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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베를린 제패 그 이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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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06. 11. 24.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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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표의 스포츠野史

<스포츠평론가>

광복 직후 '자유해방경축 전국종합경기대회'에서 태극기를 든 손기정은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사진 제공=한국 체육인 동우회)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되었다. 체육계는 재빨리 움직였다. 조선스포츠의 메카였던 서울 종로 2가의 YMCA체육부를 중심으로 각종 스포츠가 다시 살아나 활발한 활동을 펼쳐 나가기 시작하였다. 1920년에 세워진 조선체육회의 전통을 잇기에 앞서 9월 초에 조선체육동지회가 설립되었고 이 단체가 10월 27일부터 5일간 서울운동장에서 ‘자유해방경축 전국종합경기대회’를 개최하였다. 육상, 축구, 농구, 야구, 정구, 럭비, 사이클, 탁구, 승마의 9개 경기를 거행한 종합대회였다. 축구 결승전은 경성(서울)구락부와 개성팀 사이에 벌어져 경성이 1-0으로 이겨 우승했고, 농구경기엔 황해도 재령(載寧)팀도 출전했으나 결승은 전연전과 전보전팀 간에 벌어져 전연전이 51-36으로 우승하였다.

탁구엔 서원준(徐元浚)이란 선수가 남자단식 준결승에까지 진출하였다. 이 선수의 고향은 평양. 일본 유학 중 학병에 끌려갔다가 해방으로 귀가하는 도중 서울에서의 대회에 출전한 경우다. 서원준은 훗날 인민군에 입대, 장군까지 승진하였고 북한탁구협회장도 겸하여 체코의 국제회의에서 만났더니 한국의 옛 탁구 친구를 후하게 대접해 주었단다.

대한체육회는 1920년 조선체육회가 주최한 전조선축구대회와 야구대회를 제1회 전국체육대회로 기산하여 금년 10월에 경북에서 열리는 대회를 제87회로 치부하는데 1945년의 ‘자유해방경축대회’는 제 26회 대회에 해당한다. 9개 경기의 선수단은 서울운동장 야구장에 모여 대열을 꾸며 육상경기장으로 행진 입장해 본부석을 향해 정렬하였다. 선수들의 최선두엔 기수로 선임된 손기정이 대형 태극기를 들고 서 있었다. 손기정을 기념하는 여러 사진첩에 그때의 사진이 실려 있다. 그런데 그 사진에서 손기정은 태극기를 든 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는 것이다.

체육 기자가 된 덕에 손기정과 알게 되어 그에게 그때 왜 울었는가, 하고 물었더니 훗날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축사에 감격하여 눈물이 터졌단다. 대회의 개회사는 동지회의 회장인 여운형(呂運亨)이 했다. 그는 유명한 선동가다. 여운형은 국기게양대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가리키며 “엊그제까지 일장기가 걸려있던 자리에 우리의 깃발이 나부끼니 이는 곧 조선민족이 자유를 얻었다는 표상이요, 자유를 얻은 만큼 여러분은 가진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여 수준 높은 경기로 새로운 스포츠 세계를 열어주기 바랍니다”라고 말해 선수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이어 사회자의 소개로 축사를 하겠다고 이승만이 등단하여 잠시 뜸을 들이더니 “저기 태극기를 들고 서 있는 선수가 손기정이 아닌가?”라며 확인을 하고 베를린에서의 마라톤 제패가 그렇게도 자신에게 용기를 갖게 해줄 수가 없었다고 1936년의 여름을 회상하더란다. 미국의 펜실베니아주에서 독립운동이랍시고 운신은 하고 있었으나 접하는 사람마다 망국(亡國)의 유랑자(流浪者)라고 업신여기는 통에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손기정의 우승 소식을 듣자 온 몸에 힘이 저절로 솟아오르더란다.

그로부터 며칠을 이승만은 닥치는 사람마다 붙잡고 베를린올림픽의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은 나하고 같은 민족이며 ‘코리언’이라고 자랑을 늘어 놓았단다. 손기정은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인물이다. 1966년에 방콕에서 거행된 제5회 아시아경기대회의 단장을 맡았다가 몇몇 임원들이 자신의 통제 속에 들어오지 않자 분을 이기지 못하여 삭발하고 귀국한 적이 있다. 그런 인물이기에 희로애락의 감정을 숨김없이 나타내는데 이승만이 자신의 마라톤 업적을 높이 평가하자 고만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이승만과 같은 기쁨은 소련군 장교 시절의 김일성도 경험했단다. 지난 8월 8일 한국체육학회와 동아일보사는 공동으로 ‘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제패 7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한 바 있다. 그 자리에서 동아일보 김학준 사장은 손기정의 업적을 찬양하면서 대일(對日) 유격전을 펼치던 김일성이 시베리아에서 손기정의 마라톤제패 소식을 듣고 크게 용기를 얻었다는 것이 북한의 공문서에 기재되어 있다고 소개하였다.

손기정은 그토록 우리 민족에게 자긍과 용기를 심어준 대사건을 엮어낸 역사적 인물이라고 해야겠다.(계속)

<sports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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