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에서 조문객들은 하얀 국화를 바칩니다. 장례식 때 하얀 국화를 쓰는 까닭은 국화가 죽은 혼을 기리는 뜻이 있어서 그렇다고도 하고, 하얀 국화의 말뜻이 돌아가신 분을 사랑한다는 뜻이 들어 있어서 그렇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구석기 시대 사람들도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지내면서 국화꽃을 뿌렸다고 합니다.
충청북도 청원군 두루봉에는 구석기 시대 동굴인 ‘홍수굴’이 있습니다. 그 홍수굴을 발굴할 때 그곳에는 무덤이 있었고 그 무덤에는 다섯 살배기 어린 아이의 유골이 있었답니다. 그리고 그 유골 위에는 고운 흙이 뿌려져 있었는데 그 흙 속에는 국화꽃가루가 발견되었지요. 고고학자들은 이를 두고 홍수굴 구석기 시대 사람들도 죽은 사람을 장례 지낼 때 국화꽃을 뿌리는 관습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한반도에 살았던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나 이 시대의 사람들의 정서가 닮은 데가 있었을까요?
오늘은 열여섯 번째 절기인 추분(秋分)입니다. 추분점은 해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점으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습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것은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는 균형의 세계입니다. 지나침과 모자람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가운데에 덕(德)이 존재한다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평상(平常)이라는 뜻의 중용을 다시 한 번 새길 필요가 있겠습니다.
또 추분의 들녘에 서면 벼가 익어가는데 그 냄새를 향(香)이라고 합니다. 사람도 내면에 양식이 익어갈 때 향이 나겠지요. 하지만, 들판의 익어가는 수수와 조, 벼들은 강렬한 햇볕, 천둥과 폭우의 나날을 견뎌 저마다 겸손의 고개를 숙입니다. 이렇게 추분에는 중용과 겸손을 생각하게 하는 아름다운 때입니다. 추분과 함께 가을을 맞으며, 스스로 아름다움을 내 맘속에 꼭꼭 채워나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