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재 사립대 법학계열인 07학번 김지훈군(19·가명)은 최근 한달간 수업에 들어간 경우가 손에 꼽을 정도다. 김군은 온라인게임에 빠져 있다. 새벽까지 게임을 하다 눈을 뜨면 이미 오후다. 오전 수업은 물론 오후 수업까지 미적대다 못 들어간다. 자취방에서 나와 간단하게 식사를 한 뒤 다시 간 곳은 PC방. 라면을 시켜먹고 게임에 몰두하다보면 어느새 새벽이 다가온다.
지방출신인 김군은 친구가 없다. 입학동기생은 100명이 넘지만 이름을 기억하는 친구는 많지 않다. 고교 친구들은 대부분 재수 중이다. 동문회에도 나가봤지만 선배들의 술 강요가 싫었다. 그나마 알게 된 동기생들에게 말을 붙이는 것도 쉽지 않다. 캠퍼스는 삭막했다. 지옥같은 고3이 끝나고 낭만적인 대학생활이 시작되리라 기대했지만 대학은 ‘고3의 또다른 연장’이었다. 동기들 중 상당수는 벌써 도서관에서 고시공부를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도 영어학원이다, 어학연수다, 자기계발이다 하면서 바쁘게 생활해 얼굴 보기도 쉽지 않다.
김군은 한달 뒤에 있을 중간고사를 생각하면 벌써 가슴이 답답하다. 이렇게 아무 준비없이 시험을 치른 적이 없어 더 불안하지만 대책이 없다. 인생 경쟁에서 뒤처진 ‘낙오자’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김군은 “탈출구가 필요한데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괴로움을 호소했다.
대학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새내기들이 늘고 있다. 시키는 대로 공부하던 생활에 길들어져 있던 학생들이 대학 진학 후 순간적으로 목표를 상실하거나 가치관에 혼란을 겪으면서 생기는 이른바 ‘새내기 증후군’이다. 스스로 계획하고 결정하는 능력을 갖지 못한 학생들의 경우 무기력증에 빠져 일상생활이 엉망이 되거나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 과거에는 선후배간의 끈끈한 정과 조언으로 이를 극복했지만 요즘엔 캠퍼스가 ‘취업도서관화’되면서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게 현실이다.
‘폐인족’ 만큼이나 ‘나홀로 공부족’ 역시 새내기 증후군에 노출돼 있다. 박은정양(19·가명)도 수업시간을 제외한 하루의 대부분을 ‘혼자서’ 보낸다. 오전 수업을 마치면 교내식당에서 간단하게 혼자 점심을 먹은 뒤 곧장 도서관으로 간다. 오후 수업이 없는 날은 하루종일 도서관에만 머물 때도 많다. 박양은 신입생환영회나 동아리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동기들을 보면서 내성적인 성격을 탓해보기도 하지만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지 않는다. 박양은 “고3때는 대학 합격 말고는 다른 걸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입학하고 나니 막막하고 힘들다”며 “요즘은 혼자 우는 일도 부쩍 늘었다”고 털어놨다.
대학들도 새내기의 방황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고 대책 마련에 부심 중이다. 서울대는 2007학년도 신입생 전체를 대상으로 다면적인성검사(MMPI)를 실시했다. 이중 우려할 만한 심리상태를 보인 신입생 40여명에 대한 장기심리상담을 진행 중이다.
대학생활문화원 김명언 원장(심리학과)은 “입시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신입생들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라며 “이런 증상을 방치하면 우울증으로 발전하게 되며 심할 경우 자살에 이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원장은 “상담실이나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대학생활의 목표를 무엇으로 정할 것인지부터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