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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소방서와 소방관 이야기

마감된 자료-------/플래닛에있던글

by 자청비 2007. 10. 2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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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소방서와 소방관 이야기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007. 10. 26.
 
 

 

 

       

       조선시대에도 소방서와 소방관이 있었습니다. 먼저 조선 전기에 한양을 건설하고 나서
       화재가 잦자 집 사이에 방화장(防火墻, 불을 막는 담)을 쌓고, 곳곳에 우물을 팠으며,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개량했고, 1426년(세종 8) 일종의 소방서인 금화도감(禁火都監)을
       설치하였습니다. 이 금화도감은 수성금화도감(修城禁火都監)이되었다가 1481년(성종 12)
       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로 고쳤지요.

      
       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에는 멸화군(滅火軍)이란 상설소방대원이 있었는데 불을 없애는
       군사라는 말이 재미있습니다. 정원은 50명이었고 24시간 대기하고 있다가 불이 나면
       관원의 인솔하에 즉시 출동해서 불을 끄는 소방관입니다.

 

       조선시대엔 실수로 자기 집을 태운 사람은 장 40대, 관가나 다른 사람의 집을 태운

       사람은 장 50대, 불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 경우는 장 100대의 형을 받았지요.

       일부러 집을 태우면 처벌이 더 무거웠음은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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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605. 창덕궁 인정전 앞의 드므와 부간주 이야기  (2006/02/26
)

    

      조선 궁궐 중 하나인 창덕궁의 중심건물은 인정전인데 순조 4년(1804)에 다시 지은

       것입니다. 그 인정전 앞에는 ‘드므’와 ‘부간주’라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으로 읽는

       궁궐이야기’(윤돌, 이비락)에서는 ‘드므’와 ‘부간주’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부간주’는

       액운을 막아준다 하여 상징적으로 놓아둔 것인데 동지에는 팥죽을 끓여 먹기도 한

       것입니다. 또 ‘드므’는 화재를 막기 위해 물을 담아 상징적으로 놓아둔 것인데 화마가

       왔다가 드므에 비친 자신을 모습을 보고 놀라서 도망간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사람들은 대개 문화유적을 볼 때 그 주된 유적이나 유물만 봅니다. 하지만, 이런 주변의

       물건들도 살펴보면 훨씬 재미도 있고, 그 유적과 유물의 의미를 더 깊이 알 수가

       있습니다. 현재 창덕궁의 관람은 안내자와 정해진 길에 따라 안내를 받아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틈틈이 이런 것들도 살펴보면 좋을 것입니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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