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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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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07. 10. 19.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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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의 위치가 잘못되었다고 한 무학대사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007. 10. 20.
 
 

 

 

       

       조선왕조가 한양을 서울로 하고 궁궐을 지을 때 당대 풍수의 대가이며 불교계 왕사인
       무학대사와 유학의 거목인 정도전 사이에 논쟁이 있었습니다. 무학대사는 “건물의 방위를
       정함에 인왕산(서쪽 위치)을 주산(후광)으로 하여 낙산을 바라보는 형상이 국운이 장고할
       것”이라고 하고, 정도전은 “일국의 장래를 어찌 미심쩍게 풍수에만 맡길 수 있겠는가?
       임금이 백성을 잘 다스리려면 남쪽을 향하고 북쪽을 등져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정도전의 주장대로 북악산(청와대 뒤)을 주산으로 하여 남산을 바라보도록 경복궁이
       지어졌습니다. 무학대사는 정도전의 주장대로 궁궐이 지어지자 북악산의 산세가 갈라지고
       찢어지는 가파른 형상이라 200년 뒤 반드시 이 나라에 후환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며,
       왕사의 직분을 버리고 산사로 들어가 잠적해 버렸다고 합니다. 조선 건국 200년 뒤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것이 예언대로 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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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729. 세종임금의 두 번째 며느리는 동성애자였다.  (2006/07/04
)

    

      조선시대에도 동성애자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에 전합니다. 세종임금이 말합니다.
       “내가 늘 듣건대 시녀와 종비들이 사사로이 서로 좋아해 같이 자고, 자리를 같이한다고
       하므로 궁중에 금지령을 엄하게 내렸다.” 그 뒤 그런 풍습이 진정되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세종의 맏아들인 문종의 둘째 부인 봉씨가 동성연애를 하다가 들킨 것입니다.
       세종이 직접 세자빈 봉씨를 불러 사실을 물으니 상대인 여종 소쌍과 함께 동성애를 한
       사실을 시인했습니다. 이 봉씨는 임신했다고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 시녀들이 변소에서
       일보는 것을 엿보고, 술을 즐겨 큰 그릇으로 연거푸 마셔 몹시 취하곤 하는 사고뭉치였다고
       합니다. 결국, 세자빈 봉씨는 쫓겨난 뒤 친정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그 친정아버지도
       자결했습니다. 동성애자는 예나 지금이나 인정받기 어려웠나 봅니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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