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흐름은 최근 간행된 겨울호 계간지들에서도 확인된다. 이명박 정부의 행보에서 ‘정치적 퇴행’과 ‘파시즘’의 징후를 읽어내는 분석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우선 주목되는 것이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문화과학>에 쓴 ‘치안의 스테이트와 저항의 스테이트’라는 글이다. 전 교수는 이 글에서 이명박 정부의 성격을 ‘치안 스테이트’로 규정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치안’은 소통과 합의가 사라진 ‘정치 부재의 통제 상태’를 지칭하기 위해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에게서 빌어 온 개념이다. 전 교수에 따르면, 노동유연화와 실질임금 삭감 등 반노동적 축적전략에 의해 지탱되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는,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억누르기 위해 무력과 결합된 국민적 동의 메커니즘을 필수적으로 요청한다. 법치 확립을 명분으로 경찰기구가 통치 전면에 부상하고, 건전한 여론 형성을 빌미로 미디어에 대한 장악과 통제가 시도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 교수는 이런 치안 스테이트의 선례를 영국 대처리즘과 조지 부시 미국 정부의 ‘테러와의 전쟁’,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내각의 ‘범죄와의 전쟁’에서 찾는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회적 공포를 조장해 안전과 공익에 대한 허구적 합의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강압적 공권력이 전면화하는 예외적 통치 상황을 정당화한다는 점이다. 전 교수는 따라서 “2008년 한국에서 목격되는 인터넷 검열과 매스컴 통제, 낙하산 인사와 공영방송 해체의 모습들도 결코 우발적이지 않은 ‘신자유주의 치안 스테이트’의 징후이자 산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사한 논의를 이광일 성공회대 연구교수의 <시민과 세계> 기고문 ‘신자유주의, 이명박 정권과 민주주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교수는 여기서 이명박 정부를 신자유주의에 대한 사회적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치안기구의 감시·통제 기능을 극단화한 ‘신자유주의 경찰국가’로 규정하는 한편, 파시즘으로의 전환 가능성까지 경고한다. 그는 이런 징후를 근대 기술의 합리성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민주주의 과잉론’과 ‘좌파 적출’ 같은 극우적 언사를 일상적으로 구사하는 집권층의 행태에서 찾는다. 특히 근대의 산물인 노동운동을 사회 안으로 포용하려는 일체의 시도를 부정하는 이들의 태도에선 파시즘의 특징인 ‘반동적 모더니즘’의 경향마저 관찰된다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기억과 전망>에 ‘정치위기와 사회운동의 새로운 주기’라는 글을 발표한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지난여름 촛불시위 국면을 통해 형성된 진보·보수의 ‘파국적 균형’ 상황에 주목한다. 이런 균형은 “어떤 사회정치적 대표체도 대중의 집단 의사를 대변하지 못하는 총체적인 헤게모니 위기”를 반영하는데, 이 위기가 해소되는 경로는 두 가지다. 하나가 정당과 달리 ‘대표성’의 제약이 크지 않은 억압적 국가기구가 전면에 부상하는 방식이라면, 다른 하나는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등장해 위기를 수습하는 ‘케사리즘’이다. 그러나 신 교수는 파시즘과 같은 ‘반동적 케사리즘’의 등장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이명박 정부의 통치 방식이 반동적 형태를 띠고 있긴 하지만, 한국 사회에는 1920~30년대 유럽에서와 같은 ‘아래로부터의 대중 동원’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본격 파시즘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낮다는 이유에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권력자원의 집중과 정치의 탈공공화로 요약되는 지난 1년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세계사적 보편으로부터 ‘경로이탈’하고 있음을 보여준 시기”라며 “치안국가의 등장은 신자유주의 국가의 일반적 특성이라기보다 짧게는 1987년 체제, 길게는 한국 민주주의의 사회적·제도적 취약성과 관련된 것인만큼, 한층 역사적이고 정교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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