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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시대’ 야만을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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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07. 10. 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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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시대’ 야만을 증언한다
이산자·소수자의 눈으로 환부 드러내고 고발
세상에 진실을 이야기하는 지식인의 목소리

한겨레

» 시대를 건너는 법 /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시대를 건너는 법> 서경식 지음·한승동 옮김/한겨레출판·1만2000원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서경식 지음·이목 옮김/돌베개·1만3000원

 

서경식(56). 그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그는 증언하는 사람이고 고발하는 사람이며 깨우치는 사람이다. 그의 무기는 글이다. 펜을 비수처럼 쓰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자신의 펜을 불빛처럼 쓴다. 그가 들어올린 펜은 촛불이 돼 시대의 어둠을 밝힌다. 거의 사어가 된 말로 하자면 그는 ‘문필가’다. ‘문’과 ‘필’로 그는 우리 시대를 향해, 우리 시대의 불안과 위험과 어둠을 이야기한다. 그가 전통적 문필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위에서 아래를 향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위를 향해 말한다는 점이다. 마치 낮은 땅이 물을 받아안듯 그는 낮은 자리에서 깨달아 얻은 ‘진실’로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들을 담은 책들은 근년 들어 줄줄이 한국어로 옮겨졌다. 그렇게 쌓인 책들 위에 다시 두 권의 책이 얹혔다. 이번에 출간된 〈시대를 건너는 법〉과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 그것들이다. 〈시대를 건너는 법〉이 2005년 봄부터 올해 봄까지 2년 동안 〈한겨레〉 지면에 연재한 ‘서경식의 심야통신’을 묶은 것이라면,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은 1995년에 쓴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을 엮은 것이다.

 



 

20세기를 이끈 49인의 초상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은 일본 아사히신문사에서 기획한 ‘20세기 천 명의 인물’ 일부로 들어간 것이긴 하지만, 지은이 자신이 직접 고른 사람들이어서 그의 생각과 관심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스페인의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에서 한국의 독립운동가 김구에 이르기까지 출신 지역과 활동 내용은 제각각이지만 “사형·전사·암살·객사·자살로 삶을 마감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는 거의 일치한다. 말하자면, 이들은 20세기의 야만과 폭력에 저항한 사람들이었다. 지은이는 그들의 삶을 읽고 공부하는 동안 ‘글쟁이’에게 필요한 지식과 사고의 토대를 닦았다고 말한다. 그 토대 위에서 이제 그가 좀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둘러보며 자신의 예민한 안테나에 걸려든 것들을 글로 쓴 것이 〈시대를 건너는 법〉이다.

 

다른 책들에서 여러 차례 밝힌 대로, ‘한국 국적의 재일조선인 2세’라는 사실은 지은이의 삶을 규정하는 원초적 조건이다. 스무 살 무렵 그의 형 두 사람(서승·서준식)이 ‘대학가에 침투한 재일교포 간첩단’이라는 조작사건에 걸려 20년 가까이 감옥살이를 한 것은 그의 원초적 조건에 또 하나의 특수한 조건을 덧씌웠다.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 내내, 그리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는 형들의 옥바라지와 석방운동에 청춘을 바쳤다. 일본이라는 옛 식민지 종주국에서 핍박받고, 해방된 자기 조국에서조차 탄압받은 그의 가족은 말 그대로 ‘자기 땅에서 유배된 자들’이었다. 그 상처투성이 체험에서 획득한 자기 정체성이 디아스포라(이산자)이고 마이너리티(소수자)다. 디아스포라나 마이너리티나 본디는 부정적 의미의 말이지만, 그는 이 말들의 의미를 역전시켜 적극적으로 재해석한다. 지은이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재해석한 말들을 방침으로 삼아 ‘시대를 건너는 법’을 찾는다.

 

» 일본군위안부를 다룬 김순덕 작 ‘끌려감’
한겨레 연재 ‘심야통신’ 묶어

〈한겨레〉 연재물의 제목이자 〈시대를 건너는 법〉의 부제인 ‘심야통신’은 우리가 건너야 할 시대가 아주 어두운 시대라는 뜻을 품고 있다. 심야라는 건 우선은 지은이가 살아온 나라인 일본이 그렇다는 말이다. “지금은 밤이다. 밤이 계속되고 있다. 일본이라는 사회가 빠르게, 거침없이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그 끝에는 파국이 기다리고 있다. 전쟁 전야, 파국 전야다.” 일본은 식민지 침략과 지배의 과오를 반성할 줄 모르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복귀하려고 안달이다. 그런 사정에 둔감한 그의 모국 한국 또한 이 심야의 어둠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전쟁과 학살로 뒤엉킨 지구촌 전반의 상황을 보면 밤은 더욱 깊어 보인다. 그 깊은 밤 어두운 곳에서 그는 한 줄기 빛을 던지려고 되풀이하여 위험 신호를 발한다. 이때 이 신호를 보내는 자의 처지가 디아스포라이고 마이너리티다. 그는 국가든 세계든 주류와 중심에 틀어앉은 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시대의 환부를 이산자·소수자의 처지에서 들여다보면서, 이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고 나직이, 그러나 힘주어 말한다.

 

그가 이렇게 말할 때 그의 신념에 뒷심을 받쳐주는 사람이 여럿 있으니,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다.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인 에드워드 사이드는 1960년대 이래 죽을 때까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략과 지배에 자신의 지력을 다 뽑아내 저항했다. “학자로서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을 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실천적인 정치영역에 발을 들여놓았는가”라는 질문에 사이드는 이렇게 답했다고 지은이는 전한다. “내게 정말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1967년(제3차 중동전쟁) 이후 어느 시점에서 나 자신이 ‘소집’당했다고 느꼈다. 팔레스타인 투쟁은 정의가 무엇인지 묻는 것이었기 때문에 거의 승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진실을 설파해가려는 의지의 문제였다.” 사이드가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집’ 소리에 달리 어찌할 수 없이 응답했듯이, 지은이 자신도 그 운명을 감당하겠다는 것이다. “(사이드의 대답은) 현대 지식인이 맡아야 할 역할에 대한 명확한 답변이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한 사람인 나 또한 사이드가 남긴 말을 잊지 않고 진실을 계속 이야기해가려 한다.”

 

 


 

책이 된 삶, 삶이 된 책
서경식의 체험을 기록하는 글쓰기

 

우리말로 번역·출간된 서경식(도쿄경제대 교수)씨의 저서는 이번에 나온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과 〈시대를 건너는 법〉을 더해 모두 열 권에 이른다.(공저 포함) ‘삶은 책을 낳고 책은 삶을 만든다’라는 명제는 그의 경우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그는 책에서 힘을 얻었고 그 힘으로 삶의 어려운 국면을 헤쳐나왔다. 그리고 다시 그 체험을 책으로 기록했다.

 

그를 조국의 독자에게 처음 알린 책은 1992년 번역된 그의 첫 저서 〈나의 서양미술 순례〉(창비 펴냄)다. 이 책은 그의 가족사가 그에게 지운 하중의 결과였다. 옥중의 형들을 염려하느라 온갖 마음고생을 다했던 어머니는 1980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3년 뒤에는 아버지마저 형들을 감옥에 두고 어머니를 뒤따랐다. 10년이 넘도록 가족사의 굴레에 갇혀 있던 그는 그해 가을 가슴에 한가득 ‘응어리’를 안은 채 유럽으로 향했다. 최초의 외국여행이었다. 몽마처럼 자신을 따라다니는 불안과 초조를 잊어버리려고 미술관 수십 군데를 쫓기듯 돌았다.거기서 발견한 그림들에 대한 감상을 기록한 것이 〈나의 서양미술 순례〉다. 이 순례의 기록은 군사정권 아래서 고난받고 있는 형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절절하다. 가족의 그림자는 순례의 동행자였다.

 

이 책으로 하여 ‘글쓰는 사람’이 된 그는 그 후 20세기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탐방한 〈청춘의 사신〉(창비 펴냄)과 현대 예술 전반을 통해 시대를 성찰한 〈디아스포라 기행〉(돌베개 펴냄)을 썼다. 〈디아스포라 기행〉에서 그는 여행을 떠나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구태여 말한다면, 일본 바깥의 공기를 마시기 위해서다. 일본이라는 공간은 내게는 조금씩 공기가 희박해져 가는 지하실과 같다. 아니면 염천에 달구어져 지글지글 수분이 증발해가는 작은 웅덩이와 같다.” 〈청춘의 사신〉에서는 또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예술은 그 숨 막히는 지하실에 뚫린 작은 창문 같은 것이었다. 손은 닿지 않고 창문으로 도망칠 수도 없지만, 그 작은 창문 덕에 살아 있을 수 있었다.”

 

〈소년의 눈물〉(돌베개 펴냄)은 그 숨 막히는 지하실 같은 곳, 말라가는 웅덩이 같은 곳에서 어린 소년이 청년으로 성장하기까지 마음의 양식이 되었던 책들에 관한 회상이다. 이 책으로 그는 1995년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받았다. ‘문필가’로서 공인받은 셈이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지은이는 수상 이유가 ‘빼어난 일본어 표현’에 있었다는 점을 털어놓으면서, 자신이 그저 기쁨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모국어를 익힐 기회를 빼앗기고 일본어로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언어의 감옥’에 갇힌 수인이 그 자신인 것이다.

 

» 서경식 / 도쿄경제대 교수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에서 그는 기억해야 할 20세기 사람으로 자신의 어머니 오기순(1922~1980)을 마지막에 기록했다. 두 아들이 석방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던 병석의 어머니는 1980년 신군부의 ‘광주 학살’ 소식을 듣고 낙담하여 세상을 등졌다.

 

그때 그 어머니 곁에서 그가 읽었던 것이 아우슈비츠에서 생환한 유대계 이탈리아인 프리모 레비(1919~1987)의 홀로코스트 증언문학 〈이것이 인간인가〉였다. 〈시대를 건너는 법〉에서 지은이는 그때를 떠올리며 “‘레비를 보라’고 나는 자신에게 말했다”라고 밝힌다. 아무리 끔찍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남아 그 체험을 증언하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레비가 자살한 뒤 그는 이 유대인의 고향을 방문했고 그것을 기록해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창비 펴냄)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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