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제2부 일제하 일본군 주둔실태 2

마감된 자료-------/숨겨졌던日戰跡地

by 자청비 2006. 3. 16. 11:58

본문

(2)일본군의 이동과 배치
일본토·만주·몽골로부터 제주에 집결


한라일보 2006. 03.02

▲미군 무장해체팀이 1945년 9월25일에서 10월5일 사이에 일본군무기를 해체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들이다. 왼쪽사진은 일본군 무기를 제주시 산지항 등에 버리기 직전의 모습이며 오른쪽은 탱크를 폭파시키기 위해 폭발물을 장착하는 장면이다. 이 사진들은 미 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되어 있다.
일본군 주둔·배치상황 규명 등 과제

 태평양전쟁 말기 7만5천명에 이르는 일본군 중무장 병력은 언제 어느 시점에 제주에 배치됐을까. 일본군은 어디에 주둔하고 어떤 방식으로 미군의 상륙과 본토결전에 대비했을까. 당시 약 22만명의 도민들의 삶과 생활에는 어떤 정신적·물질적 고통과 영향을 끼쳤을까.

 그 동안의 탐사와 일본측 문헌자료 등을 통해서 보면 이러한 핵심의제들은 어느 정도 접근이 가능하다. 하지만 전모를 파악하기에는 여전히 규명해야 할 과제가 많다.

 1945년이 되면 한반도 최남단의 한 점 섬으로 솟은 제주는 일약 일(日)본토사수 작전의 가장 핵심지역이 된다. 일본과 중국 몽골 한반도로부터 7만에 이르는 거대병력이 제주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들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 일본 천황제의 유지와 일본토사수다. 그를 위해 제주는 바야흐로 미·일 양국의 전장터로 빠져드는 절체절명의 상황을 맞게 되는 것이다.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 2월까지 제주의 일본군 병력은 3천명 정도 주둔하고 있었다. 1944년 6월 약 3백명에서 그 해 7월에는 약 1천명에 머물렀으나 1945년 들어서면서 3배 늘어난 것이다.

▲모슬포 일대에 모아놓은 일본군 20cm 분진포. 멀리 산방산이 보인다(사진 맨 위). 모슬포 송악산 알오름 정상의 고사포와 알뜨르 비행장의 격납고 시설(사진 위로 두번째). 일본군이 보유했던 비행기. 미군에 의해 폭파되기 직전의 모습(사진 위로 세번째). 미군이 일본군 무기를 해체하기 위해 모슬포 일대에 모아놓은 각종 야포.
 이 시기의 전쟁상황은 일본에게 매우 불리하게 전개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1944년 중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일본 대본영에서는 이미 위기위식을 감지하기 시작한다. 그 해 7월 사이판섬에 이어 10월에 미군에 의해 필리핀이 함락당하자 일본대본영은 미군의 본토상륙에 대비해 마쯔시로대본영을 비롯한 각종 시설의 지하화를 서두르기 시작한다. 이에 맞물려 제주섬의 전략적 중요성이 부각되고 요새화하는 구상도 이뤄진다. 이 시기에 모슬포에는 레이더기지가 설치되고 B29의 중국대륙과 일본토폭격에 대비하는 등 제주섬의 상황 역시 긴박하게 전개된다.

 이에 따라 일본군 병력은 1945년 3월 약 2만명에서 6월에는 약 6만5천명으로, 8월 해방 직전에는 3개 사단 및 1개 여단 약 7만5천명으로 급속히 증강한다. 이 섬에 들어온 일본군 제96사단, 제108여단, 제111사단, 제121사단은 제58군 사령부(사령관 도야마 노보로 중장·砦부대)의 지휘아래 서남부와 서북부 중부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배치됐다. 당시 제주섬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일본군이 제주섬을 완전 장악하기에 이른 것이다.

 일본군 가운데 가장 먼저 들어온 부대는 제96사단이다.

 일본 방위청 소장 자료인 ‘조선에서의 전쟁준비’와 ‘기밀전보철’ 등은 일본군의 제주이동과 배치 등을 파악하게 해주는 결정적 자료다.

 이들 자료에 따르면 제96사단(사단장 이이누마 중장·玄부대라 불림)은 1945년 4월 8일에서 22일까지 여수와 목포항에서 각각 모슬포항을 통해 제주에 상륙한다. 주력부대는 제주시 산천단 일대에, 일부는 모슬포지구에 주둔 진지구축에 들어간다. 제111사단이 배치되기 이전에 이미 96사단이 서남부지구의 진지구축을 담당한 사실은 이번에 새롭게 확인돼 관심을 끈다.

 이어 그해 4월 15, 16일 이틀동안 독립혼성 제108여단(여단장 히라오카 츠토무 소장·翠부대라 불림)이대마도로부터 제주도에 들어와 제96사단장의 지휘아래 편입된다. 이들은 제주 동부지역인 거문오름·부대오름 일대에 주둔하다가 상황이 급박해지자 일부 병력만 남기고 제주 서남부 지역으로 이동한다.

 일본군 최정예부대인 제111사단은 만주 관동군으로 4월 중순부터 제주도로 이동하기 시작 5월 상순에 이르러 제주도에 상륙한다. 사단장은 이와사키 도미오 중장으로 시(市)부대라 불렸다. 제111사단은 미군의 상륙 예상지점으로 꼽은 모슬포 일대 등 제주 서남부 지역에 배치한 주력부대였다. 원물오름·당오름 일대가 사단사령부 위치로 파악된다.

 제121사단 역시 만주 하얼빈으로부터 제주로 이동했다. 사단장은 마사이 요이히토 중장으로 영광(榮光)부대라 불렸다. 121사단은 먼저 5월에 만주에서 대전 부근으로 이동했다가 6월상순부터 중순까지 제주도에 파견돼 바리메·노꼬메오름 일대에 주둔한다. 제주 서북부지역을 맡았다.

 이외에도 몽골로부터 전차연대가, 북중국으로부터는 박격포부대가 이동 배치돼 제58군 휘하에 편입된다.

 이처럼 한반도 최남단의 제주섬은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의 가장 핵심 전략지역이 된다. 제주를 향해 향해 일본과 중국 몽골에서 7만의 중무장 병력이 몰려드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당시 B29의 폭격이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미·일전투기의 공중전이 벌어지는 등 제주섬은 사실상의 전쟁상태나 마찬가지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제주섬을 무대로 전면전으로 비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들 일본군 거대병력이 주둔지를 중심으로 어느 오름에 어떤 군사시설 등을 구축하고 일본토결전에 대비하고 있었는지 등은 앞으로의 탐사과정에서 규명돼야 할 과제들이다.
/특별취재팀=윤보석·이윤형·표성준·이승철기자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