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은 “어렵고 교묘한 말로 꾸민 글이 최고의 경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은 문장의 재앙(災殃)이다. 글이란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쉽고 간략하게 써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조선 문예부흥기를 이끈 정조는 서경(書經)에서 군더더기 글을 몽땅 들어내고 단 100편만을 취한 공자를 예로 듭니다. 정조는 “글은 복잡하고 어수선 하기보다 간략해야 한다. 엄청나게 많은 분량의 책이 있어도 어렵고 복잡하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은 고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제대로 맛볼 수 없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400년 전 허균도, 200년 전의 정조임금도 이렇게 간략하고 쉽게 쓰는 것이 글쓰기의 슬기로움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외국어와 어려운 한자말을 섞는 것은 물론 길게 늘어놓아 어렵고 복잡하게 글을 써놓고 자신이 유식한 체하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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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486. 조선시대에는 하루 몇 끼를 먹었을까? 2005/10/28
지금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루 세 끼를 먹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고 의사들은 하루 세 끼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을 살을 빼기 위해서 밥을 굶기도 합니다. 그러면 조선시대 사람들은 하루 몇 끼를 먹었을까요?
한국역사연구회에서 펴낸 책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에 보면 조선시대에는 두 끼가 기본이었다고 합니다. 점심은 먹을 수도, 먹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계절에 따라 달랐는데 19세기 중반 이규경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대개 2월부터 8월까지 7달 동안은 세 끼를 먹고, 9월부터 이듬해 정월까지 5달 동안은 하루에 두 끼를 먹는다고 되어있습니다. 즉 해가 긴 여름, 그리고 농사철에는 활동량이 많았으므로 세 끼를, 해가 짧은 겨울, 농한기에는 두 끼를 먹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겨레는 이미 운동 정도에 따라 열량을 조절하는 슬기로움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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