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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흠경각은 백성사랑을 늘 새기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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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08. 10. 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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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흠경각은 백성사랑을 늘 새기던 집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008. 10. 08.
 
 

 

 

      동아시아 농업국가에서 천체현상을 관찰하여 백성에게 때를 알려주는 일 곧,
      ‘관상수시(觀象授時)’는 임금의 가장 중요한 의무와 권리의 하나였습니다. 이에
      따라 세종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중재자로서, 하늘의 시간을 땅으로 가져와
      백성에게 알려주려고 천문을 관측하고, 해시계와 물시계, 역서(曆書)를 만들어
      반포하였지요.

 

      특히 세종은 강녕전 서쪽에 흠경각을 짓고, 그 안에 시각과 사계절을 나타내는
      옥루기륜(玉漏機輪)을 설치했습니다. 흠경각이란 말은 바로 이 ‘관상수시’를
      실천하는 집이란 뜻입니다. 세종은 흠경각을 편전인 천추전 가까이 짓고, 수시로
      드나들며, 천체의 운행을 관찰하여 농사지을 때를 알아 백성에게 알려주고, 하늘의
      차고 비는 이치를 깨달아 왕도정치의 본보기로 삼았습니다. 또 세종은 흠경각루에
      갖추어놓은 춘하추동의 풍경과 7달의 농사짓는 모습을 보며 백성 사랑과 농사의
      중요성을 늘 되새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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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824. ‘훈민정음’이 ‘한글’로 바뀐 사연  2006/10/10

          

      한글은 세종임금이 28자를 반포할 당시 훈민정음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훈민정음’이 왜 ‘한글’로 불리게 되었을까요? 훈민정음은 반포 이후 언문(諺文),
      언서(諺書), 반절, 암클, 아랫글이라고도 불렀으며, 한편에서는 가갸글, 국서,
      국문, 조선글 등의 이름으로 불리면서 근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1913년
      주시경 선생께서 언문이라는 이름은 ‘상말을 적는 상스러운 글자’라는 뜻이 담긴
      사대주의에서 나온 이름이라며, ‘한글’이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또 조선어학회에서 훈민정음 반포 8회갑이 되던 병인년, 음력 9월 29일을 반포
      기념일로 정하여 처음에는 ‘가갸날’이라고 부르다가 1928년에 ‘한글날’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면서부터 ‘한글’이 보편적으로 쓰였습니다. ‘한글’이라는 이름의
      뜻은 ‘한나라의 글’, ‘큰글’, ‘세상에서 으뜸가는 글’등으로 풀이됩니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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