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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실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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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08. 3. 3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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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념적 대결이나 관념의 유희가 심해질 때 구세주처럼 나타나는 용어가 '실용(實用)'이나 '실용주의'이다. 실용주의를 가장 잘 실현한 나라로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을 손꼽을 수 있다. 청교도주의적 도덕성과 합리주의, 신의성실의 원칙이 사회의 밑바탕에 배어 있던 미국은 효율성과 능률을 앞세운 실용주의가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면서 2차대전 이후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자본주의 국가로 떠올랐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거침없는 발언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린다. 실용을 내세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관련 부처들은 허둥지둥 헤매기 일쑤다. 이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대불공단의 '전봇대' 를 언급하자 마자 이틀만에 뽑혀졌다. 그러나 대불공단의 문제는 전봇대가 아니라 비좁은 진입도로 자체였다.


 밀가루값이 오르자 이 대통령은 '쌀국수'를 거론했고, 관련 부처들이 쌀국수 개발 가능성에 매달렸다. 라면값도 도마에 올랐다. 밀가루값 인상에 따른 라면값 원가를 비교한다고 떠들썩 했다. 분식점 업주들은 라면값 상승분 이상으로 값을 올렸다고 파렴치범처럼 매도됐다. 대통령이 물가안정을 위해 '50개 품목'을 거론하자 해당 부처들은 부산을 떤 끝에 자장면을 포함한 50개 물가관리 품목을 내놓았다. 1970년대식 물가관리방식으로 회귀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예산 아끼기 차원에서 이 대통령이 언급한 '2백20대 톨게이트 발언'으로 인해 비정규직인 장애인 및 국가유공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됐다고 한다. 아직 부분 개통 지역이라 향후 완전 개통되면 많은 인력이 필요한데도 대통령 말 한마디에 '억지 춘향이'처럼 비정규직을 감원해야 할 판이다.


 새정부가 출범한 이후 복잡한 현안인데도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거두절미하고 해법을 단순화시키는 사례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관련 부처들은 자다가 홍두깨를 맞은 것처럼 허둥거린다. '최고 중의 최고'(Best of best)만 뽑았다는 각 부처의 장관들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다. 지금 정부에는 대통령만 있고 총리와 장관 등은 보이지 않는다. 실용을 앞세운 대통령의 입에서 운전면허시험을 간소화하라는 말까지 나왔다.


 지금의 우리사회는 삼성 특검에서 보듯 여전히 천민자본주의가 판을 치고, 사회적 신뢰성이 실종된 채 구성원간 불신이 앞서는 게 현실이다. 대통령은 실용을 외치고 있지만 정부는 물론 우리 사회도 전혀 실용적인 것 같지 않다. 게다가 도덕성도 팽개치고, 역사의식도 묻어둔 채 능력만 있다고 해서 실용적일 수 없다. 이런 현상이 과연 21세기에 어울리는지 난감할 뿐이다.

<2008.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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