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자는 “세종은 명나라에 지성으로 사대를 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세종이 정말 사대주의자일까요? 세종은 중국 황제가 죽자 복을 사흘만 입어야 한다는 신하들의 주장에도 군신의 의리를 들어 27일을 입었고, 말 3만 마리, 소 1만 마리를 보내라는 요구도 신하들은 반대 했지만 “조선은 예부터 예의의 나라라고 하여 정성껏 사대하였다.”라며, 수용합니다. 그렇게 보면 분명 사대주의자입니다.
하지만, 세종은 이를 통한 효과로 선진문물을 수입할 수 있었고, 안보를 튼튼히 할 수 있었으며, 명에 복속한 여진족을 정벌할 때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장 큰 효과는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명의 시비가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명은 훈민정음을 오랑캐 나라의 하찮은 글자라며 무시했을 수도 있지만, 세종의 지성사대에 속았을 것입다. 세종임금은 정말 뛰어난 전략가입니다.
(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685. 조선시대에 펴낸 의궤는 무슨 책일까요? (2006/05/18)
조선은 기록의 나라였습니다. 세계문화유산이 된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가 그를 증명합니다. 그런데 이에는 의궤(儀軌)들도 한 목을 합니다. 의궤는 조선시대에는 나라의 큰 행사가 있으면 그 내용을 자세히 기록해서 책으로 펴낸 것입니다. 큰일을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정성을 다하도록 하고, 후세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는 책일 것입니다.
임금이나 왕세자가 결혼할 때 임시로 설치한 가례도감에서 가례 절차를 기록한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 임금과 왕비의 국장을 치른 내용을 적은 '국장도감의궤(國葬都監儀軌)', 임금이 직접 농사짓는 친경의식의 절차 및 소요 물품 등에 대한 '친경의궤(親耕儀軌)' 따위가 있습니다. 또 ‘화성엉역의궤(華城城役儀軌)와 '사직서의궤(社稷署儀軌)', '보인의궤(寶印儀軌)', '친잠의궤(親蠶儀軌)', '진찬의궤 (進饌儀軌)' 등도 의궤의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