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조선을 대표하는 북학파 실학자 박제가는 중국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 조선 사회의 문제점과 대책을 정리한 ≪북학의(北學議)≫를 써 조선을 개혁하려 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는 다음의 글들에서 보는 것처럼 중국은 무조건 최고로 생각하고, 대신 조선은 형편없다고 비판한 사람입니다.
“중국의 자기는 정교하지 않은 것이 없다. 아무리 외진 마을의 쓰러져가는 집이라도 모두 금벽으로 그림을 넣은 병, 술병, 물동이, 주발 등의 자기를 가지고 있다. ~ 우리나라의 자기는 지극히 거칠다. 주둥이가 비틀어지고 추하여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을 지경이다. 우리나라에는 법도가 없는 상태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의 의술은 믿을 수 없다. 연경에서 약재를 수입해오지만 진품이 아니라는 것이 정말 걱정이다.” 박제가가 개혁을 위해 애쓴 인물이지만 이런 사대사상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 한계입니다.
참고 :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신병주, 책과 함께

============================================================================
(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299. ‘통지게타령’을 아시나요? (2005/04/24)
춘천을 중심으로 하는 영서지방은 바다가 멀어 해산물이 귀했습니다. 그래서 1900년대 전후 영서지역에서 수확되는 깨, 콩, 고추 등을 통지게에 지고 험준한 고개를 넘어 동해안 지방에 가서 팔고, 다시 그곳에서 해산물을 사 영서지방에 와 장사를 하는 ‘통지게선길꾼’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질꾼을 모집하여 풍물굿으로 한바탕 논 다음 장삿길에 올랐습니다. 이들은 대개 가난한 홀아비 또는 노총각들로 장사할 때에는 다리 밑이나 성황당, 헛간 등을 이용하였다고 합니다.
이 가난한 서민들인 선길꾼들이 장삿길 중에 해학과 은어, 노래가락으로 고달픈 여정을 달랜 것이 바로 ‘통지게타령’입니다. 장사가 잘 되면 홀아비는 집을 마련하고 총각들은 장가도 가서 보금자리를 만든다는 내용의 타령입니다. 조선말기 서민들의 애환이 드러나는 노래지요. (참고:강원도 전통 민속예술 춘천시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