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이메일 파문은 'MB식 법치' 현주소
'정치 사법엘리트'에게 국운 맡겨야 하나
[제언]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 막으려면, 아래로부터의 '국민투표' 도입해야
<오마이뉴스>
'사법의 정치화'와 '정치의 사법화'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울산지법 송승용 단독판사는 지난 2일 법원 내부 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촛불사건 배당과 영장에 대한 법원 상층부의 개입을 "사법부를 흔드는 손"이라고 불렀다. 시장을 배회하는 보이지 않는 손들이 사실상 잘 들여다보면 분명 실체가 있는 손이듯이, 사법부를 흔드는 손 또한 기어이 자신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드러내고 말았다.
우리 헌법 103조에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우리 역사에서 이 문구가 얼마나 허구적이었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 법은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지만,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법은 권력의 안녕을 위해 기능했다. 정치적인 의도에 따라 판결이 달라지는 "사법의 정치화"현상이 일상적으로 벌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를 계기로 사법부는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권력으로부터 조금씩 자율성을 획득하기 시작하면서 민감한 사회 이슈에 대해 적극적인 판결을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여전히 5.18 특별법사건과 교원노조사건, 각종 국가보안법 사건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판결을 내려왔지만, 영화검열 위헌결정, 동성동본금혼 위헌결정 등 소신 있는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늘어났다.
사법부가 어느 정도 '중립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 것처럼 보이자, 이번에는 "정치의 사법화" 경향이 나타났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사건에 대한 최종 판단이 헌법재판소에게 맡겨지고, 같은 해 행정수도이전 계획이 '관습법'까지 들고 나온 헌재에 의해 위헌판결이 내려지면서 사법부가 정치를 압도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보수세력만 사회적 갈등 해결을 사법부에 맡겼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촛불시위 와중에서도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자유선진당과 진보신당은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된 2건의 헌법소원을 제출하기도 했고, 민변에서는 9만 6,072명이라는 사상 최대의 청구인 명의로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국민의 의사보다 극소수 사법 엘리트의 판단이 더 큰 영향력을 갖는 민주주의의 한계 때문이다.
이처럼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주적인 과정으로 결정되어야 할 많은 정치적 사안들이 토론과 합의, 경쟁의 과정을 뛰어 넘어 점차 법복을 입은 사법 엘리트의 판결에 따라 희비가 갈리게 되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은 또 하나의 민주주의 위기 징후임이 분명했다. 더구나 국민으로부터 직접 선출된 대통령이 국민이 뽑지 않은 헌법재판소 판관들의 입에 따라 정치적 생명이 끝날 수도 있음을 과시한 것은 사법의 지배 아래 들어간 정치의 운명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번 이메일 사건이 단순한 해프닝이 될 수 없는 것은 이런 "정치의 사법화" 추세에 "사법의 정치화"가 다시 결합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의 사법화 현상은 '법에 의한 지배(rule of law)'를 근간으로 하는 헌정주의(constitutionalism)적 경향을 강화하는 것으로 법관의 '헌법해석'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실질적 법치주의를 의미한다. 한 나라의 민주적 내용을 헌법으로 응축시키고 이에 따라 모든 통치·정치 행위를 종속시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헌법해석권을 독점한 법관이 '정치적'인 판단을 내리게 된다는 것은 곧 법이 갈등의 중재수단이 아니라 저항에 대한 억압수단으로, 권력의 방패막이로 전락해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럴 경우, 공식적인 제도를 통해 중재되지 못한 저항은 아예 숨죽이거나, 아니면 더욱 폭발적인 방식으로 스스로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사법부, 과연 공정한 중재자였나?
그렇다면 지금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단지 판사 1~2명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발생한 것일까? 이번 이메일 파동이 일어나기 전에는 사법부가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사법부는 이전에도 국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이 문제는 판사들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월간중앙이 2007년 3월 9일부터 13일까지 최근 5년 이내에 개업한 판사 출신 변호사 5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메일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직 판사들의 53.7퍼센트는 '불성실한 재판 진행(22.2퍼센트)', '금품·향응 등 법조비리(19.4퍼센트)', '불공정한 재판진행(18.1퍼센트)', '사회적 약자 보호 미흡(11.1퍼센트)' 등의 이유로 국민이 사법부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3명 중 1명꼴로 판사 시절 재판담당 변호인과의 친소관계가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친 편이었다고 응답했고, 5명 중 1명꼴로 사회ㆍ경제 권력의 압력으로 재판에 영향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58.5퍼센트의 전직판사들은 판결에 영향을 미칠 만한 유혹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고, 80퍼센트가 여론이 재판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월간중앙, 2007.04.24).
위 조사결과는 사법 권력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할 공정성이 판사 개인의 성향에 따라 크게 흔들릴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게다가 헌법해석을 독점하고 있는 헌법재판소의 인적구성이 서로 비슷한 대학을 나와 비슷한 경험을 거쳐 비슷한 경제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보수적 남성들로만 채워져 있는 현실은 매우 다양하고 첨예한 사회적 갈등이 이들에 의해 공정하게 중재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사법 개혁, 어디로 가야 할까?
이번 이메일 파문이 사법부가 가진 문제점의 단면을 드러낸 것뿐이라면, 이 사건을 기회삼아 사법개혁의 문제를 다시 한 번 공론화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방향이 실질적 법치주의와 반대되는 형식적 법치주의, 즉 헌법재판소의 법률해석을 금지하고 헌법충성보다 정치를 더욱 강조하는 의회주의를 향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우리의 경우처럼 국회가 국민의 통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뿐더러 정당정치의 미성숙으로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가 끊임없이 노출되고 있는 국가에서는 오히려 권력이 최소한의 헌법적 안정장치를 무시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이것 역시 우리 역사에서 지겹도록 경험해온 바다. 지난 시기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허울뿐인 헌법을 다시 유일한 근본 규범으로 올려놓는 것이었다. 대단히 자의적인 권력행사를 부족한 헌법 규범으로나마 통제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소수의 사법엘리트들에게 맡기거나, 아니면 도저히 신뢰하기 어려운 의회권력에게 맡기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가? 우리가 새로운 사법체계를 고민한다면 형식적 법치주의와 실질적 법치주의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데 머물기보다 사법체계의 근본적 작동원리를 바꿔야 한다. 그것은 헌법을 제정할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인 국민의 주권을 사법체계 안으로도 투입하는 방향이다.
즉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는 사법 엘리트주의를 창출하는 헌정주의와,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고착화 하는 의회주의의 한계를 모두 벗어날 수 있는 민주적인 사법개혁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사법은 정치화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사회화되고, 보다 국민(people)화 되어야 한다.
민주적 사법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국민의사가 국가운영과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소수의 사법엘리트에게 국가차원의 모든 문제를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사법체제 전반에 걸친 국민의 민주적 통제를 구현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우선이다. 또한 재판과정뿐만 아니라 사법부 전반의 구성과 운영에도 국민의 목소리가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의제에 대한 최종적 결정권을 갖는 헌재의 권한을 국민에게 되돌려줄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국가차원의 중대한 문제는 헌재가 아니라 국민에게 직접적인 의사를 묻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영향을 미치며, 결정 결과에 따라 중대한 변화가 예상되는 사안을 소수의 사법 전문가에만 맡겨 놓는다는 것은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는 선택이다. 이것의 구체적 형태는 국민 스스로도 제안 가능한 아래로부터의 국민투표(referendum)를 도입하는 것이다.
국민투표와 같은 직접민주적 제도들이 단순한 선호만을 수렴하는 한계가 있다면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일종의 대규모 국민배심원을 구성하여 심의(deliberation)를 보장하는 것으로 대신해볼 수 있다. 대표자가 아니라 국민의 '대리자'들이 사법 엘리트 대신 심도 깊은 논의를 통해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것이다. 물론 배심원의 규모와 선출방식은 국민 전체를 대표할 수 있을 정도로 조정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배심원에서의 결정방식은 일반 배심제처럼 만장일치를 유도하지 못하더라도, 2/3나 4/5의 초다수(super majority)를 기준으로 함으로써 심도 깊은 토론을 통해 최대한 합의를 도출하도록 유도해볼 수 있다. 만일 충분한 토론을 통해서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면 국민투표에 부쳐 국민 모두가 함께 결정하는 대안을 마련해 놓을 수도 있다.
사법적 결정에 국민이 참여해야 하는 것은 헌법재판만이 아니다. 미국 등 여러 선진국에서는 이미 주권자인 국민을 재판에 참여시켜 일반상식과 경험 및 지식을 기초로 피고인의 유ㆍ무죄를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도 2008년 1월 1일부터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이름으로 배심제를 부분 도입하고 있는데, 만 20세 이상 국민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들이 재판에 참여해 유ㆍ무죄 평결을 내리고 적정 형량의 범위를 산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국민참여재판제는 아직까지 형사사건에 제한된 재판에서만 이뤄지고 있으며, 피의자가 공소 사실을 자백하여 비교적 유죄평결을 내리기 쉬운 사건에 적용되고 있다. 또한 배심원의 유ㆍ무죄 평결을 판사가 무조건 따라야 하는 미국 배심제와 달리 국민참여재판에서는 판사가 배심원의 평결을 참고만 할 뿐 독자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제도가 자리 잡게 된다면 판사는 양형만 하고 실질적인 결정권을 배심원들에게 부여하는 방안으로의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사법부의 개혁과제는 판결방식으로만 제한되지 않는다. 지난 2005년 9월 '민주적 사법개혁실현을 위한 국민연대'는 배심제 도입을 비롯해 다양한 개혁과제를 담은 <민주적 사법개혁 국민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법관의 기수별 서열 승진제도 폐지, 법원행정처의 기능 축소, 법관 인사에 대한 국민참여 확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강화, 법조인에 대한 징계제도 강화, 군 사법개혁, 법관수ㆍ변호사수 대폭 확대 등 진취적인 제안들이 들어 있다. 이런 다양한 논의와 대안들은 이번 이메일 파문을 계기 삼아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사법부를 민주화하는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법치의 대상은 바로 정권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지난해 촛불시위 이후 '법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한마디로 정부에 반대하는 행동은 법의 테두리에서만 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법치주의의 원래 개념은 권력자가 자기 마음대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준칙, 곧 법에 따라 지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법치'의 적용대상은 권력에 저항하는 이들이 아니라 권력 그 자신이며, 법치는 통치자가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오직 법에 근거해 통치하도록 일정한 제약을 가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이메일 파문은 권력자가 법을 자신의 반대자를 억누르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법치를 통치수단이나 처벌과 억압의 용도로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이라는 것이 민주주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사회적 갈등을 서로가 인정할 수 있는 공정한 룰로 중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때, 사법권을 이의제기할 수 없는 '권위'로만 해석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는다.
법의 역할은 국민의 의사가 민주적으로 개진되고 결정과정에 가장 큰 힘으로 작용하도록 보장하는 것이어야 하고, 이런 의미에서 민주적 법치의 구현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함께 가야할 과제다.
물론 이명박 정부 하에서 정치화된 사법부가 스스로 이런 개혁을 이뤄낼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명박 이후'를 위해서라도 현실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 놓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게 없다면 이메일 파문에 대한 비판 또한, 한 순간 짜증의 배설에 지나지 않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밀 이메일' 보내놓고, 압력 느끼지 말라?
법관 양심 팔고 사법부 독립 무너뜨린 대법관
[주장] 신영철 대법관은 사퇴하고 철저한 조사받아야
재판의 공정성은 사법부 독립의 존재 기반이다. 따라서 이것이 훼손된다면 사법부의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 민주주의 헌법에 '법관의 독립'을 명시한 것은(103조) 재판의 공정성을 위함이다. 그런데 최근 '법관의 독립'을 무너뜨리는 일들이 다른 기관도 아닌 사법부에 의해 자행되었다.
사실 재판의 공정성은 굳이 근·현대의 민주주의를 거론할 필요도 없이 고대 전제국가 때부터 강조된 철칙이었다. 우리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에서 공정치 않은 재판이 숱하게 벌어진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점에서 현대의 독재정권은 고대 전제국가보다 저열한 통치체제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그 저열했던 체제로 회귀하고자 하는 징후들이 도처에서 준동하고 있다.
◀신영철 대법관.
한편 국민의 인권 확립은 사법부의 존재 목표이다. 재판의 공정성도 결국 국민의 인권을 확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최근 촛불시민의 인권은 철저히 소외되었다. 사법부는 국민 인권의 최후 보루라 하지 않는가. 우리의 충격과 불안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은 이번 사건이 재판의 공정성을 훼손함으로써 국민의 인권을 말살했기 때문이다.
신영철 대법관은 재판의 공정성을 무너뜨리는 일을 부단히 시도한 사람이다. 재판 행위는 당연히 배당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배당이 불공정하면 판결도 불공해진다. 그는 서울중앙지법 법원장 재직 때인 작년 6월 19일~7월 11일, 8건의 촛불사건을 보수성향의 부장판사에게 무더기로 배당했다. 이는 촛불 피고인에 대한 신속한 재판 진행과 무거운 형량을 노린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신속한 재판과 무거운 형량 주문,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실제로 무더기로 배당된 촛불재판은 신속하게 진행되었고 촛불피고들이 받은 형량은 무거웠다. 민감한 시국사건을 무더기로 한 판사에게 전담시키는 것은 독재정권 시절의 관행이었다. 하지만 신 대법관은 재판 배당에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의 '법관 마인드'는 독재시절의 것일 터이다.
보도되었듯이 무더기 배당은 양식 있는 판사들의 반발을 초래했다. 지난해 7월 14일 판사 13명이 모임을 열고 항의하자 그는 마지못해 재판 배당 예규에 따라 기계식 무작위 방법으로 환원했다. 그리고 그는 판사들에게 간담회를 소집하는 첫 번째 메일을 보내는데, 간담회의 의제가 분명치 않았고 모임 자체까지 비밀로 해야 한다고 단속했다.
한편 배당 방식을 환원하자 새로운 촛불사건인 광우병대책회의 안진걸 팀장 재판은 형사7단독 박재영 판사에게 주어지게 된다. 박 판사는 피고인 측이 낸 야간집회 금지조항에 대한 위헌 법률심판 재정신청을 받아들이고 피고를 보석으로 석방했다.
박 판사의 조치는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우리 헌법 107조 1항에는,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는, 법원은 헌법재판소에 제청하여 그 심판에 의하여 재판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차후 다른 판사들이 촛불재판을 헌법재판소 심판 때까지 연기한 것 역시 의당 헌법에 따른 조치였을 따름이다.
여기서 잠시 박재영 판사가 위헌제청을 한 다음날 신영철 서울중앙지법원장(당시)이 판사들에게 보낸 메일을 읽어 보자.
대법원장님 말씀을 그대로 전할 능력도 없고, 적절치도 않지만 대체로 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들었습니다.... 나머지 사건은 현행법에 의하여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메시지였습니다. 구속사건에 대하여 더 자세한 말씀은 계셨지만 생략하겠습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으시면 제가 잘못 전달한 것으로 해주십시오.(2008.10.14.메일)
이 메일은 읽는 사람을 아주 복잡하게 만든다. 먼저 그는 "대법원장 말을 전할 능력도 없고 적절치도 않"다고 하면서도 대법원장의 말(지침)을 분명히 전하고 있다. 우선 이런 발언은 법관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소신도 없는 기회주의적 말장난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그는 위헌심판 제청 중인 사건을 현행법에 따라 재판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행법에 따라'란 곧 유죄판결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것은 재판 형량에 대한 간섭이 된다. 또한 이것은 '위헌제청 중인 사건은 헌법재판소 심판에 의해 재판해야 한다'는 헌법 107조에 위배된다. 법원장에게는 판사들의 인사평가 권한이 있으며 대법원장에게는 판사들의 인사권이 있다. 따라서 그의 메일은 재판에 간섭하고 부당한 압력까지 행사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그럼에도 신 대법관은 메일이 판사들에 대한 압력이 아니라고 말한다. 한 술 더 떠 그는 "이것을 압력으로 받아들이는 판사가 있다면 그는 판사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 메일이 얼마나 큰 문제가 있는지를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는 메일 마지막에, "오해의 소지가 있으시면 제가 잘못 전달한 것으로 해주십시오"라고 함으로써 자기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았지 않은가? 이로 볼 때 그의 행위는 확신범적인 성격을 띤다. 이래 놓고도 그는 다른 판사들의 자격을 운운한 것이다.
정작 더 심각한 문제는 메일 문구대로 이런 지침이 정말 대법원장의 것일 수도 있다는 데에 있다. 물론 그가 대법원장을 호가호위하여 판사들을 다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메일 문구는 명백히 대법원장의 지침임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이번 사건엔 사법부의 근간을 뒤흔드는 폭발성이 있다. 만약 서울중앙지법원장과 대법원장이 담합하여 재판을 정치적으로 조종할 수밖에 없었다면 이것은 사법부의 독립을 무너뜨리면서 국민의 인권을 말살한 처사로서, 말 그대로 '사법 공작'이라고 해야 한다. '사법부를 흔드는 보이지 않는 손'이 과연 있는 것일까?
신영철 대법관, 즉각 사퇴하고 조사 받아야
내년 2월이 되면 형사단독재판부의 큰 변동이 예상되기도 합니다. 모든 부담되는 사건을 후임자에게 넘겨주지 않고 처리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구속사건이든 불구속사건이든 통상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어떤가 하는 저의 소박한 생각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내외부(대법원과 헌재 포함)의 여러 사람들의 거의 일치된 의견이기도 합니다.(2008.11.6. 메일)
역시 이 메일에서도 그는 '자기의 소박한 생각'이라고 하면서 동시에 '내외부 즉 대법원과 헌재의 일치된 의견'이라고 암시하고 있다(차라리 이런 이상한 화법이 그의 복잡한 인격 때문이라면 그나마 다행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메일 문구대로 대법원과 헌재까지 재판에 의견을 개진한 것이라면 사태는 심각한 것이다. 12일 KBS 9시뉴스에서는 신 대법관이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을 만났다는 것을 법원 고위 관계자의 말을 통해 보도하기도 했다.
그는 촛불사건을 화급히 처리해야 한다는 모종의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그의 개인 소신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법원의 윗선 또는 외부의 주문 때문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그는 2월이 되면 자기가 서울중앙지법을 떠난다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대법관 승진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야간집회에 대한 위헌제청사건을 2009년 2월에 공개변론을 한 후 결정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변론하지 않고 연말 전에 끝내는 것을 강력히 희망한 바 있으나, 결정이 미뤄지게 되어 저 자신 실망을 많이 하였습니다... 통상적인 방법으로 종국하여 현행법에 따라 결론을 내주십사고 다시 한 번 당부 드립니다.(2008.11.24. 메일)
그는 비밀 메일을 통해 '통상적인 방법으로 종국(재판을 끝냄?)하여 현행법에 따라 결론을 내주십사 당부'했다. 이쯤 되면 재판 간섭과 압력 행사가 더할 수 없이 노골화된 것이다. 우리는 일개 법원장으로 하여금 이토록 조급하게 만들고 법관으로서 이성을 거의 상실하게 만든 힘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
촛불에 따라 갈라지는 대한민국 법관들의 궁달(窮達)
아무튼 그는 지난 2월 대법원장에 의해 대법관에 제청되었고 대통령의 임명을 받았다. 그는 2월 10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촛불재판 무더기 배당을 알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평상대로 기계식 배당으로 알고 있었을 뿐이라고 태연하게 말한 것이다.
"제가 법원장으로 사건에 관여하고 제 의견을 얘기해서 리더십이 발휘됐을까요? 전혀 그런 적이 없습니다. 법원장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누구한테 일을 맡기고 항상 잘해주기를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전화해서 뭘 어떻게 하라는 사람이 아닙니다."(신 대법관 국회 인사청문회 답변)
일단 이 발언으로 그는 국회에서 위증을 했다는 혐의를 받게 되었다. 그는 판사들에게 전화해서 간섭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일전에 한승수 총리는 '메일'은 곧 '편지'라고 하더니) 신영철 대법관은 '메일' 보내 놓고 '전화'하지 않았다고 증언한 것이다.
신 대법관은 즉각 사퇴하고 조사를 받아야 한다. 아울러 이번 사건은 철저히 조사한 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법원은 이번 사건의 자체 진상조사를 벌이기로 했다고 한다. 대법관과 대법원장을 법관들이 조사한다는 것이다. 누가 이런 조사 방식을 신뢰할 수 있겠는지? 최소한 국회나 재야 법조계가 참여하는 진상조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작년 9월 대한민국 사법부는 출범 60주년을 맞이했다. 그때 이용훈 대법원장은, "과거의 불행한 일들을 교훈 삼아 법관의 양심과 사법의 독립을 굳게 지켜나가겠습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법관의 양심과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려 한 법관들은 사퇴하여 '빈궁'해졌고 법관의 양심을 팔고 사법부의 독립을 무너뜨리려 한 법관은 대법관으로 '영달'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의 모든 배경에는 '촛불'이 있다. 촛불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판사의 궁달(窮達)이 결정난다면 법관으로서 좀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이명박 정권 '이메일 파동'이 잦은 이유
[取중眞담] 공식 명령을 개인적인 일로 치부하기 위한 '꼼수' 아닐까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이명박 정부는 왜 이메일로 소통할까?
신영철 대법관이 지난해 11월 촛불 사건을 재판하던 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압력을 가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지난 2월에는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이아무개 행정관이 경찰청 홍보담당관에게 "용산사태를 통해 촛불시위를 확산하려고 하는 반정부단체에 대응하기 위해 '군포연쇄살인사건'의 수사 내용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바란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나라를 뒤흔들 만한 엄청난 사건이 한 달 간격으로 이메일을 통해서 터졌다.
이게 단지 우연의 일치일까? 내가 볼 때는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우선 두 이메일 사건의 공통점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모두 큰 파문이 일 만한 사건이다. 그런데 그런 내용이라면 정권이나 정부 조직 차원에서 공식 문서나 회의를 통해서 전달하는 것이 정상이다.
이 행정관의 이메일 사건이 터졌을 때, 지난 2005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청와대에서 기록물 연구사로 일했던 조영삼 정보공개센터 이사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일개 행정관이 선임자인 비서관이나 수석비서관 등에게 보고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판단해 '연쇄살인사건 활용 방안'을 만들고 보낸 것을 믿기 어렵다고 의문을 표했다. 그는 "공식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고 업무 연락을 하기 위해 이메일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권은 기록을 대단히 중시했다. 모든 업무 연락과 지시, 회의가 문서로 정리됐다. 그래서 노 정권 때는 전략적 유연성 합의나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참여 등과 관련된 문건이 자주 공개되어 파문이 일었다. 일부 언론은 이런 노 정권을 가리켜 "문건 파동으로 날을 지새운다"고 비꼬았다. 아마 이명박 정권은 전 정권의 '문건 파동'을 교훈(?) 삼아 공식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이메일을 적극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민감한 사안을 기록한 공식 문서는 현재도 문제지만 나중에도 문제다. 가령 성향이 다른 정권이 집권하거나 정적이 대통령이 됐을 경우 공식 문서에서 전임자의 약점을 잡아낼 수 있다. 이메일을 통한 업무 지시는 이런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메일을 통한 지시나 업무 연락엔 또 다른 중요한 이점이 있다. 나중에 내용이 공개되더라도 개인적인 일로 치부해 버리면 그만이다.
연쇄살인 사건으로 용산 참사를 덮으라는 이메일을 보냈던 이 행정관에게 청와대는 '개인적인 사건'이라며 구두 경고 조치하는 데 그쳤다. 이 사건에 대해 야당과 언론이 집요하게 비판했지만 청와대는 '개인적인 일'이라며 피해갔다. 그리고 이 행정관은 사표를 내는 형식으로 이 사건을 마무리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촛불 판사들에게 이메일 압력을 가한 행동을 신영철 대법관의 개인적인 일로 치부해 그에게 적절한(?) 징계를 내리고, '도의적 책임' 운운하면서 신 대법관이 자진 사퇴하는 형식으로 물러나면 끝이다.
이아무개 행정관의 이메일 사건이 났을 때 조영삼 정보공개센터 이사는 "그 정도 내용의 홍보 방안을 개인적인 판단으로 보냈다는 것을 납득하기 힘들다"며 "최소한 부서 차원에서 논의를 거친 다음 그 결과에 따라 집행되는 것이 상식적인 업무처리 절차"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14일 신영철 대법관이 판사들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제목: 대법원장 업무보고
오늘 아침 대법원장님께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가 있어, 야간집회 위헌제청에 관한 말씀도 드렸습니다. 대법원장님 말씀을 그대로 전할 능력도 없고, 적절치도 않지만 대체로 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으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1. 위헌제청을 한 판사의 소신이나 독립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2. 사회적으로 소모적인 논쟁에 발을 들여놓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고, 법원이 일사분란한 기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나머지 사건은 현행법에 의하여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는 두가지 메시지였습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으시면 제가 잘못 전달한 것으로 해 주십시요.
신 대법관은 "대법원장님 말씀을 그대로 전할 능력도 없고, 적절치도 않지만 대체로 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으신 것으로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대법원장도 현행법에 따라 신속한 재판을 원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11월 6일 보낸 이메일에서는 "또 제가 알고 있는 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내외부(대법원과 헌재 포함)의 여러 사람들의 거의 일치된 의견이기도 합니다"라고 적었다.)
그러나 10월 14일 이메일 마지막에서 신 대법관은 이메일 마지막에 "오해의 소지가 있으시면 제가 잘못 전달한 것으로 해 주십시요"라고 적었다. 앞에서는 조직적 차원의 결정이라는 분위기를 물씬 풍기다가 맨 뒤에서는 '개인적 오해일 수도 있다'는 식으로 조직 전체 또는 상급자, 또는 지시자가 빠져나갈 구멍을 파놓았다.
이 행정관 이메일 사건이나 신 대법관 이메일 사건 모두 내용은 공식적·조직적 결정이지만 형식은 개인적으로 위장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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