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때 이후 측우기로 비가 온 양을 재고 강과 개천의 수량을 재는 등 농업기상학이 발달했는데, 이는 농사가 나라의 근본이었기 때문에 세종임금이 힘을 쓴 까닭입니다. 농사에는 비와 함께 바람도 종요로운 변수였기에 조선시대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재고자 풍기대(風旗臺)를 만들고 그 위에 풍기(風旗)를 세웠습니다. 현재 전해지는 유물로는 보물 제847호 경복궁풍기대, 보물 제846호 창경궁풍기대가 있습니다. 창경궁풍기대는 아랫단의 높이가 91센티미터, 위 8각 기둥의 높이가 135센티미터, 전체 높이는 228센티미터입니다.
풍기대에 관해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대궐 가운데에는 풍기가 있는데 이는 곧 예부터 바람을 점치려는 뜻으로서, 창덕궁의 통제문 안과 경희궁의 서화문 안에 돌을 놓고, 거기에 풍기죽(風旗竹)을 꽂아 높았다"라고 기록되어있지요. 또 <동궐도(東闕圖)>에 화강석 풍기대 그림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