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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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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07. 10. 2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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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배운 ‘세계’는 진짜 ‘세계’가 아니었다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
이옥순 외 지음 | 삼인 |

 

  • “이슬람교에서 믿는 신(神)은 ‘알라 신’이다.” 이 진술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면, 아랍어로 번역된 성경에서 ‘하느님(하나님)’을 ‘알라’로 표기한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아랍어의 ‘알라’는 영어의 ‘갓(God)’, 중국어의 ‘천주(天主)’, 히브리어의 ‘야훼’와 같은 뜻으로 일신교에서의 신을 말한다. ‘알라 신’이라는 말은 ‘하느님 신’이라는 표현이나 마찬가지이며, 마치 다신교에서 여러 신 중 한 신의 이름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현행 교과서들이 여전히 ‘알라 신’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 책은 분명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고 배우고 있는 ‘세계사’라는 과목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우리 교과서에 담긴 ‘세계’는 ‘세계’가 아니다. 유럽·미국과 동북아시아만 중심에 놓고, 그 지역 밖에 있는 더 넓은 세상과 더 많은 사람들은 구색 맞추기로 끼워 넣었을 뿐이다.”

  • 말하자면 이 책은 ‘그 나머지 지역 전공자’들의 합종(合縱)이자 반격이다. 중앙유라시아(이평래), 동남아시아(조흥국), 인도(이옥순), 서아시아와 이슬람(이희수), 아프리카(한건수), 라틴아메리카(이종득), 오세아니아(이태주)라는 ‘교과서에서의 7대 마이너 지역’으로 나누고 현행 중·고교 역사·지리 교과서들을 분석했다.
  • ▲ 라틴아메리카의 역동적인 문화를 상징하는 브라질의 삼바 퍼레이드.‘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의 필자들은 한국의 현행 세계사 교과서가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암울하게 그리고 있으며, 이런 시각은 유럽과 미국이 이곳에 대해 품은 편견을 반영한다고 지적한다. /AP
  • 그 결과는? 한 마디로 우리 세계사 교과서는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했다’. 우선 분량의 문제다.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는 한 단원으로조차 독립돼 있지 않고, 중앙유라시아와 오세아니아는 아예 세계사 교과서 본문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적은 분량이나마 수록된 내용들 역시 문제투성이다. 우리가 가끔 다른 나라의 교과서에 ‘과거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의 속국이었다’고 돼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분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 나라 교과서를 보면 분통을 터뜨릴 내용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결정적인 몇 가지 오류부터 살펴보자. ▲몽골 유목민들의 이동식 천막을 교과서는 ‘빠오’나 ‘파오’라고 써 놓았다. 이것은 몽골 말이 아니라 다름아닌 중국어 ‘포(包)’에서 온 것일 뿐이다. 마치 외국 교과서에서 우리 ‘김치’를 ‘기무치’로 소개한 꼴이 아닌가? 몽골 말대로 ‘게르(ger)’로 바꿔야 한다. ▲원(元)나라 때 중앙아시아 사람들을 일컫던 ‘색목인(色目人)’이란 ‘눈동자[目]의 색깔[色]이 다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진술은 타당한가? 그것도 아니다. ‘색목인’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라는 뜻인 ‘제색목인(諸色目人)’의 준말이다. ▲카스트 제도의 ‘수드라’가 노예와 천민 계급이라는 표현도 맞지 않다. 그것은 고대 경전에서의 구분일 뿐이며 실제로 ‘수드라’는 평민으로 봐야 한다. 노예나 천민은 수드라보다 더 낮은 계층으로 카스트 제도 바깥에 있는 ‘불가촉 천민’이다. ▲원래 백인이 흑인 노예를 경멸적으로 부르는 말이었으며 지금은 세계적으로 금기어가 된 ‘니그로(negro)’라는 용어가 여전히 교과서에서 쓰이고 있다. ‘아프리카는 니그로 인종의 본고장’이라는 교과서의 문장을 흑인 민권운동가들이 본다면 19세기 서구 백인의 인종주의가 21세기 대한민국에 살아 있다며 놀랄 것이다.

    하지만 독자들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지식의 오류를 교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여태껏 세계사 교과서를 통해 배워 왔던 ‘세계관’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깨달음이 거기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선 교과서의 다음 문장을 보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리스 군대를 이끌고 동방 원정을 단행했다.” “영국은 지중해와 중앙아시아 방면에서 세력을 확장했다.” 이번엔 다음 문장. “아프가니스탄의 투르크 족이 11세기 전반부터 인도를 침입했다.” “인도 서북쪽으로부터 이슬람 교도가 침략해 이슬람계 국가들이 등장했다.” 똑같은 무력 점령이라도 유럽이 하면 ‘원정’ ‘확장’ ‘진출’이라는 긍정적 용어가 나오는 반면, 아시아가 하면 ‘침략’ ‘침입’ ‘약탈’이 된다.

    인도의 역사와 문명이 고대 힌두교와 이슬람교 같은 종교를 중심으로 서술되고 근·현대 문명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는 것은, 은연중에 인도에는 고대만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영국의 제국주의적 역사 서술을 답습하고 있는 셈이다. 오세아니아는 ‘양떼의 천국’으로 묘사되는데, 2만5000여 개나 되는 다채로운 섬들과 그 원주민들의 삶은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다.

    이것은 현재의 경제력을 중심으로 세계의 역사를 인식한 결과가 아닐까? 이 책의 저자들은 묻는다. 서구 강대국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제3세계를 타자(他者)로서 바라보며 그 실체를 파악하는 대신 신비화하거나 멸시하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이 한국의 교과서 집필자들에게까지 그대로 전해져 다시 학생들의 세계관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인도에서) 누더기 승려복을 걸치고 몰골이 흉하게 생긴 사람이 거리에서 구걸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타잔과 제인이 때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던 곳”이라는 문장이 교과서에 버젓이 등장할 수 있었을까.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 교과서에 중국 ‘동북공정’의 기본적인 논리가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교과서도 유라시아 초원 지대에서 활동하며 세계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유목인들을 하나의 문명권으로 설정하지 않았고, 때로는 마치 중국사의 일부인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그들의 활동 무대였던 동서 교역로는 ‘동쪽 끝’ 사람들과 ‘서쪽 끝’ 사람들이 물자를 거래하던 통과 지점으로만 인식되고 있으며, 정작 그 ‘길’의 주인공이 누구였는지는 묻지 않고 있다. 유목민이 ①떠돌다가 ②물자가 부족해서 ③정착민을 약탈한다는 도식적인 서술은 ‘농경세계는 문명이며 유목세계는 야만’이라는 중국인들의 오래된 한족(漢族) 중심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그렇다면, 교과서가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학계의 지식 수입원(收入源)이 전근대의 중국과 근대 이후의 서구·일본뿐이었던 데 있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세계’는 진짜 ‘세계’가 아니었다”고 말이다. <조선닷컴>

 

이건 아니잖아…

오류·편견이 가득한 세계지리·역사 교과서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 / 이옥순 등 7명 지음 / 삼인


 

 

세계화시대, 우리는 세계를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을까.  이평래(한국외대 역사문화연구소) 이옥순(연세대 인문과학연구소) 이희수(한양대 문화인류학과)씨 등 각 지역의 문화를 연구해온 전문가 7명은 2년 여에 걸쳐 중ㆍ고교의 세계사, 지리 교과서 48종을 분석했다.

 

그 결과인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는 우리 젊은이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을 최초로 결정짓는 교과서가 동북아와 미국, 유럽이 중심이 되고, 그 외의 더 넓은 세상과 더 많은 사람은 구색 맞추기로 취급해 진정한 세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찍이 실크로드를 경영하면서 첨단문명을 누렸던 중앙유라시아 지역은 거의 공백으로 처리되고 있다. 실크로드의 주역은 중국과 로마이며, 실크로드가 있던 중앙아시아는 비단 등 상품이 지나간 통과 지점으로 인식된다. 이는 동서양 끝 세계만 문명세계로 보았던 19세기말~20세기초 실크로드 연구자들의 관점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동남아는 우리와 갈수록 밀접한 관계를 맺어가고 있는데, 이 지역에 대한 교과서의 이해 수준은 매우 낮다. 이 지역의 불교를 ‘소승불교’라고 하는데, 이는 대승불교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현지 식으로 ‘상좌불교’라고 불러야 한다. 2차대전후 동남아의 변화, 발전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다.

카스트나 힌두교와 이슬람교 등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는 인도에 관한 부분은 인도에는 고대만 있고 현대는 없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교과서의 인도 역사는 19세기말이나 1905년에 끝나는데 이는 인도를 비하한 영국 교과서의 설정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인구 14억 명으로 지구 최대의 단일문화권인 이슬람지역에 대한 인식은 서구 매체의 영향으로 부정 일변도로 비춰지고,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은 백인 우월의 인종주의적 편견이 포함돼 있으며, 남미에 대한 설명은 유럽과 미국의 편견과 멸시를 그대로 담고 있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오세아니아는 호주와 뉴질랜드 뿐이며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 마이크로네시아로 불리는 2만5,000개나 되는 남태평양의 섬과 원주민들의 세계는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한국일보>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

/이옥순 이종득 이태주 이평래 이희수 조흥국 한건수 지음/삼인

 

예전 부모는 교과서의 내용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군사부일체의 나라에서 교과서는 곧 진리의 권위를 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의 홍수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부모는 다르다. 자녀들의 교과서를 읽다가 내용의 부실함에 깜짝 놀란다. 내용의 편향성은 말할 것도 없고 사실 관계의 오류가 만만치 않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교과서포럼에 참여한 학자들이 근현대사 교과서의 한국사 비하를 비판하고 나섰다면 이 책의 필자들은 사회·지리·역사 교과서의 제3세계 역사 왜곡을 지적했다. 7명의 필자는 중앙유라시아, 동남아시아, 인도, 서아시아-이슬람,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우리 교과서에서 상대적으로 홀대받는 지역의 전문가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중학교 사회1(금성출판사) 교과서에서 흑인종을 비하하는 ‘니그로 인종’이라는 표현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는 점이다. 니그로라는 말이 아프리카에서 잡혀 온 흑인 노예에 대한 경멸적 표현으로 사용됐기 때문에 미국과 유럽에서는 1960년대부터 금기시한다는 것은 웬만큼 영어를 배운 사람에겐 상식이다. 같은 맥락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원주민을 ‘인디오’가 아닌 ‘인디헤나’로 표현해야 하지만 이를 무시한 교과서도 상당수였다.

 

알라는 곧 신을 뜻하기에 알라신이 아닌 알라로 표현해야 한다거나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도착한 것일 뿐이라는 상식도 무시되기 일쑤다. 아랍의 ‘아라비아 만’과 이란의 ‘페르시아 만’ 호칭 분쟁으로 중립적인 ‘걸프 해’로 표기하는 지역을 거의 모든 지리부도와 역사부도가 ‘페르시아 만’으로만 표기하는 무감각도 마찬가지다.

 

이들 지역에 대한 몰이해가 낳은 웃지 못할 내용도 많다. 몽골의 이동식 천막 ‘게르’를 앙숙인 중국의 언어인 ‘빠오’로 쓴다거나 아랍에선 금지된 무하마드의 초상화를 그려 넣기도 한다.

 

인도 카스트 제도의 복잡한 성격을 몰라 이를 지배-피지배 계급으로 단순화했다는 지적이 겸연쩍다면, 대부분의 교과서가 멕시코 남부의 마야 문명과 멕시코 중부의 아스테카 문명을 혼동하거나 이질적인 두 문명을 계승 관계로 착각하고 있다는 지적엔 낯이 뜨거워진다.

 

이슬람 칼리프 왕조 ‘우마이야’를 ‘옴미아드’라고 엉뚱하게 호칭하고 흑인이 많은 브라질에 흑인 인구가 없는 도표를 삽입하면서 흑인이 거의 없는 칠레에는 흑인 인구가 90%에 육박하는 도표를 넣는 식의 기초적 오류 앞에선 할 말을 잃는다.

 

중국 중심의 역사관에 사로잡혀 흉노, 선비, 유연, 돌궐, 위구르 등 유목민의 역사는 물론 문화권 지도에서 그들의 활동 공간을 아예 공백으로 처리하면서 과연 중화주의를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이런 우리 교과서를 두고 다른 나라 교과서의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다른 사람 눈의 티는 잘 찾으면서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는 말에 해당되지 않을지. 제발 아이들에게 읽힐 때 부끄럽지 않은 교과서를 만들자.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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