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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π)데이

또다른공간-------/생활속의과학

by 자청비 2008. 5. 19.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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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수학이야기](6)파이(π)데이

 

<경향신문>

 

지난 달에는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발렌타인 데이(2월14일)가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 날에는 성에 관계없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 고백의 증표로 초콜릿을 전해 주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지켜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날만 되면 선물을 하는 여성도 선물을 받게 될 남성도 왠지 모르게 가슴이 설레게 된다. 이렇게 2월 14일에 행사가 끝나고 나면 또다시 가슴 설레는 3월 14일 화이트 데이를 기다린다.

화이트 데이에는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설레임은 매월 계속된다. 4월 14일은 블랙 데이, 5월 14일은 로즈 데이, 6월 14일은 키스 데이, 7월 14일은 실버 데이, 8월 14일은 뮤직 데이, 9월 14일은 포토 데이, 10월 14일은 와인 데이, 11월 14일은 무비 데이, 12월 14일은 머니 데이, 1월 14일은 다이어리 데이. 다 나열하기에도 벅차다. 물론 서로를 위해 기쁘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갸륵하기는 하지만 이것들이 모두 상술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그 낭만이 반감된다.

그런데 이러한 상술을 벗어나 학문적인 의미로 기념하는 날이 있으니 바로 화이트 데이로만 청소년들이 기억하고 있는 3월 14일 파이 데이이다. 언뜻 보면 사탕이 아니라 사과 파이나 땅콩 파이 같은 것을 연인과 함께 먹는 날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전혀 그 의미가 다르다. 무엇을 먹거나 무엇을 선물하거나 하는 등으로 주머니를 털지 않아도 무방한 날이다. 바로 수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파이(π)를 기념하는 날이다. π는 원주율이고 원주율은 원의 둘레의 길이를 지름으로 나눈 값을 말한다.

π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원주율을 π라는 문자로 대신 사용한 것은 스위스의 수학자 오일러가 최초라고 한다. 기원전 2000년 무렵의 것으로 알려진 '테머 폐허의 린드 파피루스‘에 보면 원의 넓이 문제가 있으며 여기에서 원주율은 3.16으로 계산된다. 원주율을 체계적으로 계산한 사람은 바로 아르키메데스이다. 기원전 225년, 아르키메데스는 원에 내접하는 정다각형과 외접하는 정다각형을 이용해서 원주율이 223/71과 22/7 사이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이것을 소수로 나타내면 3.140845....<원주율<3.142857... 이다. 아르키메데스로부터 300년 후인 서기 150년경 프톨레마이우스는 원주율이 3.141이 됨을 알아내었다. 5세기 중국의 조충지는 소수 6자리까지 계산하고, 1896년 루돌프 반 쾰렌은 소수점 이하 35자리까지 계산하였다. 그 후 π는 소수점 이하 어느 자리에서도 끝나지 않고 무한히 계속되는 무리수이며, 유리수를 계수로 갖는 유한 차수의 다항식의 해가 될 수 없는 초월수라는 것이 밝혀진다. 초월수라는 사실을 통해 그리스의 3대 난제인 ‘자와 컴퍼스만을 사용하여 원의 넓이와 같은 정사각형을 작도하는 문제’는 불가능한 것으로 증명된 것도 수학사에서는 유명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원주율의 값을 구하려는 노력은 중단되지 않고 컴퓨터를 이용하여 π 값을 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2002년 12월에는 소수점 이하 1조 2400억 자리까지 구하게 되었다. 컴퓨터로 파이의 소수점 이하 자릿수를 계산하는 것은 π의 정확한 값에 대한 흥미 때문만은 아니고, 새로운 슈퍼컴퓨터를 개발하였을 때 컴퓨터의 성능을 평가하기 위한 한 척도로 사용된다고 한다.

초등학교에서는 원둘레의 길이와 원의 넓이를 구할 때 원주율을 사용하며, 중학교에서는 구의 부피와 구의 겉넓이를 구할 때 원주율을 사용한다. 그러나 π는 이러한 기하영역 뿐 아니라 확률에서도 사용된다. 임의로 두 개의 자연수를 선택했을 때 그 둘이 서로소일 확률은 6/π의제곱이며, 자연수를 두 개의 제곱수의 합으로 적을 수 있는 경우의 수는 평균적으로 π/4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해석학의 스털링 공식, 라이프니츠 공식, 물리학의 불확정성의 원리 및 동역학에서도 그 활약은 실로 대단하다. π를 발견하지 못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걱정이 될 정도이다.

오가와 요코의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라는 소설에서, 미망인인 박사의 형수와 가정 도우미 사이의 말다툼을 제지하기 위해 박사는 e의πi곱+1=0이라는 식을 종이에 써서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이 식이 바로 유명한 오일러 등식이었다. 이 식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등식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드라마인 ‘넘버스’에서도 π가 등장한다. 살인사건과 관련된 돌랜과 프랠랜 판사와의 사건을 이어주는 어떤 실마리를 찰리 교수가 수학적으로 발견했지만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할 때, “수학은 가끔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찾아내. 전부 설명할 수는 없어. 음 그건 π와 같아.”라고 말한다. 당혹해 하는 FBI 요원에게 찰리는 “선이 그어진 종이 위에 무작위로 바늘을 떨어뜨리면 바늘이 선과 만나는 확률이 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겁니다. 뷔퐁의 바늘이라고도 부르죠.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관계가 없는 곳에 왜 파이가 나오는지 아세요? 아직 아무도 모르지요.”라고 하면서 이와 같은 초월수인 π를 생각한다.

이러한 위대한 수학의 발견인 π를 기념하기 위한 날이 바로 3월 14일 ‘파이데이’이다. 미국의 한 유명한 수학 동아리에서 3.14159...를 기억하고자 3월 14일 오후 1시 59분에 행사를 가진 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나라에서도 포항공대 뿐 아니라 고등학교의 수학동아리 등에서도 그 날을 파이의 날로 정해, π 모양의 파이나 지름이 π인 둥근 파이를 먹기도 하고 원주율을 외우는 대회 등 각종 행사를 열고 있다. 현재 기네스 기록은 중국의 차오루라는 대학생이 2005년 24시간 동안 6만 7890자리까지 외운 것이라고 한다. 미국 필라델피아 오페라 하우스에서 경비로 일하던 마크 우미레씨는 노래를 외우는 방법으로 원주율을 소수점 이하 1만 2887까지 암기하여 미국 최고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가오는 화이트 데이에는 초콜릿이나 사탕을 선물하기보다 연인들끼리 원주율에 대한 이야기를 해 봄은 어떨까? 영원히 끝나지 않는 수이니 사랑이 영원하기를 기원하면서.

<김정하 교사 | 수학과 문화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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