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과거 낙방생 위로 잔치였던 백일장

마감된 자료-------/플래닛에있던글

by 자청비 2009. 1. 22. 09:24

본문

과거낙방생 위로 잔치였던 백일장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009. 01. 22.
 
 

 

 

          우리가 학생 시절 참여해보기도 했던 백일장(白日場)의 유래는 무엇일까요?
          백일장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공부 하는 선비들의 학업을 장려하려고 시문으로
          시험을 보던 것입니다. 과거 형식을 본떠 시제(詩題)를 내걸고 즉석에서 시문을
          지은 다음 장원(壯元)을 뽑아 연회를 베풀고 상을 주었습니다. 1414년(태종 14)
          태종이 성균관 명륜당에서 성균관 유생 500여 명에게 시무책(時務策) 곧 나라의
          중요한 일에 대한 방안을 물어 시험을 본 데서 비롯했지요.

 

          벼슬길과는 관계가 없는 백일장은 과거(科擧)낙방생 위로와 과거지망생의 명예욕을
          충족시켜 주는 잔치였습니다. 하지만,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에 보면, 조선
          후기에 일자무식꾼이 남의 글을 빌려 시험지를 내고, 시험지의 심사에 수령의 자제와
          기녀까지도 관여하는 것은 물론 수령을 욕하다 잡히는 등 난장판이 되었다고 합니다.

 

                          

                                                    

============================================================================= 

      (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223.구정(舊正)이 아니라 설날입니다  2005/02/07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의 명절이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중국의 역사서들과
          '고려사' 등을 보면 우리 민족은 삼국시대 이후 설날을 명절로 지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총독부는 문화말살을 위해 온갖 짓을 저지르면서 겨레의
          큰 명절 '설'을 '구정'이란 말로 낮추기까지 하였습니다.

 

          해방 뒤에도 1989년까지 양력설은 공식적인 공휴일이있으며, 설날은 이중과세라면서
          '민속의 날'이란 이름으로 단 하루 쉬게 했지만 우리 민족은 포기하지 않고, 명절로
          꿋꿋이 지냈습니다. 그러자 1989년 정부가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고쳐
          설날인 음력 1월 1일을 전후한 3일을 공휴일로 지정하여 설날이 완전한 민족명절로
          다시 자리 잡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식민지 시절의 쓰레기라 할 수 있는
          '구정'이란 말을 쓰지 말고, '설날'이라고 해야 합니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마감된 자료------- > 플래닛에있던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날의 세시풍속 '양괭이쫓기'  (0) 2009.01.27
설날의 말밑은 무엇일까요  (0) 2009.01.23
오행철학이 담긴 우리 겨레의 음식  (0) 2009.01.21
허균  (0) 2009.01.20
조선시대 기병대  (0) 2009.01.1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