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시대와 고전 논술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인간
자료나 정보를 수집하기만 하는 ‘개미’, 사변적인 생각에만 머무는 ‘거미’가 아니라 이를 나름대로 가공하여 체계화할 수 있는 ‘꿀벌’이 돼야 한다.
“발표문이나 리포트를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그대로 제출하지 마세요. 분량은 적어도 좋으니까 1시간 정도 스스로 생각해 본 다음 자신의 견해를 에세이 쓰듯이 자유롭게 정리해 보세요.”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어떤 주제에 대한 과제물을 받으면 우선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리고 인터넷 검색엔진을 가동해 관련된 자료를 찾는다. 그것들을 짜깁기해서 대충 과제물의 형식에 맞춘다. 그 다음 상당한 시간과 정성을 들여 겉표지를 보기 좋게 만든다. 과제물을 완성하기까지 인터넷 자료검색과 리포트의 겉표지를 만드는 일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다. 정작 리포트의 본래 목적인 스스로 생각하고 정리하며 쓰는 일에는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발표문이나 리포트의 내용이 엇비슷한 경우가 많다. 대부분 인터넷 검색순서에 따라 내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또 발표 내용을 제대로 소화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한두 가지 추가적인 질문을 하면 답변을 하지 못하고 당황해하며 얼굴이 상기된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단 5분이든 10분이든 스스로 생각하여 글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물론 그렇게 쓴 리포트에는 후한 점수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인간에게는 생각하고 말하며 쓰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 또는 ‘호모 로스’라고 부른다. 라틴어로 ‘호모(Homo)’는 ‘인간’이나 ‘사람’을 가리키는 학명이며 ‘사피엔스(sapiens)’는 ‘지혜로운’이나 ‘슬기로운’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지혜로움과 슬기로움을 갖고 있으며, 이것은 인간의 고유한 특성인 이성적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
논술교육은 성숙한 인간을 만든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이러한 사고의 능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또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언어적 능력이다. ‘호모 로스(Homo loquens)’는 ‘언어적 인간’이라는 의미를 지닌 말로 인간의 본질적 측면을 언어사용에서 찾고 있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우리의 생각과 경험을 타인에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문화적 전통을 계승하고 사회적 규칙과 규범을 습득하기도 한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도구인 것이다. 사피어 및 워프와 같은 언어학자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언어가 단지 의사전달 수단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사고방식 자체를 규정하는 힘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언어를 통해서 사고하기 때문에 어떤 언어 체계를 지니고 있는가에 따라서 사고방식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까지 수용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언어가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맡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요즘 강조되고 있는 ‘참여 민주주의’나 ‘대화 민주주의’도 이러한 언어의 역할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참여나 대화는 기본적으로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시대 최고의 철학자로 간주되고 있는 하버마스는 인간 해방이란 자율적인 판단 능력과 자유로운 행동에 있다고 하면서 이러한 상태는 자유롭고 평등한 대화를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즉 민주적인 대화의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은 자율성과 자유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자유롭고 민주적인 의사소통의 과정이 개인과 사회의 합리성을 증진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로스’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교육과 훈련, 경험이 필요하지만 그중에서도 논술교육은 큰 도움이 된다. ‘논술’은 말 그대로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논술을 위해서는 우선 어떤 문제나 주제에 대해 비판적·논리적으로 생각한 다음에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 주장에는 문제점이 없는가? 이 주장은 어떤 전제를 깔고 있는가? 다른 관점에서 볼 수는 없는가? 더 좋은 대안은 없는가? 우리는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저렇게도 생각해 보면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여러 근거를 찾아본다. 우리는 이러한 훈련을 통해 좀더 폭넓고 깊이 있게 사고하는 능력을 키운다. 이것이 바로 ‘호모 사피엔스’로 성숙하는 과정이다.
물론 이렇게 정리된 생각이나 주장은 언어로 표현된다. 자신의 주장을 말로 표현하면 구술이고, 글로 표현하면 논술이다. 구술과 논술은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표현방법에서 다르다. 논술이 구술에 비해 좀더 엄격한 논리성이나 체계성을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
구술은 말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설명이나 내용의 수정이 가능하지만, 논술은 처음부터 끝까지 체계적인 완결된 형태의 표현을 요구한다. 따라서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어떻게 하면 좀더 효과적이면서도 체계적으로 전달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어떻게 독자의 관심을 끌 것인가? 주장과 근거를 어떤 순서로 구성할 것인가? 한 문장의 길이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 이 문단에서는 어떤 주장을 펼칠 것인가? 문단을 새로 시작할 것인가? 글의 전체적인 전개방향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글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우리는 이러한 고민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모색해 보고 이를 직접 글로 표현한다. 이것이 바로 ‘호모 로스’로 성숙하는 과정이다.
이처럼 논술은 인간의 본질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사고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키우는 계기가 되며, 이러한 논술 교육을 통해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로스’로 성숙해 나갈 수 있다.
부족한 논술, 결국 대학에서 다시 배운다
어떤 문제에 대해 머리를 싸매고 골똘히 생각해 보면서 그것의 문제점을 비판하거나 더 좋은 대안을 생각해내는 어렵고 힘든 작업 대신에 쉽고 가벼운 것만을 선호하다 보면 지성의 결핍을 낳게 된다. 대학 당국도 이런 문제를 깨달았는지 요즘 여러 대학에서 ‘논술’을 교양과목으로 채택하는 추세다.
‘논술’ 과목은 기존 ‘작문’과 차별성을 지닌 교과과정으로 운영되는데, 이미 숙명여대와 세종대가 ‘논술’을 교양 필수과목으로 지정하여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연세대와 이화여대도 논술을 교양과목으로 채택하고 있다. 서울대는 교수학습개발센터에서 ‘글쓰기 교실’을 열어 리포트나 학위 논문과 같은 학생들의 글쓰기를 지도하고 있다. 또 논리, 논술에 관심이 많은 서울대 철학과 김영정 교수를 비롯해 여러 교수들이 ‘논술’을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하면서 좀더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논술교육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교재개발도 이루어지고 있다.
대학 입시에 논술시험이 부활된 지도 어언 10년이 되어간다. 초기에는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이제 논술시험이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현재의 교육 여건에서 대입 논술은 학생들의 논술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주요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 논술의 비중이 높아 학생들은 좋든 싫든 간에 논술시험을 준비할 수밖에 없다. 이제 논술시험을 어쩔 수 없이 보아야 하는 귀찮은 시험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이것을 잘 활용해보자.
현재 논술시험 준비는 학교나 학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학교에서 지속적이면서도 체계적으로 논술을 가르친다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여러 현실적 여건 때문에 그렇게 되기가 어렵다. 학교든 학원이든 논술 경험이 풍부한 강사가 강의를 하면서 직접 꼼꼼히 첨삭지도를 해주는 수업이라면 학생들의 논술실력을 향상시키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대체로 1000자 이상의 논술문을 10회 정도만 열심히 작성해보면 1시간에 1000자 분량의 글을 쓰는 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절대 논술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이다.
고전은 지식의 보물 창고
21세기 정보화 시대에도 고전 논술이 필요할까? 인터넷이나 위성 텔레비전과 같은 다양한 첨단 디지털 매체를 통해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손쉽게 얻을 수 있는데, 굳이 고리타분하게 고전을 읽고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글로 표현하는 힘든 작업을 할 필요가 있을까? 언뜻 보기에 논술은 정보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인터넷을 하다보면 www라는 알파벳을 자주 보게 된다. 이것은 World Wide Web의 약자로 ‘전세계를 광범위하게 뒤덮고 있는 거미줄’이라는 뜻이다. 인터넷은 전세계의 모든 컴퓨터를 거미줄처럼 연결시킴으로써 거기에 저장된 정보를 무한정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누구나 인터넷에 연결된 자신의 컴퓨터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의 정보를 이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자신이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인터넷은 전세계에 걸쳐 있는 하나의 거대한 텍스트라고 하겠다. 이 텍스트는 정보의 제공이나 사용에서 중심이 없다는 의미에서 ‘탈중심적’일 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자유롭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개방적’이다. 따라서 ‘거대한 열린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인터넷은 지식의 독점을 막고, 모든 사람이 지식의 생산과 활용에서 주체로 나설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매체다.
그렇지만 인터넷의 이러한 특성은 때로는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는 말 그대로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홍수’라는 말은 정보가 많다는 의미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온갖 종류의 정보가 뒤섞여 있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정보가 많은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쓰레기와 같은 저질 정보나 왜곡된 정보, 기만적이고 허구적인 정보는 많을수록 오히려 해악이 된다. 정보의 최소 단위인 비트(bit)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정보의 양이 정보의 질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미 있는(semantic) 정보, 쓸모 있는(useful) 정보이다.
우리가 정보의 홍수 속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정보의 질을 판별할 능력이 필요하다. 인터넷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않기 위해서는 주어진 정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나는 이러한 토대가 고전을 통해서 마련된다고 본다. 고전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지식의 보고(寶庫)’다.
고전에는 인류의 축적된 지혜와 사상이 담겨 있다. 고전 속에는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삶의 문제들이 녹아 있다. 고전 속에는 단편적인 정보가 아니라 고뇌와 반성을 통해서 얻어진 체계적인 지식이 담겨 있다. 따라서 고전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삶의 지표를 정하는 데 있어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우리는 고전을 통해 정보의 홍수 속에서 표류하거나 방황하지 않고 중심을 잡아 헤쳐나갈 수 있는 혜안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고전을 통해서 획득한 지식과 사상을 바탕으로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사고력을 키울 수도 있다.
고전 읽기를 통한 사고력 훈련
우선 고전을 읽으면서 핵심적인 주장과 그 근거를 찾아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밀은 ‘자유론’에서 근대 자유주의의 ‘자유’ 개념을 확립하면서, 개인에게 가급적이면 최대한의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밀은 육체와 정신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며, 또한 자신의 취미나 개성, 기호는 자기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간섭보다는 자유가 대체로 개인에게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말한다. 따라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에만 사회가 간섭을 해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개인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밀의 주장과 그 근거를 확인해 보았다면 우리는 이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비판적 사고를 전개해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타인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고 자기 집에서 혼자 마약을 복용한다고 했을 때, 이에 대해 사회가 간섭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개인의 자유에 내맡겨야 하는가? 만약 간섭을 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간섭을 해야 한다면 이것은 밀의 주장에 어긋나지 않는가? 그렇다면 밀의 주장은 수정되어야 하는가? 다른 경우에는 어떠한가?
예를 들어 성인이 포르노 테이프를 보는 것에 대해 사회가 간섭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개인의 자유에 내맡겨야 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사상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이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사상을 자신의 일기장에 써놓았다면 그에게 제재를 가해야 하는가? 그 사람이 그런 내용을 책을 통해서 주장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만약 그 사람이 그러한 주장을 타인에게 강요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러한 비판적 사고의 과정을 통해서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간섭’이라는 주제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정리할 수 있다.
어떤 책을 고전으로 볼 것인가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서울대에서는 논술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 ‘고전 100선’을 선정하기도 했는데, 고전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이를 참조하는 것도 좋다. 여기서는 지면상 몇 권의 고전과 이와 연관된 논술 주제를 소개하는 데 그치도록 하겠다.
●로크 ‘시민 정부론’ : 개인의 사유 재산은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자신의 노동을 통해서 배타적 소유권이 형성된다면 상속은 정당한가? 빌 게이츠나 이건희의 거대한 부는 정당한가? 로크의 소유권 이론은 정보화 시대에도 통용될 수 있는가?
●니부어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 사회’ : 집단간의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개인이 도덕성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인가, 아니면 사회 구조나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우선인가? 사회 구조나 제도는 어떻게 고쳐질 수 있는가? 억압자들의 양심에 호소할 것인가, 아니면 피억압자들의 단결된 힘에 의존할 것인가?
●레비 스트로스 ‘슬픈 열대’ : 문화를 평가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는가? 모든 문화가 상대적인 관점에서 존중되어야 한다면, 비인간적인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가?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피터 싱어 ‘실천 윤리학’ : 모든 불법적인 행동은 처벌되어야 하는가? 불법적인 행동이라도 정당한 행동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가? 시민 불복종 운동은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정당화될 수 있는가? 지난 총선에서 시민 단체가 벌인 낙선 운동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제레미 리프킨 ‘엔트로피’ : 엔트로피 이론의 관점에서 물질 문명이나 경제 성장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엔트로피의 증가 속도를 줄이기 위한 합리적인 방안은 무엇인가? 과학 기술의 발전이 엔트로피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는가?
논술의 고통에서 논술의 즐거움으로
논술에는 왕도가 없다. 단지 많이 읽고(多讀), 많이 쓰고(多作), 많이 생각해 보는(多商量) 것만이 최선의 길이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나 힘들고 고된 작업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근시안적으로 순간의 편안함만을 추구하다 보면 더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없다.
나는 논술을 비롯한 글쓰기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사고를 연마하는 고통을 겪은 다음에 더 좋은 글이 나오고 이를 통해 우리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커다란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베이컨이 비유적으로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단지 자료나 정보를 수집하는 ‘개미’나 사변적인 생각만을 전개하는 ‘거미’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한 발 더 나아가 자료나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나름대로 가공하여 체계화할 수 있는 ‘꿀벌’이 돼야 한다.
논술실력은 직접적으로 대학 입시나 리포트, 대학 시험, 고등 고시 등에서 실제적인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로스’로 성숙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준다. 비판적이고 논리적인 사고 능력과 체계적인 표현 능력을 갖춘 성숙한 시민이 많아질 때, 우리사회는 좀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참여정부가 내세우는 ‘2만달러 시대’도 이러한 지적 능력과 성숙한 시민 의식이 뒷받침돼야만 가능한 것이다.
<출처: 신동아>
글: 손철성 국민대 강의전담교수sonyusu@hanmail.net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민대 교양학부 강의전담교수로 재직하며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객원연구원, 국립중앙도서관 철학분야 외국자료추천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유토피아, 희망의 원리: 현대 사회에서 유토피아론의 재구성을 위한 철학적 탐구’ ‘디지털 지식 자원 구축을 위한 기초적 연구: 마르크스 독일 이데올로기’ ‘고전과 논리적 글쓰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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