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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경로잔치 기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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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07. 7. 13.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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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경로잔치, 기로연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007. 07. 13.
 
 

 

 

       
      

      

      

       

       조선시대에는 ‘기로소(耆老所)’라는 기구가 있었는데 일정자격을 갖춘 국가 
       원로들을 대접하기 위해 설치한 것입니다. 특히 정2품 이상의 문관(文官) 벼슬을
       지낸 사람 가운데 나이가 70살이 넘어야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기로소에
       들어온 노인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잔치를 벌였으며, 이를 '기로연(耆老宴)’
       이라고 했습니다. 기로연은 임금이 직접 잔치를 벌여 위로하는 것으로 ‘기사계첩
       경현당석연도’, 봉배귀사도(奉盃歸社圖)‘, ’기사사연(耆社私宴)‘을 통해 숙종
       때의 기로연을 살펴보면 정재(呈才:대궐 안의 잔치 때에 벌이던 춤과 노래)와
       음악을 베풀었습니다.

      

       기(耆)는 ‘나이가 많고 덕이 두텁다’는 뜻으로 일흔 살이 넘는 노인을 가리켰고,
       여든 살이 되는 것을 ‘노(老)’라고 했지요. 이로 미루어보면 70 살이 넘어야
       노인이 되는 것이고, 노인은 나이가 많을 뿐 아니라 덕이 두터운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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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666. 다문화, 다민족의 고구려,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2006/04/29)

    

       고구려 장수왕 때는 고구려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가지고 있었고, 최전성기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고구려 안에는 부여계, 한족(漢族), 낙랑과 대방의 유민,
       사라무렌 강 유역의 거란계, 라오허강 유역의 북방 민족들, 내몽골 지역 유목민,
       연해주 지역의 말갈계 등 다양한 계통의 사람들을 껴안는 국제성과 복합성을 지닌
       제국의 성격을 띠었다고 합니다.

 

       이 다채로운 민족 구성은 복합문화의 형성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고구려는
       강한 군사력으로 영토를 넓혔다는 특징보다는 다문화와 다민족을 껴안으면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는 데에 큰 장점이 있었다는 평가입니다. 그 정신은 어쩌면
       고구려 이후 수많은 외침을 받고, 한동안 식민지가 된 시절이 있었으면서도 분명한
       정체성을 잃지 않은 대한민국의 원동력이 된 것은 아닐까요?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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