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유명한 화가들은 대부분 술을 즐겼다고 합니다. 조선 최고의 화가 단원 김홍도는 술에 관한한 둘째가라면 섭섭해 할 정도였는데 ‘취화사(醉畵史)’란 호를 붙이고 살았습니다. 특히 친구 이인문이 그린 ‘송하담소도’에 천하의 단원이 글을 썼는데 ‘종남별업’이란 시 3ㆍ4행과 5ㆍ6행을 바꿔 써넣기도 했습니다. 유명한 ‘달마도’를 그린 김명국은 못 말리는 ‘주당’이었는데 호를 취옹(醉翁, 술 취한 늙은이)이라고 했을 정도로 그의 그림은 술냄새가 진동합니다.
권력자가 그림을 그리라고 강요하자 송곳으로 눈을 찔러버려 애꾸가 되어버린
최북은 결국 눈밭에서 술에 취해 얼어 죽었습니다. 탁족도를 그린 이경윤은
‘수하취면도’에서 술에 취한 채 바위에 기대 낮잠을 즐기는 선비를 그렸고, 김후신은
만취한 선비가 흐느적거리면서 ‘갈 지’자로 걷고 친구들이 부축하는 그림 ‘대쾌도’을
그렸습니다.
참고 : “손안의 박물관”, 이광표, 효형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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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29. 사팔뜨기 영의정도 그대로 그린 조선의 초상화 (2004/07/05)
조선시대의 초상화를 보신 적이 있나요? 어떤 초상화를 보아도 수염 하나하나 세밀히 그린 극사실화(極寫實畵)입니다. 어느 정도일까요? 정조 때 번암 채제공(蔡濟恭)의 초상화에는 한 나라의 영의정인데도 사팔뜨기와 살짝곰보인 것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그려 놓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초상화도 보면 검버섯이나 점 등을 전혀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초상화에 붙어있는 글들을 보면 한 사람의 삶의 정신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조선 사람들은 초상화에도 가식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정직하게 살고, 정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삶의 원칙으로 안 것이지요. 삶의 자취가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는 것이고, 이를 그대로 그리는 것이 초상화의 기본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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