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2월 12일 새로 발굴된 450여 점의 유물들 중 부여박물관 사람들 넋을 잃게 한 것은 1,500여 년 땅속에 묻혀있다가 햇빛을 본 백제금동대향로였습니다. 이 대향로는 중국 박산향로와 기본 형태는 비슷하지만 백제인의 생각·기술· 창의력이 합쳐진 다른 나라에는 없는 전혀 새로운 작품이지요.
대향로는 맨 위의 봉황과 용 받침대까지 모두 네 부분으로 구성됐으며, 신선계, 인간계, 저승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뚜껑 꼭대기에는 봉황이 목과 부리로 여의주를 품고 날개를 편 채 힘있게 서 있으며, 몸체는 활짝 피어난 연꽃을 닮았고, 받침대는 그 연꽃 밑부분을 입으로 문 채 하늘로 치솟듯 떠받는 한 마리의 용이 되었습니다. 봉황 앞 가슴과 악사상 앞뒤에는 5개의 구멍으로 향 연기가 자연스럽게 피어오르는 정교함과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갖춰 동아시아 고대 금속 공예의 최고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 이 백제금동대향로는 지금 부여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시간을 내서 보러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백제금동대향로 관련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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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666. 다문화, 다민족의 고구려,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2006/04/29
고구려 장수왕 때는 고구려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가지고 있었고, 최전성기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고구려 안에는 부여계, 한족(漢族), 낙랑과 대방의 유민, 사라무렌 강 유역의 거란계, 라오허강 유역의 북방 민족들, 내몽골 지역 유목민, 연해주 지역의 말갈계 등 다양한 계통의 사람들을 껴안는 국제성과 복합성을 지닌 제국의 성격을 띠었다고 합니다.
이 다채로운 민족 구성은 복합문화의 형성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고구려는 강한 군사력으로 영토를 넓혔다는 특징보다는 다문화와 다민족을 껴안으면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는 데에 큰 장점이 있었다는 평가입니다. 그 정신은 어쩌면 고구려 이후 수많은 외침을 받고, 한동안 식민지가 된 시절이 있었으면서도 분명한 정체성을 잃지 않은 대한민국의 원동력이 된 것은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