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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기왕 김일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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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06. 10. 2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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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기 하나로 꿈과 희망 줬던 별, 김일이 지다
 
[마이데일리 = 배국남 대중문화전문기자] 영원한 레슬링 현역이고자 했던 김일선생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 유년 시절의 꿈과 희망의 한 자락을 잃은 아쉬움과 함께 김일 선생의 명복을 빕니다.

김일선생이 26일 서울 노원구 하계동 을지병원에서 지병으로 향년 77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떠오르는 것은 두가지 풍경입니다. 하나는 1960~1970년대 흑백 텔레비전을 통해 본 선생의 레슬링 경기와 박치기로 승리를 거두며 두손을 번쩍 든 모습이고 또 하나는 지병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던 노년의 모습입니다.

선생은 가난으로 허덕이던 1960~1970년대 서민들의 힘든 생활의 위안이자 즐거움이었고 청소년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준 대중의 영웅이었습니다. 온갖 반칙을 하는 선수에게 당하다가 통쾌하게 박치기로 상대 선수를 제압하고 승리를 거둘 때면 사람들은 자신이 승리한 듯 기뻣고 즐거웠습니다. 그 순간은 생활의 고단함도 가난의 곤궁함도 잠시 거두고 기쁨에 잠겨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이노키 등 일본 선수들에게 가하는 박치기의 일격은 역사적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했습니다.

선생은 레슬링 선수 이상의 의미를 담보합니다. 박치기 하나로 어려움을 겪는 이에게는 위로를, 절망을 겪는 이에게는 희망을, 좌절하는 이에게는 용기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생의 박치기를 보며 현실에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갈 수 있는 좌표 역할도 하셨기 때문입니다.

선생의 삶 자체도 많은 이에게 사표였습니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레슬링을 배워 격투기의 불모지인 한국에 프로 레슬링의 꽃을 피웠습니다. 그 과정은 불굴의 의지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런 선생의 모습이 1970년대 중반이후 레슬링 인기의 추락과 함께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졌을 때 아쉬움은 너무나 컸습니다. 은퇴이후 경기 후유증으로 각종 질환에 시달린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면서 유년시절의 영웅의 쾌유를 빌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1990년대 중반 취재차 만난 선생의 모습은 나이와 질병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고 당당한 영웅 그 이상이었습니다. 여전히 레슬링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평생을 레슬링을 위해 살아갔고 진정한 격투기 선수로 남고자 했던 선생의 열정은 이제 볼수 없어 안타까움을 더 합니다. 하늘에 마련된 경기장에서 못다한 레슬링의 열정을 다시 한번 불태우시길 바라며 명복을 다시 한번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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