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창제에 대해 어떤 이는 단군 때 만든 글자인 ‘가림토문자’를 세종이 표절했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이는 세종 당시의 중 신미대사가 창제했다는 주장도 펼칩니다. 그러니 일본 엉터리 학자들은 훈민정음은 일본이 만든 ‘신대문자’를 표절한 것이라고 우기기까지 합니다. 그런 얘기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요?
‘가림토문자’는 단군조선이 만든 글자라는 근거를 ‘환단고기’에서 들고 있지만 아직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논쟁에서 벗 어나지 못했고, 또 설령 환단고기가 진서라 하더라도 가림토문자가 실제로 존재했다면 기와에 새겨진 글자라든가 하는 물리적 증거가 나와야 하는데 아직 그런 것이 없어서 확실하게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세종이 뛰어난 학문적 지식으로 당시 존재했던 글자들을 모두 섭렵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 글자들을 뛰어넘는 과학적 창제를 했던 것으로 보아야 하기에 표절이라고 말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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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603. 조선시대 여인의 필수품, 경대 2006/02/24
경대는 조선시대 여인들이 화장하거나 머리를 빗을 때 쓰는 거울을 세우는 대(臺)입니다. 각종 화장품 및 빗, 비녀, 족집게, 장신구를 비롯하여 각종 화장도구와 손수건, 실 등을 담아두는 저장 용구이자 화장할 때 사용하는 화장구이지요.
보통 경대는 아래에 여닫이문이 있고, 문을 열면 서랍이 서너 개 있는 작은 직육면체로, 뒤에는 거울이 달려있어 뚜껑을 열어젓혀 비스듬히 세워 사용한 후 거울을 뒤집어 넣으면 작은 상자가 되는 구조입니다. 경대의 재질은 주로 느티나무와 먹감나무를 많이 사용하였으며, 나무에 생칠을 하여 나무결을 살린 것, 홍칠을 한 것, 나전무늬 놓은 것 따위가 있습니다. 무늬는 동그라미 안에 수(壽)라는 글자를 넣은 것, 당초 무늬, 수복 글자를 새긴 것, 쌍학 그림 따위를 즐겨 썼습니다. 조선시대 여인뿐 아니라 상투를 튼 남자들도 긴 머리를 다듬기 위해 경대를 쓰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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