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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일산을 쓰지않고 농부에게 묻다

마감된 자료-------/플래닛에있던글

by 자청비 2008. 7. 2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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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임금 일산을 쓰지 않고 농부에게 묻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008. 07. 22.
 
 

 

 

  

     
      세종실록의 기록을 보면 세종임금은 들판을 지나갈 때면 일산(日傘)과 부채를 쓰지
      않고 벼가 잘되지 않은 곳에선 반드시 말을 멈추어 농부에게 까닭을 물었으며,
      마음이 아파 점심을 들지 않곤 했습니다. 또 공법이라는 세제개혁을 시행하기에
      앞서 직접 경기도 장단현 들판을 답사하기도 했지요.

 

      또 세종임금은 “병든 사람은 한증소(汗蒸所, 지금의 사우나 비슷한 곳)에 와서
      땀을 내면 병이 나을 것이라 했지만 죽은 사람이 있다.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널리 물어보아 이익이 없으면 없애고, 이로움이 있다면 잘 아는 의원을
      보내어 매일 살피도록 하되 환자의 병 증세를 진단하여 땀낼 병이면 땀을 내게
      하고, 병이 심하고 약한 사람은 그만두게 하라.”라고 명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세종임금은 백성을 진심으로 섬기는 자세를 보였으며, 어려움을 호소하며
      바로 처리해준 성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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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262. 일본인을 두렵게 한 이상재 선생의 소나무 2005/03/18

          

      소나무는 우리 겨레를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조선시대엔 소나무집에서 태어나서
      소나무와 함께 살다가 죽어서는 소나무 관에 들어가는 삶이었습니다. 이 우리의
      소나무를 일본인들이 먼저 알린 탓에 세계에 '일본소나무(Japanese red pine)'로
      알려졌습니다. 또 일본인들은 척박한 땅에 자라는 소나무를 보고, 한국의 운이
      다했다는 억지 논리를 폈는데, 이는 아무 땅에서나 잘 자라는 소나무의 질긴
      생명력을 모르는 소치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이상재선생은 일본의 거물정치인이 집을 찾아왔을 때, 뒷산 아름드리
      소나무 아래에 돗자리를 편 뒤 '우리 응접실'에 앉을 것을 권했다고 합니다.
      오자키는 일본으로 돌아가 “조선에 가서 무서운 영감을 만났다. 그는 세속적인
      인간이 아니라 몇 백 년 된 소나무와 한 몸인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일본인들의 망언이 극에 달한 지금 이상재 선생의 기개가 그립습니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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