벽에서도 갱도가 구축된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이와 관련 허수열 충남대 교수는 “태평양전쟁 말기 제주는 전략적 요충지로 미군이 상륙할 경우 바로 이 곳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진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또 “제주에 남겨진 이런 일본군 갱도시설들은 한반도 육지부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상당히
흥미롭고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츠카사키씨는 “월라봉의 두개의 토치카는 철근을 많이 사용하는 등 상태가 매우 좋다”며 “이 곳에는
15㎝ 곡사포 등이 배치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삼의양오름 일대 조사는 봄을 시샘하듯 내린 눈으로 별천지 같은 풍경속에
진행돼 한껏 운치를 더했다. 계곡을 따라 양쪽으로 늘어선 나뭇가지마다 밤사이 내린 하얀 눈이 살포시 내려앉아 별천지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는 어쩔 수 없는 듯 살얼음 사이로 계곡물 흐르는 소리에 봄기운은 완연했다.
▲월라봉 대형 갱도진지 내부에서 조사단이 실측을 하고
있다.
삼의양오름 일대는 제96사단
주둔지로 알려져 있다. 제주시 산천단 일명 도깨비도로 인근 계곡에는 당시 갱도가 잘 남아있다. 약 60m 길이의 갱도는 너비 2.1m, 높이
1.9m 정도의 직선통로를 따라 양쪽으로 공간을 만든 형태다.
츠카사키씨는 이곳의 갱도는 암반 때문에 작업하기가 매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츠카사키씨에 따르면 갱도구축을 위한 암반굴착은 삭암기로 구멍을 뚫고 다이너마이트를 집어넣은 다음 하루에 서너번씩 폭발시킨다는
것. 또 한번 폭파를 하면 1m 정도씩 파들어가는데 아무리 해도 하루에 6m 정도 밖에 팔 수 없다고 작업과정을 설명했다. 또 이곳은 물이
있어서 사령부 주둔지로서 입지여건이 좋다고 말했다.
▲산방산 용머리 해안에서 확인된 관측용
갱도
그러면서 츠카사키씨는 “두차례의
공동조사로 제주도가 새삼 ‘평화의 섬’이라고 호소하는 의미를 실감하게 된다”며 태평양전쟁 말기에 만들어놓은 이러한 전쟁유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윤보석·이윤형·표성준·이승철 기자
[전문가리포트]“전쟁이 주는 공포심에 몸서리”
제주도는 몇
번을 와도 새롭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섬 곳곳에 갱도진지가 있다는 것을 머리로 이해하고 있다고 해도 그 모양과 의미를 알면
알수록 전쟁이 지니는 공포심에 몸서리를 치게 됩니다.
2003년 나는 일본측의 자료를 가지고 ‘제주도에서 일본군의 본토결전준비’에
관한 논문을 썼습니다. 작년부터는 한라일보사와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가 제주도에서의 현지공동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제주도에서 일본군전적지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게 된 것을 관계자 한사람으로서 기쁘게 생각하는 한편,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이번에 제주도에 방문하게 된 목적은
2월 28일에 개최된 학술세미나 ‘일제말기 제주도와 일본군전쟁유적지’에 참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세미나에서는 많은 분들의 훌륭한 발표를 들을 수
있었고 나도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세미나 참가와 함께 한국공동조사팀의 안내로 3일간 현지조사를 했습니다. 27일에는 월라봉과
용머리해안, 3월 1일에는 삼의악과 오등봉, 2일에는 군산과 논오름을 둘러보았습니다. 오문필 조사위원과 이윤형 기자를 중심으로 한
한라일보탐사팀의 예비조사로 원활히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작년 12월에는 전진기지 송악산 지하호를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세미나에서도 발표했듯이 전쟁이 나면 그곳에 숨어있던 병사가 전원 전사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번 조사에서는 월라봉
토치카를 보았습니다. 두개의 토치카 중 거대한 쪽의 토치카는 그 모양으로 봐서 15㎝ 곡사포를 배치한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15㎝
곡사포는 산방산 주변에 배치되었다고 하는 야전중포병 제15연대가 소유하고 있던 대포이며, 15㎝ 카농포와 함께 제주도에 배치된 최대 구경의
대포입니다. 작은 쪽의 토치카는 중기관총의 진지라고 생각합니다. 일본국내에서는 전쟁말기에 철근과 콘크리트가 부족해 콘크리트건조물이 그다지
견고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월라봉의 두개의 토치카는 철근을 많이 사용하고 시멘트도 자갈이 섞여있지 않은 매우 질이 좋은
것입니다.
이번 조사는 바람이 강하고 추웠던 관계로 공기가 맑아서 바다와 산이 예전보다 가깝게 보였습니다. 어느 갱도진지에서든지
출입구에서 얼굴을 내밀면 거기에는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집니다. 결전용 진지는 시야가 탁 트인 곳에 구축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주도의 이
아름다운 경치야말로 전쟁이 일어나면 반대로 참혹한 전쟁터로 바뀝니다. 제주도가 ‘평화의 섬’이라고 호소하는 의미의 소중함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일본조사팀도 한국조사팀의 정열을 본받아 앞으로 일본군의 실태를 명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다행히 제주도에 오기 직전,
제주도에 주둔한 일본군 일부의 복원명부를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에 제주도에 올 때에는 한사람이라도 더 많은 증언을 모아 일본군적적지의
성격규명에 노력하고 싶습니다. 또한 다수의 일본인에게 전쟁말기에 제주도에서 있었던 일들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츠카사키
마사유키/일본15년전쟁연구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