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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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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08. 7. 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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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 때부터 문신하는 풍속 있었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008. 07. 01.
 
 

 

  

     
      위지동이전에 보면 삼한 시대 때부터 우리 겨레는 문신했음을 알 수 있는데 당시는
      용이나 물짐승으로부터 해를 입지 않으려고 문신을 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에는
      도둑 오른 팔뚝에 도둑질 '도(盜)'자 새기는 형벌수단으로 널리 쓰였고, 도망쳤다
      잡혀온 노비의 팔뚝이나 얼굴에 문신을 해서 도망치지 못하게 했지요.

 

      몇 년 전 방영된 드라마 ‘장길산’에는 장길산이 연인 묘옥의 가슴에 문신을 새기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 뒤 묘옥은 다른 사람의 여인이 되었으면서도 장길산을 잊지
      못하지요. 조선 후기 학자 이규경의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백성이 많이 사는 곳에는 방탕한 사람들은
      뜻을 정하여 바늘로 서로 팔뚝을 찌른 다음 먹칠을 하여 색을 넣는다. 그러면 멍든
      것처럼 푸른데 그것을 연비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연비로 평생 잊지 말자고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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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752. 조선에 맞는 농사책 농사직설  2006/07/27

          

      조선 세종 때의 문신 정초는 농업의 나라인 조선의 농민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배고픔에
      허덕이는 모습을 보고, 뭔가 백성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생각으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물론 그때에도 중국에서 전해진 ‘농상집요(農桑輯要)’가 있었지만, 그것은 중국
      화북지방을 배경으로 쓴 책으로 조선의 땅과 기후에는 맞을 수가 없어서 도움이 안
      되었습니다.

 

      정초는 이를 위해 각 고을의 사또에게 가장 농사를 잘 짓는 농부를 찾고, 이들의
      농사방법을 자세히 보고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곤 직접 함길도부터 전라도 끝까지 그
      농민들을 찾아다니며,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냥 단순히 머리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농사의 전문가에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게 연구하기 1년 뒤 정초는
      드디어 ‘농사직설(農事直設)’을 써냈습니다. 이렇게 정초는 백성을 위한 벼슬아치의
      본보기를 보여준 사람입니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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